2021년 11월 8일

가을비가 추적추적 잘도 내린다

따뜻한 실내에서 비오는 창밖을 내다보니 참 아늑하다

이 비가 대술 밭에도 내리겠지

일거리 없이 텅 비어 있는 밭을 생각하니 마음이 참 편안하다

어제 일을 마무리하고 와서 정말 다행이다

 

주말늦잠을 자고 일어나 세탁기를 돌리는데 엄니한테 전화가 왔다

"내일 비온다는데 일찍 와서 콩투드리는 것좀 도와줄래? 올 때 아무것도 사오지 말구 콩나물이나 하나 사와라 콩나물밥을 해먹든 국을 끓여먹든 하게"

원래 두시차 타고 갈 생각이었다

빨래종료 삼십분전인데 끝내고 가면 아무래도 너무 늦을거 같다

열한시에 택시를 타고 갔다

세탁기 안에서 하루종일 꾸깃꾸깃 주름이 질 옷들이 심란하다

이따가 헹굼 한번 더 해서 널면 되지만 시간에 쫓겨 대술에 가자니 괜히 싫다

내가 원해서 가는 것과 호출받고 가는 기분이 영판 다르다

 

콩나물밥을 짓고 꽃게찌개 끓여 점심을 먹고 밭으로 나갔다

엄니는 저쪽에서 부지깽이로 콩을 투드리고

나는 털어놓은 콩을 이쪽으로 옮겨와서 바람에 디렸다

바가지에 콩을 담아 머리 위로 높이 들고 조르르 흘리니 바람에 검불이 술술 날아간다

콩알갱이만 남고 티검불이 싹 날아가면 좋으련만 콩깍지며 줄기가 콩에 많이 섞인다

깔끔하게 하려고 손으로 고르다보니 성한 것 만큼이나 쭉쟁이지고 깨지고 벌레먹은게 많다

엄니가 나중에 다 골라내야 하니 그냥 담으라고 하신다

콩좋아하는 나를 위해 평소에 엄니가 이콩저콩 많이 챙겨주신다

엄니가 챙겨주시는 콩은 흠없이 고르게 동글동글 예쁘다

예쁜콩이 나에게 오기까지 이렇게 많은 손길을 거쳤구나

새삼 아득하다

콩알 하나 쌀알 하나 아까워하시는 엄니마음을 이제야 제대로 본다

과정을 모르고 먹기만 하는 나는 참 엄벙덤벙 살았다 

 

여섯시차다

차시간 안에 일을 마무리 하려고 서둘렀다

땔감도 안되는 부실한 콩대와 콩잎은 모아 불놓고 디린 콩을 비닐하우스 안에다 널었다

거창하게 깔아놓았던 포장지도 걷어서 잘 개어놨다

어제부터 꼬박 콩바심에 매달렸다는 엄니는 "너 아니었으면 이거 오늘 다 못했을텐데 고맙다얘" 하신다

겨우 반나절 하고 이것도 일이라고 어깨가 아프다

어제부터 탁탁탁 하루종일 콩을 투드린 엄니팔을 생각하니 할 말이 없다

오늘도 사골국물에 무 하나 감 두개 챙겨넣은 가방이 묵직하다

차턱까지 따라나오신 엄니가 갑자기 조기 챙겨준다는걸 깜빡했다고 보행기밀고 바삐 들어가신다

차 금방 온다고 다음에 가져가겠다고 말리는데도

"차 오면 그냥 갖고 들어갈테니 걱정마라" 부득불 가신다

말씀을 그렇게 하셨어도 꼭 조기 줄려고 얼마나 서두르셨을지 훤하다

까만봉다리를 한쪽 손에 들고 보행기를 밀며 허둥허둥 오시는 엄니가 저번보다 더 작아진거 같아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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