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3일

피고 지고 피고 지던 치자꽃이

두 송이 남았다

골목길에 들어설 때마다 애인을 만나는 것처럼 마음이 설레였다

이제는 떠나가는 치자꽃

아쉬워 허리를 깊게 숙이고 살뜰하게 향기를 맡는다

 

지나가는 내 또래 아저씨가 나를 보고 슬며시 웃는다

순하게 생긴 그니 눈빛이 치자꽃 향기를 잘 아는 사람이다

같이 가던 직원은 그 사람이 "이상한 아줌마다" 하는 표정이었단다

보고 싶은대로 보는 세상

 

내 왼쪽 어깨에 노란 동그라미가 찍혔다

치자꽃 옆에 있던 키가 껑중한 루드베키아

온 마음이 치자에게 가 있는 내게 

루드베키아가 살그머니 흔적을 남겼구나

"아침에 너를 만나 나도 행복해" 

루드베키아의 다정한 속삭임이 어깨에 묻었다

 

2023년 7월 23일

베낭이 가벼워야 여행이 자유롭다

고데기를 놓고 장고에 들어간다

오래전 테레비에서 칠십 넘은 할머니 배우가 말했다

"고데기 없이는 절대 어디를 가지 않아"

그 말은 여자인지 남자인지 무덤덤하게 사는 나에게 커다란 충격이었다

나의 일상에 고데기가 들어오고 꾸미는 재미가 오졌다

여행지에서도 유지하고 싶은 여성스런 일상

장고끝에 바람처럼 가벼운 여자사람이고 싶어 고데기를 베낭에 넣었다

 

2023년 7월 30일

짐을 점검하다가 결국은 베낭에서 고데기를 뺐다

한결 가볍다

 

2023년 8월 8일

누군가 한줌도 안되는 애기고양이를 쓰레기장에 버렸다

치킨집 아저씨가 발견하고 큰 박스에 옮겨 담아 공원가로등 아래에 두었다

아저씨가 관공서 여기저기 전화를 했는데 방법이 없다는 대답만 들었단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잠시 멈춰 박스 속 애기고양이를 들여다보다 가던 길을 간다

애기고양이가 잔뜩 웅크리고 꼬물거린다

근처 편의점에서 츄르를 사다 손가락에 묻혀주니 할짝할짝 많이도 먹는다

한치 앞도 모르는 애기고양이는 기운이 나는지 박스 안을 활보한다

밤은 깊어가는데 이 작은 생명을 어째야 하나 

열한시가 넘어 근처 사는 할머니가 꼬마손에 이끌려 나오신다

아까 한참을 고양이랑 놀고 간 꼬마다

할아버지가 안된다고 하는데도 결국 할머니와 꼬마가 아기고양이를 데려간다

다행이다 참 다행이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복을 짓고

아기고양이가 복을 누리고

나는 마음을 놓고 집으로 돌아왔다

 

2023년 8월 11일

<풍문속으로 사라진 꾼>들이라고 해서 기대를 많이 했다

분명 볼거리이긴 했지만 <꾼>이라는 제목에는 미흡한 공연내용이었다

시시하다고 생각하다가 내가 조선시대 시골아낙이라 상상했다

마술처럼 무대가 신기하고 흥겨워졌다

한시간 동안 아주 잘 놀았다

 

2023년 8월 21일

도로가에 멀쩡한 토마토가 하나 떨어져있다

누군가 차에 탈 때 봉지에서 하나 떨어진 것 같다

멀쩡해도 길에 떨어져 있는 걸 줍기가 망설여져 지나친다

이내 반성한다

귀한 먹을거리다

되돌아가 토마토를 주웠다

 

2023년 8월 24일 

댄스교습소에 신입이 들어왔다

흥이 넘치는지 안무 몰라도 펄펄 난다

몇몇이 그를 비웃는다

나는 그들에게 처음 온 자리인데 기죽지 않고 춤추는 그 사람이 멋있었다고 말했다

근데 사실은 수업시간에 그니를 보고 나도 그들처럼 저 사람 뭐여~했다

비웃는 사람을 비웃다가 나와 그들이 하등 다를게 없다는 걸 인정한다

 

2023년 8월 25일

라오스공항에서 가방을 하나 샀다

남은 라오스돈을 쓰기 위해 별 생각 없이 산 가방이다

매일 그 가방을 들고 출근한다

라오스사람의 손길을 느낀다

물건과도 인연이 있는 것 같다

내가 라오스를 오래오래 그리워할 것을 알고 그  순간 이 가방이 나를 불렀나보다

 

2023년 8월 30일

재활용쓰레기 몇개를 들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쓰레기봉투를 들고 있던 아줌마가 자기가 버려준다고 달라고 한다

괜찮다고 사양하는데 가는 길인데 괜찮다고 자기 주고 출근하라고 한다

아줌마의 작은 친절에 출근길이 너무나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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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5일

이쁜이가 어버이날 선물로 향수를 사줬다

향수를 선물받은 기분이 너무나 근사하다

 

2023년 5월 9일

어느 집인가 아침밥 하다가 깜빡 다시 잠들었나보다

아카시아 향기 가득한 계단이

오늘은 찌개 탄 매운냄새로 가득하다

싱그런 아침대신 재밌는 출근길

 

2023년 5월 9일

매주 화요일은 지하층에서 노래교실이 열린다

오후 2시부터 노래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시끄럽다고 불평하는 직원들

그들이 까다롭다고 생각하다보니

난 사무실 안쪽이어서 노래소리가 덜 들린다

각자 그럴만한 이유로 말하고 행동한다

 

2023년 5월 11일

나한테 반지받았다

 

2023년 5월 13일

"너 미나리 좋아해서 내가 고성리까지 갔다 왔다

저거 끌고 한 시간 걸리더라"

보행기에 의지해도 조금만 걸으면 허리아프다고 하시면서

엄니가 미나리를 또 한보따리 챙겨주신다

지난주에도 이만큼 가져가서 며칠에 걸쳐서 간신히 먹었다

이번주도 며칠은 밥대신 미나리무침 먹어야 한다

 

2023년 5월 20일

인간관계에서 시시때대로 당하는 봉변에 대해

그 일이 왜 일어났는지를 생각하지 말자

이유를 찾아낼 수도 없고

설령 그 이유를 찾아낸다고 해도

나는 그 이유를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느닷없는 소나기를 맞았다 생각하자

석달열흘 장마도 아닌데

그깟 소나기가 대수겠나

 

2023년 5월 27일

탁이한테 전화번호 알려달라고 한 큰애기가

맨정신으로 도저히 떨려서 못하겠어서

맥주 반 캔을 마시고 왔단다

 

2023년 5월 27일

초파일 향천사에 가서 가족등을 달았다

등 리본에 전남편과 나와 엄청이쁜이 귀한탁이

넷의 이름을 적었다

부부의 인연이 끝났어도

부모자식의 인연은 변하지 않는다

이것은 전남편이 또다른 가족과 사는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다

 

2023년 6월 5일

화장실 수리가 일요일 오전이면 대충 마무리가 될 것 같다

엄니한테 일요일에 가겠다고 미리 전화를 했다

공사일정에 차질이 생겨 일요일에는 가기 어려울 것 같다

토요일 저녁에 엄니한테 전화를 걸어 월요일에 간다고 했다

엄니 "맘대로 해라"하고는 전화를 뚝 끊는다

엄니가 나를 많이 기다리시는구나

 

2023년 6월 6일

열무김치에 밥을 비벼먹겠다고 했더니

엄니가 양재기, 냉장고에 깨, 방망이를 가져오라고 하신다

양재기에 통깨를 넣고 방망이로 빻아주시며 '여기다 김치넣고 기름 넣고 고추장 넣고'하신다

엄니 앞에서 어린애처럼 볼이 미어지게 비빔밥을 먹었다

 

2023년 6월 6일

지리산에서 건강을 챙기라면서 산나물을 보내겠다고 문자가 왔다

냉정하게 거절할까 고민했다

굳이 척을 질 필요는 없지

감사하게 받는다

 

2023년 6월 10일

자두랑 공원을 산책하는데 머슴애 셋이가 수상쩍다

치킨박스 같은거에다 뭘 줏어서 쓰레기통에 갖다 쏟기를 반복한다

"도령들 지금 뭐해?" 물었더니

"쓰레기 주워요" 한다

"우와 이렇게 착한 도령들이라니 아이구 참 이쁘다"

편의점에 가서 음료수를 사다 줬다

"어떻게 이런 이쁜 생각을 했어?"

"하진이가 하자고 했어요" 

8살 권하진이라고 했다

월요일에 학교에 연락해줘야겠다

 

2023년 6월 11일

요즘 자두랑 산책하면 듣는게 늙었다는 말이다

눈치없는 사람은 볼 때마다 그 소리여서 저기에 그 사람이 보이면 일부러 돌아서 간다

한마디 말로 사람을 쫓아내는 사람이다

오늘은 자두가 예쁜애기 소리를 들었다

아가씨 소리도 들었다

할매들이 그렇게 기분좋은 얘기를 해줬다

자두랑 나는 아주 행복하다

 

2023년 6월 12일

산책하다가 인터넷을 검색해서 금오학교에 전화를 걸었다

토요일 얘기를 자세하게 해줬더니 선생님이 꼭 칭찬해주겠다면서 감사하다고 인사한다

통화를 끝내고 무슨 맘이 들어선지 내가 제대로 전화를 했는지 확인해봤다

오마나 경기도 의왕에 있는 금오학교다

다시 예산 금오학교를 찾아서 통화를 했다

경기도 금오학교에도 다시 전화를 걸어 실수했다고 알렸다

노안에 덜렁대기까지 하니 난감하다

 

2023년 6월 13일

생일이다

누구 생일이 되면 아침부터 시끌시끌한 단톡방이 저녁까지 조용하다

친구들 삶이 분주한가보다

새삼 작은 일 챙기며 탱자탱자 사는 내 삶이 너무나 감사하다

 

2023년 6월 16일

인배 탁이랑 광시가서 저녁을 먹었다

백수이면서 참 아는 것도 많은 인배가 성실하게 잘하고 있는 탁이한테 뜬구름 잡는 얘기를 한다

탁이가 물들을까봐 걱정인데 분위기 생각해서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집에 와서 "오늘 삼촌이 말을 좀 많이 하는거 같더먼"했더니

"삼촌 말 많이 안하는데? 엄마가 그렇게 생각하는건 삼촌이 하는 얘기가 맘에 안들어서 그런거야"

탁이가 나보다 한참 낫다

 

2023년 6월 18일

 

귀한탁이 엄청이쁜이 감사합니다

귀한탁이 엄청이쁜이 잘 살고 있습니다

본이 되게 살겠습니다

의젓하게 살겠습니다

울진 소나무숲길에서 만나는 소나무마다 쓰다듬으며 기도했다

 

2023년 6월 19일

끓는 물에 데쳐낸 닭다리에 감자 양파 마늘 넣고

고추장 고춧가루 진간장 올리고당으로 양념해서 닭도리탕을 끓였다

보글보글 끓을 때 간을 봤는데 시큼한 맛이 난다

갸우뚱~단게 부족한가 싶어 설탕을 조금 넣었다

여전히 시큼하다

들기름도 조금 넣고 다시다도 조금 넣어봐도 시큼한 맛이 가시지 않는다

신맛이 날 일이 없는데 내 입맛이 이상해졌나 참으로 희한한 일이다

뒷정리를 하다가 사과식초병을 발견했다

아까 내 눈에는 이게 올리고당으로 보였다

 

2023년 6월 21일 

탱고공연을 봤다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이 났다

어려서는 여자스텝이 더 끌렸는데 오로지 남자스텝만 눈에 들어왔다

단순한 발재간이 아니다

길을 터주고 길을 막고 붙잡았다 풀어주고 밀어주고 지탱해주고

여인의 꽃이 필 자리를 만들어주는 남자의 스텝이 너무나 황홀했다

탱고를 배워야겠다

 

2023년 6월 28일

두 파수 연달아 소라를 먹었다

만족스럽다

오늘은 통통한 해삼 한 마리를 샀다

대롱대롱 까만봉다리 흔들며 사무실로 돌아오다가

장날마두 먹고 싶은 조개며 멍게며 해삼을 사먹을 수 있는

나의 재력이 너무 뿌듯했다

같은 말을 해도 이쁜이랑 탁이랑 이렇게 다른 반응이 나온다

사랑스런 울애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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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월 1일

 

주차되어 있는 자동차 뒤에 숨어서 자두를 부른다

우리 자두 코도 맹 귀도 맹

바로 제옆에 있는 줄도 모르고 쌔앵 지나가버린다

 

2023년 1월 6일

천지를 덮었던 눈들이 흔적 없어진다

저 돌의자도 나처럼 눈이 아쉬웠을까

햇빛이 무서울 눈을 제 그늘에 숨겨 보호하고 있다

저 눈들

내 생각만큼 오래 살아남지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내 생각만큼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2023년 1월 9일

집이 같은 방향인 직원과 함께 사무실을 나선다

직원이 휴대폰을 보느라 걸음이 심하게 느리다

그 걸음에 맞추려니 슬슬 부아가 난다

혼자 멀뚱멀뚱하다가 "나 먼저 갈께" 인사했다

직원이 깜짝 놀라며 "왜? "한다

'배려하는 마음이 없는 너랑 같이 가기 싫어서' 하고 싶은 말을 꾹 참는다

'에이 속좁게 그까지것 조금 기다려주지' 하다가

나하고 싶은 대로 해버린게 통쾌해서 '잘했어 아주 잘했어' 나를 칭찬해줬다

 

2023년 1월 25일

설 쇠러 온 이쁜이가 오늘 갔다

허전한 마음에 눈물이 자꾸 난다

썰물처럼 한꺼번에 가버리는 자식들 차를 향해 대문간에서 손을 흔들던 엄니 모습

다니러온 청양이모가 돌아가는데 골목 끝에서 이모가 안보일 때까지 서 있던 외할머니

아직 외할머니만큼 엄니만큼 늙지도 않았는데 벌써 이렇게 자식이 그리워 눈물바람이다

큰일이다

 

2023년 2월 1일

사업장현황신고에 연말정산에 사무실이 바쁘다

바쁘니 전화를 잘 받지 않는다

나만 받냐 나도 안받는다 

용심이 나서 뻗대는데 괴롭다

차라리 전화벨이 울리면 얼른 받는다

마음이 깃털처럼 가벼워진다

 

2023년 2월 4일

"보름에 동치미 먹으며 일할 때 벌레가 문다는데 그것도 모르고 아까 동치미를 먹었다"

내일이 대보름인 줄도 몰랐다며 엄니가 걱정하신다

 

2023년 2월 9일

튀르키예에 기부금을 보내는데 무기명으로 할거냐고 묻는다

생색내고 싶은 마음은 무기명  글자 앞에서 부끄럽다

연말정산할 때 기부금 얼마 냈다는 자료에 으쓱한다

무기명 위에서 망설이다 실명으로 옮겨 처리한다

세액공제도 받고 흔적도 남겼다

부끄럽지만 내 그릇이 요만하다

 

2023년 2월 11일

밭에 나가시는 작은엄니를 만났다

내 손을 붙들고 반가워하신다

"자네 만날 줄 알았으면 돈이라도 갖고 나와서 다만 천원이라도 줄걸"

 

2023년 2월 14일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

작은일에 마음을 쓴다는거 참 중요하다

백짓장도 맞들어 주는 사람으로 살아야지

 

2023년 2월 16일

다른 사람이 내게 백짓장도 맞들자고 하기를 기대하지는 말기

 

2023년 2월 17일

박주가리 씨앗 하나 허공에서 내려온다

그늘진 좁은 골목은 더군다나 포장길

내려오던 씨앗

여기는 아니다

하늘 하늘 기다란 솜털로 허공을 디디며

위로 위로 헤엄쳐 오른다

푸른 허공으로 풀어지는 솜털이 노련하다

원하는 곳 찾아내어

꼭 꽃을 피워내기를 기도했다

 

2023년 2월 18일

윤식이가 놀러왔다

내가 보여주고 싶은 예산의 풍경 중 하나가 골목풍경이다

읍내구경갔다가 가로등이 켜진 골목골목을 찾아 걸었다

오래된 마을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 정겨워 나는 신났다

허거덩 윤식이가 골목이 무섭다고 한다

 

2023년 2월 23일

윤식이를 드가에 데려갔다

그새 꼬마스피커가 하나 더 늘었다

블루투스 스피커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참이다

사장님이 성능이 좋다고 하신다

가격도 크게 부담스럽지 않다

며칠 고민하다 그보다 저렴한 걸로 주문했다

이제 휴대폰을 큰 그릇에 넣고 진동을 키워 음악을 듣는 일은 없겠다

스피커가 이틀만에 도착했다

미제물건이라더니 설명서가 죄다 영어다

탁이랑 나랑 스피커 멀뚱멀뚱 들여다만 보고 있다

 

2023년 2월 27일

계단이 말갛게 쓸려있다

정갈한 계단을 밟으며 출근하는 내 마음이 설레인다

이른 아침 살그머니 골목길을 청소하는 할머니의 여유로운 마음

만나게 되면 꼭 할머니하고 친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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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일

맑고 밝은 생각 

친절한 말

따뜻한 마음으로 잘 살겠습니다

아침에 집을 나서기 전에 부처님 앞에서 다짐한다

엘리베이터에서 빨간 옷을 입은 할머니를 만났다

참 곱다고 잘 어울리신다고 했더니 할머니가 환하게 웃으신다

 

11월 1일

방사선치료 마지막 날이다

탁이가 오늘 처음으로 늦잠을 잤다

열한시 열두시에 일어나 출근하는 탁이가

매일 아홉시반에 일어나 나를 데려다 줬다

이십일 동안 우리탁이가 고생 많이 했다

친절한 방사선과 직원들에게 주려고 도넛을 샀다

지하2층 치료실로 내려가는 계단에 써있는 방사선 종양학과

매일 그 표지에 짓눌렸는데 오늘은 룰루랄라 발걸음도 경쾌하다

직원에게 '안녕하세요' 대신 '마지막날이예요~'인사했다

치료 끝나고 옷을 갈아입으면서 나도 모르게 콧노래다

참으로 좋은 날이다

 

11월 1일

오래전 점을 봤는데 57살부터 대운이 열린다고 했다

점괘가 신통하게 맞았다

대운이 아니고서야 이렇게 일찍 암세포를 발견하고 간단하게 치료를 끝낼 수 있을까

복도 많은 영숙이

 

11월 2일

출근길 꽃향기 맡다가 바로 옆에 벌이 있어 기겁했다

미동도 없길래 건드려보니 기절한 벌이다

어제 저녁 해떨어지는 줄도 모르고 꿀을 빨았나보다

조금 있으면 햇빛이 따뜻하게 비출테고 그러면 깨어나겠지

꽃 위에서 외박하고 돌아가는 벌 

 

2022년 11월 2일

 

저 속에 이쁜이 들어 있다

 

2022년 11월 8일

아침 출근길에 골목길에서 엄니만큼 작고 늙으신 할머니를 만났다

기분좋게 인사를 했더니 할머니가 마스크를 내리고

"건강하시오 젊은이 화이팅" 하며 엄지척을 하신다

중학교 앞에 사시는데 아침에 나와서 세시간째 걷는 중이시란다

나도 엄지척 "대단하시네요" 했다

할머니와 나 서로에게 참 행복하고 기분 좋은 순간이다

 

2022년 11월 16일

지각할 것 같다

뛰는듯 걷는다

누렁이 한마리가 목줄을 매단 채 길에 나와있다

줄이 헐렁해 빠졌나보다

뜻밖의 자유에 신이 난 누렁이가 나를 보고 놀아달라고 겅중겅중 뛴다

"늦었어 너랑 못놀아 어여드가 어여드가"

내 말이 놀자는 말로 들리나보다

누렁이가 나를 따라오며 겅중겅중 

한번 쓰다듬어주기라도 할걸

서두느라 그냥 온게 내내 마음이 걸린다 

 

2022년 11월 18일

11월의 느티나무

고스라진 이파리 사이로 바람이 지나간다

다르르르르 다르르르르르

몇백년 나이배기 고목이

작고 부드러운 방울소리로 가을을 타고 있다

 

2022년 11월 19일

방사선치료를 받을 때 엄니랑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후유증으로 속이 불편해 반찬으로 나온 동치미국물에 밥을 말아먹었는데

그걸 보시고 엄니가 그날로 동치미를 담으셨단다

 

2022년 11월 22일

느티나무 소나무 나란하다

가을바람 타고 느티나무 가랑잎 하나 소나무 푸른잎에 앉았다

젊어서는 꿈도 못 꾼 마실

 

2022년 11월 23일

 

 

 

2022년 11월 16일

오랜만에 드가를 갔다

사장님이 블로그글을 보셨단다

좋게 써 줘서 고맙다고 미제과자를 써비스로 주셨다

 

2022년 11월 28일

목도리를 걸치고 산책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목도리가 없어진 걸 알아차렸다

헐레벌떡 되짚어 가보니 길 한가운데에 덩그라니 앉아 있다

몇년 전에 오천키로 떨어진 곳에서 만난 인연인데 

하마터면 이렇게 헤어질 뻔 했다

 

2022년 11월 30일

한파주의보다

자두랑 삼십분 산책했다

밤바람에 뺨이 얼얼하다

거울을 보니 뺨이 빨갛다

내 모습에 엄마 얼굴이 보인다

하루종일 장에서 찬바람 맞고 저녁에 집에 돌아오면 엄마얼굴은 열 오른 것처럼 빨갰다

한겨울 내내 엄마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라있었다

그때 엄마나이가 지금의 내나이랑 비슷했다

내가 만일 얼굴이 늘상 빨갛다면 병원 다닌다 어쩐다 어지간히 고민했을 것이다

그때는 엄마가 여자라는 생각을 못했다

아무 도움이 안되는 딸자식이었다

 

2022년 12월 6일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흥얼거리는데 오늘은 코드도 제대로 잡힌다

맑은 기타소리와 나의 노래가 너무나 낭만적이다

나에게 내가 감탄한다

가까이에서 기타를 치던 선생님이 기타 치다말고 내 노래를 듣기 시작한다

선생님이 지금 내가 참 잘한다고 생각하는거 같다

그런 생각을 하니 갑자기 내 손가락과 목소리가 경직된다

코드잡는 손가락이 버벅거리고 짧아진 호흡에 목소리가 떨린다

나에게 집중할 때는 자유롭다

누군가의 평가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나는 초긴장상태다

긴장해서 벌벌 떠는 모습이 너무 못났다

 

2022년 12월 8일

아파트 귓골목 계단이 말갛게 쓸려있다

누구의 구역도 아닌 곳을 이 아침에 누군가 이렇게 말끔하게 청소를 한 것이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제 아침이 더 행복합니다"

계단 끝에 콜라캔 하나 떨어져있다

외면하고 몇걸음 가다가 돌아가 줏었다

누군가의 선행에 말로만 감사할게 아니다

 

2022년 12월 8일

역전장날

 

2022년 12월 12일

세상에 부대끼다 생긴 앙금이 암세포라면

나 사는게 누군가의 암세포가 될 수도 있는 일

착하게 잘 살아야지

 

2022년 12월 12일

후배 졸업작품전시회에서 너무나 이쁜 여학생을 만났다는 탁이

한달을 고민고민하다가 연락했는데 화답이 왔다네

근데 막상 이렇게 되고 보니 연락하기전 두근거리고 설레던 시간이 더 좋았다네

아무래도 결혼하기 힘들거 같다고

나보고 손주볼 생각 접으란다

 

2022년 12월 13일

아침부터 꾸물거리던 허공에 기어코 눈보라가 치기 시작한다

장갑을 챙겨갖고 나오길 잘했다

장갑끼고 손을 반짝반짝 해본다

날씨가 궂으니 역전장이 헐렁하다

지팡이 짚은 쪼끄만 할머니가 검정봉다리 대롱거리며 앞서 가고 있다

검정봉다리 든 손은 스웨터 소맷자락으로 덮었는데 지팡이 짚은 손이 그대로 맨손이다

내손보다 할머니 손에 장갑이 있어야겠다

"할머니 이 장갑 끼세요"

"아뉴 아줌마 껴유 내가 왜"

"할머니가 더 손시려울거 같어요 나중에 만나면 주세요"

"나는 아줌마가 누군지 몰라서 못줘유"

"내가 할머니 아니까 걱정마세요"

굽은 허리도 펴지 못하고 할머니가 장갑을 끼시면서 연신 고맙다고 하신다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산책하는데도 손이 시렵다

내가 잘한 거 같다

 

2022년 12월 14일

올겨울 제대로 첫눈이 내렸다

눈이 내렸으니 산길을 걸어야지

점심산책을 봉대미산으로 나갔다

눈이 있어 편백의 무늬가 더욱 아름답다

덧없이 눈이 녹고 있다

설레이는 마음이었던 발자국들이 사라지고 있다

나는 누구에게는 하얀 눈위에 발자국같은 인연이었구나

아름다웠구나

 

2022년 12월 17일

사주까페

젊은 커플이 들어간지 두 시간이 지나도록 나오지 않는다

호기심이 생긴다

탁이 사주를 한번 볼까?

고민하다 안보기로 했다

이미 시작된 삶이고 계속해야 하는 삶인 것을

내 삶을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아름답게 다듬어 나가면 되는 거지

사주의 좋고 나쁨을 궂이 알려고 할 필요가 없을거 같다 

 

2022년 12월 19일

푸른잎 흰눈이 소담스러워

살며시 뽀뽀를 했더니

입술이 닿자마자 눈이 자지러지며 녹아내린다

내가 사랑을 잘못했다

 

 

흔한데 흔하지 않은 풍경

별거 아닌데 별거인 풍경

눈은 이제 쓰는게 아니라 염화칼슘으로 녹이는 것이 되었다

 

2022년 12월 20일

사무장님 왈

팔순의 국민학교 은사님이 초로의 제자들을 불러 모아 밥을 사주셨단다

"내가 젊었을 때 너희를 때린게 갈수록 마음에 걸린다"고 하셨단다

정작 제자들은 24살 초임이었던 그 선생님한테 맞은 기억이 별로 없단다

보통 맞은 사람은 기억하고 때린 사람은 기억을 못하는데 

이 무슨 아름다운 경우인지 감동이다

 

2022년 12월 25일

흉내내니 행복해졌다 

윤식이와 양평 용문사에서 만난 동자승

 

2022년 12월 28일

지지난 주는 이쁜이들 모임 때문에

이번주는 윤식이 만나느라

엄니한테 가지 않았다

엄니가 이 상황이 못마땅하신가보다

가스가 어디 안된다고 전화하시는데 전화속 엄니 목소리가 잔뜩 흐리다

근처에 사는 큰딸을 두고도 나를 찾으시는 엄니가 딱하다

엄니한테는 여전히 내가 며느리이지만

나에게 엄니는 가족들이 있는 정든 할머니이다

엄니와 나 사이가 애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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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13일 

"울애기 점심 머 먹었어?"

"샐러드 ㅋㅋㅋㅋㅋ 샐러드집이 미어터져 삼십분 기다려도 다들 샐러드만 찾아"

"ㅋㅋㅋㅋ이제 속죄의 시간이구먼 샐러드집이 속으로 그랬을거야 연휴는 짧다 이제 우리의 시간이다"

연휴동안 맘껏 먹은 울애기가 다시 다이어트에 들어갔다

아휴 안쓰러워라

 

2022년 9월 14일

미환언니가 아저씨 급성맹장 때문에 이틀밤을 꼬박 새웠단다

버스에 올라 자리를 찾다가 누워있는 아줌마 발에 걸렸다

살짝 짜증이 났다

뒷자리에 앉아 아줌마 발을 가만히 바라본다

아줌마가 간밤에 잠을 못잤나보다

가족중 누군가 아팠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아줌마에게 짜증을 냈던게 미안하다

미환언니사정을 듣기 전이었다면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지 모른다

내 경험 만큼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한다

 

2022년 9월 16일

 

아주 그냥 막 그냥 조아 너무 조아

 

2022년 9월 22일

해바라기 등줄기 길삼아 하늘로 오른다

가을햇빛 스며든 몸 

파란하늘 아래에서 통통하게 여물었다

 

등뼈 여물기도 전 콩을 이고 지고 달고

해바라기는

등이 휘었다

그 끝에 매달린 들 수 없는 목덜미는

제 그늘을 파고 든다

 

니나 내나 하는 마음에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를 노래한다

 

우리의 목덜미 쓰다듬던 손길에

생각 하나 매달린다

내가 디디고 서있는 이 자리

누구의 등은 아닐까

 

2022년 9월 22일

대추나무 가지 속에 호박 하나 얌전히 숨어있다

호박하면 또 울애기지

이쁜이한테 장난걸었더니 역시나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2022년 10월 1일

땅콩사랑초 뿌리를 심었다

새싹이 돋아나더니 이짝으로 한없이 자랐다

다시 새싹이 돋아나고 이번에는 반대쪽으로 한없이 자란다

어느 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잡으려는 본능이 놀랍다

새싹 하나 다시 올라온다

이번에는 어느 쪽으로 향할지 흥미진진하다

 

2022년 10월 6일

"엄니생각에 술로 스트레스 푸는 건 하수같어"

"내 생각에는 엄마처럼 걷거나 책읽는게 하수야 눈나빠지고 관절아프잖아"

탁이가 술을 너무 자주 마시는 것 같아서 얘기 꺼냈다가 본전도 못찾았다

 

평일인데 영훈이가 놀러왔다

"영훈이 노는 날이 탁이랑 같어?"

"일 그만 뒀다고 삼십번 얘기했는데...."

"영훈이 복학했어?"

"졸업했다고 스무번 얘기했는데..."

"기냐? 근데 탁아 엄니가 까먹는거 앞으로 더하면 더했지 덜해지지는 않을겨"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처음 듣는 소리다...

 

2022년 10월 6일

가게 앞 스티로폼박스 심어놓은 국화꽃이 환하게 폈다

허리를 숙여 키작은 국화꽃 향기를 맡고 있는데

주인아줌마가 안에서 보고는 일부러 나와서 아주 뿌뜻한 얼굴로 "향기 좋죠?" 한다

아줌마가 하도 뿌듯해하니까 뭔가 내가 아줌마한테 좋은 일을 한거 같다

 

2022년 10월 11일

활짝 핀 꽃 안에 또 꽃이 활짝 피었다

 

2022년 10월 17일

가지를 잘라낸 자리마다 잎이 무성하게 돋았다

막아도 막을 수 없는 왕성한 생명력 

 

모진 핍박을 받아 이제는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은데도

은행나무는 여전히 싹을 틔운다

 

2022년 10월 18일

방사선치료실이 지하 2층에 있다

매일 계단을 내려가는 발걸음이 무겁다

웃으면 가벼워질까 입꼬리를 올려보아도 마음은 여전히 우울하다

스무번 중 열번

반을 해내고 나니 저절로 마음이 가벼워진다

그동안 나에게 일어난 일이 적응이 안됐었나보다

 

2022년 10월 21일

율마 키가 한없이 크길래 가위로 순을 잘랐다

잘린 자리에 누런 흉터가 남았다

볼 때마다 미안했다

흉터 옆에서 새순이 올라온다

새순에  흉터가 덮힌다

상처는 없어지는게 아니라 덮어지는 거구나

 

2022년 10월 22일

인적이 닿지 않는 벌판 한가운데

바람 따라 어디에선가 날라왔을 씨앗 하나가 어엿한 일가를 이루었다

타지에서 노란꽃이 외롭지 않아 보기 좋았다

 

2022년 10월 22일

제 키가 얼마큼 클지 

동부콩만큼 클지

찔레꽃만큼 클지

쇠기둥만큼 클지

유홍초는 모른다

 

2022년 10월 29일

터미널 울타리 나무에 단풍이 들었다

천안가는 아홉시 반 차를 기다리며 나무 아래를 거닐었다 

출근한 직원 누군가 아침에 낙엽을 쓸었다

빗자루 자국 선명한 정갈한 땅에 가을아침 햇빛이 따뜻했다

이효재는 손님이 가면 늘 마당을 쓸어 빗자루 자국을 낸다고 했다

들어올 손님에 대한 환대라고 했다

오늘 아침 내가 누군가의 환대를 받았다

감사하고 행복했다 

 

가을주단 

목자치기하기 딱 좋은 돌을 만났는데 목자치기할 애들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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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미경언니 연옥언니랑 청양 천장호소풍

 

꽃잎인가 했는데 움직인다

희한하게 생겼다

꽃같은 벌레로 검색하니 갈색날개매미유충이다 

천사벌레라는 예쁜 이름도 있다

그런데 중국에서 건너온 해충이다

나무의 수액을 빨아먹어 나무를 죽게 한단다

인간이 우리편이라고 그어놓은 울타리 안에서는 없애야할 적이다

적인데 너무 이쁘다

 

새끼사마귀의 스트레칭

왼쪽으로 쭈욱 오른쪽으로 쭈욱 

 

2022년 7월 4일 

답정너..

2022년 7월 4일

며칠전 할매맥주에서 택호가 탁이랑 나랑 사진을 찍어줬다

탁이가 그 사진을 프사로 하고 있다

이게 뭐라고 엄청 기분이 좋다

 

2022년 7월 20일

삶은 누리는 시간과 견디는 시간의 반복

6월 휴가건으로 한동안 직장은 견디어 내는 시간이었다

마음닦기도 역부족이었다

원형탈모가 왔다

시간은 흐르고 견디는 시간도 점점 끝나간다

오늘 출근하면서 누리는 일상에 대한 감사기도를 드렸다

 

2022년 7월 22일

 

이런 길을 걸었더니

이렇게 됐다

 

2022년 7월 29일

며칠전 기타교실 선생님이 지인의 모임에 가서 기타연주하면서 노래를 하자고 했다

쑥스러워서 못한다고 했더니 이미 약속을 해놨다고 가야한단다

까짓것 해보지 뭐

저녁을 사준다는 말에 대단한 것도 아닌데 싶어서 뭘요 떡볶이나 먹죠 했다

그냥 한 말이었다 설마 떡볶이랴

우리끼리 노래하는 것도 아니고 외부에서 하는 거라 그래도 연습을 했다

드디어 오늘

다섯시반에 만나 내포로 출발했다

선생님이 차 안에서  "저녁을 어떡하나 떡볶이라도 먹고 가야하나"

그 말에 확 빈정이 상한다

와 이양반 내가 떡볶이얘기했다고 진짜 떡볶이를 먹자네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사람이 얼마나 쩨쩨하면 이럴까

모임에서 차려놓은 김밥으로 저녁을 대충 먹었다

아홉시 반쯤 돌아오는 차 속에서

선생님이 다시  " 저녁 어떡하지 떡볶이 드신다메"

우에에에에엑~

 

2022년 7월 30일

어제 기타교실선생님행동이 너무 싫었다

내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무례하게 대했다

사람이 싫으니 무례한 행동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면서도 어쩔 수가 없었다

나에게 무례했던 사람도 내가 싫어서 그랬던 거였구나

나의 어떤 모습에 실망해서 일부러 무례하게 군 것이구나

내가 원인이기도 하고 내가 결과이기도 하다

 

2022년 7월 30일

오후에 약속이 있어서 오전에 엄니네를 갔다

엄니랑 콩국수 해먹고 예산서 두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기로 했다

버스가 이티 들리고 상삼 들리고 3시쯤 동네에 온다

사십오분쯤 나갈 생각으로 있는데 엄니가 버스가 사십분에 온다고

그러니 삼십분에는 차턱에 나가있어야 한다고 얼른 나가라고 채근하신다

아닌디~하면서 어쩔 수 없이 나왔다

에어콘 틀어서 겁나 시원한 엄니네 두고 순철네집 옆에서 땀흘리며 버스를 이십분이나 기다렸다

 

2022년 8월 2일

한쪽 다리가 불편해 지팡이를 짚은 할아버지가

버스에서 천천히 내리시면서 기사에게 인사한다

"잘 왔습니다"

할아버지 고마운 마음이 가득담긴 인사에 감동했다

 

2022년 8월 15일

문득 큰 것은 더 커보이고

작은 것은 더 작아보였다

 

2022년 8월 18일

전라도닷컴에서 귀신같이 사람 홀리는 글발의 신귀백님이 정단을 인터뷰했다

누군지 전혀 모르는 정단이 노래를 그렇게 잘한대서 유튜브로 찾아봤다

내가 엄청난 것을 건드린거 같다

부활의 덫에 빠져 며칠째 오로지 부활뿐이다

출근할 처지에 두시 세시까지 유튜브를 들여다보고 있는 폐인이 되어버렸다

오늘 아침에는 멜론재생목록에 안녕이 추가됐다

부활이 나에게 네버앤딩스토리가 될거 같다

 

2022년 8월 19일

문학회에서 배우는 대로 글을 고쳐본다

제멋대로 썼던 것을 가지런하게 배열하고 좀더 세밀하게 다듬는다

고친 후의 글이 단정해보인다

대신 활기가 없어졌다

 

2022년 8월 24일

탁이가 고스트어브쓰시마 게임을 한다

사무라이가 휘두르는 칼날에 선혈이 흩뿌려지는 끔직한 게임인데

탁이는 계속 너무 아름답다는 말을 한다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풀

낙엽 날리는 가을 풍경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풀잎

내가 봐도 화면이 정말 아름다웠다

계속 칼을 휘두르며 사람을 베는 탁이가 감성이 맑고 섬세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이게 뭔 말이람

 

2022년 8월 24일

"농사 짓나봐요?"

"왜 그렇게 보셨대요?"

"까맣게 탄게 농사짓는 분 같어요"

원숙언니랑 예당저수지 다섯시간 걷고 홀랑 끄슬렸다

 

2022년 8월 25일

나에게 죽음이란 

우리탁이와 이쁜이와의 이별

딱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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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5월 1일

해마다 초파일에 엄니가 우리가족 등을 달아주셨다

올해는 탁이가 번돈으로 등을 달으라고 하신다

절에 가 등을 접수했다

등에 다는 리본에 전남편 나 이쁜이 귀한탁이 4명의 이름을 썼다

부부의 매듭은 풀렸으나 부모자식의 인연은 하늘이 내려준 것이니 그래야 마땅하다

 

2022년 5월 1일

법당에서 옆에 앉은 할머니가 명함을 내민다

군수후보 명함이다

"2번 찍어줘요"

그분의 간절함은 알겠으나 법당에서 그러시면 안될거 같아서 웃으며 거절했다

에미맘을 외면했다는 생각에 한동안 마음이 불편했다

 

2022년 5월 13일

오랜만에 단톡방에 모인 대학친구들

나는 주절주절 반가운 마음에 수다스러운데 다들 묵언수행중인지 대화가 뜸하다

나만 조증이네 많이 뻘쭘..

하다가

내가 말할 때 생각할 때 행동할 때 

일어나는 파장이 주변으로 퍼지는걸 생각하면 

신나고 즐겁고 행복한 이 마음을 애써 참을 일이 아니다

 

2022년 5월 15일

"비는 안오고 바람만 부니까 고추가 앓느라 크지를 못해"

어제 엄니말씀을 듣고

오늘 산책하면서 바람분다고 마냥 좋아하지 못했다

 

2022년 5월 21일

오늘은 자경언니가 생일 축하해줬다

온양 쌀국수집에 가서 거하게 먹고 산정호수를 산책했다

우리 둘다 마음공부에 관심이 많아 언니와의 대화는 참 즐겁다

새삼 느낀 것이 내가 언니들 덕분에 자가용차 없이는 다니기 불편한 곳을 참 많이 돌아다녔다

모두의 덕분으로 내가 너무나 행복하게 살고 있다

 

2022년 5월 26일

어젯밤에 비왔다

가문날에 비맞은 잎새들이 비왔다비왔다비왔다 춤을 추는 아침

나도 좋아 죽겠다

 

2022년 6월 14일

산책길 하늘에 잿빛 구름이 다시 또 뭉게뭉게 모인다

하지만 이제 헛된 기대를 하지 않는다

틀림없는 비구름이었는데 번번히 맥없이 흩어져 실망하는 나날이 벌써 보름 가까이다

가뭄에 애타는 사람들 약올리는 것도 아니고 뭐하는거야

구름을 향해 힘껏 눈을 흘긴다

아차 지금 저 구름은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려다 보이는 산천이 가물어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면서 

어떻게라도 해보려고 틈만 나면 저렇게 잿빛힘을 꽁꽁 쓰면서 으쌰으쌰 모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도 모르고 눈흘겨서 미안했다

힘내라 힘

힘내라 힘

 

비가 내렸다~~

 

2022년 6월 20일

옆자리 직원이 내 책상 위에 있는 자를 가져가더니 제서랍에 넣는다

"그거 내 자 아녀?"

"아 기여? 내 자가 안보여서" 뒤적뒤적하더니 "아 여기 있네"

나란히 붙은 책상 경계에 놓여있는 것도 아니고

내 서류 위에 놓여있는 물건을 팔을 뻗어 가져가는 저 마음이 당최 이해가 안된

 

2022년 6월 28일

 

까불까불까불

북촌에서 아침에 산책을 하다가 골목에 떨어진 살구를 주워먹었다

달콤했다

미경이말이 어렸을 때 논가에 살구나무가 있었는데 나무에서 저절로 떨어진 살구가 벼 포기에 앉기도 했다네

살구가 이맘때 노랗게 익는다는 것을 잊을 일이 없을 거 같다

 

2022년6월 26일

미경이말이 우리 인연이 삼십오년이란다

무슨 삼십오년??? 스무살에 만나 삼십오년이면  니가 대체 몇살이라는거냐??

애들은 스무살적 그대로 하나도 변한게 없고 나만 늙어간다

우리들은 만수의 정원이라는 예쁜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담날 회비정산자리에서 다같이 만수네서 밥먹었다고 한다

다같이 늙어가는거 맞다

 

2022년 6월 30일

용태생일이래서 치킨상품권을 보냈다

유진이랑 저녁먹고 나오다 탁이 재현이 용태 시권이 보현이 동수 준용이 무리를 만났다

생일주를 마셔서 얼굴들이 볼그레불그레했다

용태랑 동수가 나를 안아주고 재현이가 또 막 눈이 부시다고 너스레를 떤다

볼 때마다 너무 반갑고 이쁜 탁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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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5일

김밥집 계산대에 있는 바구니

밥먹은거 적고 계산은 월말에 몰아서 하는 외상수첩이 빼곡하다

돈없이 밥먹고 카드내는 요즘식도 있고

돈없이 밥먹고 적어두는 옛날식도 있는 밥집

참 많이 변한 세상살이에서 이렇게 옛날모습을 볼 때 그냥 막 좋다

 

2022년 3월 15일

드디어 남자가 여자를 찾아왔을 때

여자는 혼자 슬며시 웃는다 드디어 암살표적이 걸려들었구나

오래지 않아 남자를 안은 여자가 오열한다 죽여야 할 이 남자를 내가 사랑하는구나

남자는 매혹적인 여자에게 다가오면서 경계를 풀지 않는다 한순간도 난 안전하지 않다

얼마후 남자는 무방비로 여인을 그윽하게 바라보며 말한다 너를 안전하게 지켜줄게

계를 허무는 색의 본응

계를 넘는 색의 순수

색계의 정사신이 너무 적나라해서 불편했다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했나

탕웨이가 착취당한건 아닌가 

오랜 고민끝에  이안 감독과 탕웨이와 양조위의 결심이 옳았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들의 결단과 용기가 있어 내가 치아즈와 이 둘의 심연까지 함께 할 수 있었다

색계의 여운이 참으로 길다

 

2022년 3월 20일

해피투게더

영화의 모든 순간에 공감한다

 

2022년 3월 23일

나는 그런 의도로 말하려고 한게 아닌데 내 말을 들은 그 사람이 따지는거냐고 한다

궁금해서 물어보는건데 억울하네

평소 억지를 잘 쓰는 사람이 또 트집잡는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니 사실 그런 마음이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나한테 속았는데 그는 내 속마음을 알아챈 것이다

상대의 반응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겠다

 

2022년 3월 24일

탁이가 230만원이나 하는 예민한 노트북을 샀다

이건 이렇게 하는거고 저건 저렇게 하는거고 나한테 설명해주는데 아주 신났다

그러다 하는 말이 "근데 이제 이걸로 뭐하지???"

 

2022년 3월 26일

법인세신고 야근이라 삼주동안 대술에 못갔다

일에 대한 중압감이 커서 전화할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오늘  대략 일이 마무리가 돼서 오랜만에 엄니한테 전화했다

어떻게 전화도 안했냐고 너무 반갑다고 보고 싶다고 어쩔 줄을 몰라 하신다

겨우 삼주 못봤다고 이러신다

울컥했다

 

2022년 3월 30일

한밤중에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깼다

남자가 문을 열어달라고 한다

탁이가 눈이 똥그래져서 나오더니 긴장한 목소리로 "엄마 가만 있어 내가 나갈게"한다

경찰이다

아파트에 연기가 찼다는 신고가 들어와서 원인을 찾으려고 호수를 다 방문하는 중이라고 했다

경찰관 소방관 구급대원들이 삼십분을 헤맨끝에 오층에서 원인을 찾아냈다

누군가 가스불로 요리하다가 잠이들어 일어난 소란이었다

이 혼란스런 상황에 탁이가 있어서 너무 든든했다

엄마 가만 있어 내가 나갈게 이말이 계속 귓가에 맴돈다

 

2022년 3월 31일

중국집에서 이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청년 둘이 나온다

그중 어린 청년이 만오천원을 내민다

" 형 이거요 제가 반..."

형이 그 돈을 쳐다보며 "아냐 됐어" 하는데 말소리가 우물거린다

후배는 "그래도.."하면서 어정쩡하게 돈을 들고 있고

형은 계속 "아냐.."하면서 돈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마음은 의젓한 선배이고 싶은데 빈약한 지갑이 사람을 참 애처롭게 만든다

형이 기어이 잘 참았다

후배가 다음에 술사겠다고 하며 돈을 주머니에 넣는다

자두가 중국집 앞에서 킁킁거리느라 잠시 머물 때 

이렇게 순진하고 애틋한 연두빛 청춘들을 보았다

 

산책하다 이런거 봤어 저런거 봤어 이쁘니한테 시시콜콜 얘기해주면 

이쁘이가 그런다 

"엄마는 그냥 세상이 막 다 아름다워???"

 

2022년 4월 1일

쓰레기봉투위에 동백꽃가지가 놓여있다

누군가 붉은 동백꽃이 못견디게 예뻤나보다

그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그만 꽃가지를 꺾었나보다

그리고는 금방 후회했나보다

미안하고 부끄러워 슬그머니 이렇게 버리고 갔나보다

조금 전에 그랬나보다

꽃잎이 아직 싱그럽다

동백꽃이 갈증이 날 것 같았다

무작정 땅에 꽂아본다

엊그제 내린 비로 폭신폭신한 땅이 찢어진 동백가지를 부드럽게 받아들인다

동백꽃에게 봄이 조금 더 남아있는 거 같아  내마음이 흐뭇했다

 

2022년 4월 12일

퇴근한 탁이가 샤워하러 들어가며 말한다

"일하는게 행복해"

"우와 이렇게 감사한 일이~즐겁게 일하는게 얼마나 큰 행운인데"

"나도 그런거 같애 사람들하고 피곤하지 않고 족발도 재밌어"

족발 준비하는 일이 만만치 않아서 가끔 힘들다고 푸념해서 안쓰러웠는데

오늘 탁이가 나에게 너무나 멋진 선물을 한다

 

2022년 4월 14일

이쁜이가 헬스도 하고 요가도 하고 발레도 한다

발레교실에 흰머리 할머니가 계신데 나이들어서 발레하는 모습이 너무 멋지다고 한다

그 할머니한테 자극을 받아 울애기는 요가를 평생하고 싶단다

울애기가 좋은 사람 멋진 사람들한테 자극받으며 잘 살고 있어서 참 좋다

 

2022년 4월 15일

쑥뜯던 아줌마가 생판 모르는 나를 부른다

"커피마시고 가요"

떡이랑 커피 싸갖고 소풍나왔다는 아줌마

사무실에 한시까지 들어와야 하는 나는

그 멋진 아줌마랑 놀아주지 못해서 되게 미안했다

 

2022년 4월 18일

은파유원지에서 활짝 핀 솔방을 가져와 

물에 담갔더니 금방 땡글땡글해졌다

군산여행의 추억이 담긴 낭만 가득한 가습기

 

군산 벼룩시장에서 산 팔찌

 

2022년 4월 19일

꽃눈으로 내린 벚꽃잎이 풀꽃으로 다시 피었다

 

2022년 4월 21일

저니가 오늘은 나를 보고 손을 흔들며 웃는다

나도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오며가며 자주 보다가 슬그머니 인사를 나누게 된 사람

정도가 그리 심하지 않은 지적장애의 중년여인

며칠전 퇴근길에 저만치 앞서 가길래

다가가 어깨에 손을 얹으며 어디 가냐고 묻는데 아무 반응이 없었다

앞만 바라보며 걷고 있는 그니 눈동자가 텅 비어있었다

허수아비같은 그 모습에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지금 이 순간 이니는 어디에 있는걸까

 

2022년 4월 26일

 

어제도 알라딘궁전지붕같은 대파꽃봉우리 살그마니 쥐어봤었다

오늘 대파꽃 위에 벌이 벌벌거려 가까이 보니 노란 꽃술이 예쁘게 피었다

대파꽃이 이렇게 생긴 줄 오늘 처음 알았다

벌이 아니었으면 이렇게 예쁜 파꽃을 못볼 뻔 했다

고마운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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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6일

웃으며 다정하게 얘기를 나누고 있는 저 두 사람

저들 둘이는 서로가 없는 자리에서 상대방의 뒷담화가 신랄하다

싫은 사람 앞에서는 경직되어 표정관리가 전혀 안되는 나는 그들이 너무 신기하다

사회생활의 유연성 부족이다

그들에게 배워야겠다

 

2022년 1월 15일

내 만두실력이 일취월장이다

엄청 맛있다

엄니도 흡족해하신다

탁이한테 여지껏 만든 거 중에서 최고로 맛있다고 했더니

탁이가 하는 말이 내가 작년에도 그렇게 말했다네

작년에는 이만큼 안맛있었는데 이상하다

 

2022년 1월 21일

공터 잡풀 속에 흰닭 한마리가 산다

안전한 닭장이 없으니 해가 지면 천적을 피해 일찌감치 나무 위로 올라간다

닭이 자유롭지만 위태위태해보여

산책할 때면 나무위에 닭이 잘있는지 꼭 확인했다

얼마전 갑자기 닭이 보이지 않았다

기어이 일을 당했구나 가슴이 철렁했다

한동안 허전하고 슬펐다

웬걸 며칠후 조금 떨어진 대나무숲을 헤짚고 다니는걸 봤다

그러더니 얼마후 나무근처로 돌아왔고 여전히 해가 저물기 무섭게 나무 위로 올라갔다 

근데 훨씬 전보다 더 높이 올라가 웅크리고 있다

뭔 일이 있긴 있었나부다

그러다 다시 닭이 안보인다

이번에는 가슴철렁한 대신  어디서 잘 놀고 있겠지 생각한다

닭한테 무슨 일이 있는지도 아무것도 모르면서 나는 저번에는 슬퍼하고 이번에는 태평하다

진실과 무관하게 순전히 내 마음대로 세상을 읽으며 살고 있다

 

2022년 1월22일

상쾌한 아침공기

마음이 들썩거려 골목에서 아이처럼 깡총깡총 까치뜀을 한다

까치뜀을 하니 내가 어린애같아졌다

괜히 신나서 어깨까지 으쓱으쓱거리며 나풀나풀 걸었다

햐~이렇게 좋은걸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살았다

 

2022년 2월 7일

출근길에 까치 한마리가 작은 나무가지를 물고 날아간다

이 맹추위에 벌써?? 놀라고보니 2월이다

집짓고 짝찾아 삼월이면 새끼를 낳아야 하니 지금부터 바쁘겠구나

털달린 파카 입고도 춥다고 잔뜩 웅크리고 걷다가 까치보고 어깨를 폈다

찬바람에 코매운 아침에 얼핏 봄을 보았다

 

2022년 2월 9일 

원숙언니랑 춘천닭갈비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쌈이 더 필요해 손 번쩍 들고 알바생을 불렀다

어린 도령이 온다

야채를 좀더 달라는 내 말에 알바생이 식당 저쪽을 가리킨다 

거기에 샐러드바 셀프 커다란 글씨가 보인다

저렇게 커다랗게 써있는걸 못봤네 어이가 없네 

우리도 웃고 알바생도 웃었다

알바생이 이번엔 제가 갖다 드릴게요 한다

일하는게 서툴러 보이는 것이 알바를 막 시작한거 같은데 의외로 마음씀씀이가 여유있다

효율성을 높인다고 메뉴얼을 만들어놓고 사람이 메뉴얼의 로봇이 되어버린 요즘

풋풋한 청춘에게서 귀한 인정을 보고 감동했다

 

2022년 2월 10일

햇빛이 건물그늘을 밀어내고 있다

작은 눈사람이 그늘속에서 저에게 다가오는 햇빛을 바라본다

햇빛이 이미 발치까지 와있다 

저 햇빛에 닿으면 나는 사라지는데.....

지금 눈사람은 얼마나 무서울까

 

2022년 2월 15일

마음 깊은 곳에 간직하고도 말은 한마디도 못한 것은 

당신의 그 모습이 깨어질까봐 슬픈 눈동자로 바라만 보았소

기타치며 이 노래를 부르면 도연이 생각이 나서 아련해진다

노래를 끝내고도 스무살에서 깨어나지 못한다

노안 때문에 돋보기 없이는 악보도  보지 못하는 스무살할머니

 

2022년 2월 17일

탁이가 아이스크림가게에서 3년동안 알바를 했다

퇴직금을 대충 계산하면 삼백만원정도 된다

법적으로 당연히 보장된 권리인데 

업체는 줄 생각이 없고 탁이도 받을 생각이 없다

찜찜해 하는 나에게 탁이가 말한다

"삼백만원 대신에 사람을 얻었다 생각해

좋은 분들이야 나한테 잘해주셨어"

멍청한 탁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른스런 탁이다

 

2022년 2월 18일

눈사람 흔적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직 남아있었다

반갑고 안타까운 흔적

 

2022년 2월 25일

탁이가 3년동안 아르바이트를 한 베라사장님이 탁이를 칭찬했다

"탁이가 진중하고 예의바르고 남자다워요 아들 잘 키우셨어요"

인사치레 감안하고도 에미는 좋아죽겠다

 

2022년 3월 5일

낡은 청소기 소리가 비행기소리처럼 요란하다

힘을 소리지르는데 다 쓰는건지 정작 청소실력은 형편없다

살살 머리카락 줍는 정도다

청소기처럼 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다

 

2022년 3월 9일

탁이가 샤워하면서 콧노래를 부른다

탁이 노랫소리를 들으니 행복하다

어젯밤 일이 너무 힘들다고 해서 걱정했다

피곤할 때는 푸념도 하지만 출근할 때는 즐겁게 준비하고 나서니

바라보는 에미는 탁이가 대견하고 흐뭇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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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 2일

정자에서 기타를 쳤던 추억으로 무한천산책이 더욱더 즐거워졌다

싱글벙글

 

2021년 11월 4일

저니는 내가 어지간히 싫은가보다

말하고 행동할 때 나에 대한 적개심이 고스란히 보인다

멀리서 그러는거야 내 알바 아니지만

나와 접점이 생길 때면 승질이 올라온다

그럴 때 법륜스님한테 상담을 한다

"스님 쟤가 저한테 이렇게 하네요  까닭없이 이러는데 아주 승질이 나네요"

그럼 스님이 대답을 하신다

"그 사람이 그렇게 말하는데 왜 자기가 기분이 나쁘노

그 사람은 그럴만 해서 말하는 것이고 그건 그 사람 자유고

자기는 자기가 할 일을 했으니 된거고 

그럼 된거지 머가 문젠데

다 자기 그릇만큼 말하고 행동하는거야

남 신경쓰지 말고 자기나 똑바로 살아"

"그러네요"

법륜스님이 압력밥솥 증기배출구다

스님을 안만났으면 내 좁은 소견에 내 속이 터져도 수십번은 터졌을거다

 

2021년 11월 4일

지난밤에 비오고 아침부터 화창하다

산책나갈 때 스카프를 둘렀는데 조금 걷다보니 덥다

겉옷을 벗어 허리춤에 묶었다

어린 달팽이 한마리가 길 한가운데를 향해 느릿느릿 기어가고 있다

얘가 얘가 아주 죽으려고 지 무덤을 파는구나

그냥 둘 수 없어 살그머니 아주 살그머니 쥐어 올려 풀 위에 옮겨놓았다

손끝에 느껴지는 달팽이가 자두처럼 부드럽고 이쁜이볼처럼 아련하다

달팽이가 산책길의 발길과 자전거 바퀴에 으깨지는 일을 피하게 되어서 너무나 다행이다 

 

2021년 11월 4일

점방

 

2021년 11월 8일

하루종일 비온다고 했는데 볕이 든다

역시나 달팽이들이 길로 나온다

한치 앞도 모르고 길 한가운데로 기어나오는 애기들 몇을 길가로 옮겨놓았다

내가 자연에 개입하는 것인지 고민한다

어쩌면 달팽이들이 길을 건너는 것이 달팽이세계에서는 꼭 거쳐야 하는 일종의 통과의례가 아닐까

그렇다면 내가 옮겨놓은 달팽이들은 나의 엉뚱한 개입으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지 모른다

모른 척 할 수도 없고 손댈수도 없고 산책할 때마다 심란하다

 

2021년 11월 12일

월정마을을 걷는데 하꼬방같은 가게에 과자 몇개가 진열되어 있다

"울애기 과잘 사줄까?"했더니

이쁜이가 애기목소리로 "웅! 담배두"

 

2021년 11월 11일

바닷바람이 어찌나 사납게 부는지 머리가 산발이다

이쁘니가 사진을 찍다가 내가 너무 못난이로 나오니 한숨이다

때맞춰 나타난 응급치료센터

이쁘니가 여기서 내얼굴 치료하고 가자고 한다

 

2021년 11월 13일

새벽같이 한라산에 오르며 추울까봐 털잠바를 입고 출발했는데 날씨가 너무나 화창하다

이 옷입고 정상까지 갈 필요가 없겠다

탐라계곡대피소 의자에 잠바를 잘 걸어놓았다

"갔다올테니 여기 잘 앉아있어"

좋은 옷도 아니니 누가 가져가겠나 생각했다

세상에나

누가 가져갔다!!!!!!

누가?

그걸?

왜?

 

2021년 11월 16일

벤자민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

벤자민과 데이지의 시간은 반대여서

둘은 노인과 소녀로 만나 세월을 따라 아이와 여인으로 늙어간다 

그 둘이 마침내 젊은 여인과 젊은 남자로 만나게 되는 짧은 인생의 교차점

그 짧은 시간을 함께 하는 그들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생각해보니 요즈음이 이쁜이 탁이와 나의 시간이 그러하다

지난 시간은 어린 이쁜이 탁이를 내가 데리고 다녀야하는 시간이었다

앞으로는 이쁜이 탁이가 늙은 나를 모시고 다녀야 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젊은 아이들과 젊은 에미의 나란한 시간

이쁜이와 열한시간동안 한라산을 등반했다

균형 잘맞는 시이소처럼 나와 이쁜이가 함께 충만하면서 또 따로 자유로운 시간이었다

지금의 나는 일하고 있고 건강하고 이쁜이 탁이와 너무나 친밀하다

어찌 이보다 더 좋을까

 

2021년 11월 22일

쾌청한 날씨가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비바람이 몰아친다

마침 동네를 지나가던 중이라 천만다행이다

벌판이었으면 꼼짝없이 찬비를 맞을 뻔 했다

파란대문집 대문간에 서서 비를 피한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아이맥스급 영화다

거센 바람에 낙엽떼가 허공을 헤엄친다

바닷속 물고기떼 유영같은 낙엽들의 유영

 

 

 

2021년 11월 23일

밤새 안녕이라더니 어제도 멀쩡하던 목련이 밤새 나무토막이 되어버렸다

어제 보았던 뾰족뾰족 하늘을 향하던 솜털모습이 환상통처럼 눈앞에 보인다

이곳에 있던 느티나무도 베어지고 목련나무도 베어졌다

이제 이 골목에 찬란한 봄은 영영 사라졌다

2021년 11월 24일

흙고물을 잔뜩 묻힌 지렁이 한마리가 시멘트포장길 한가운데서 꿈틀꿈틀

불쌍하지만 지렁이라서 도와줄수가 없다 미안~

하지만 달팽이나 지렁이나 위험에 빠진 생명은 매한가지인데 이러면 안되지

달팽이는 맨손으로 해도 지렁이를 그럴 수 없다

억새줄기를 꺾어보는데 질겨서 끊어지지가 않는다

기다란 마른풀잎이 있어 반 접어 지렁이를 쓸어서 길가 풀숲으로 옮긴다

지렁이가 몸부림치는데 아휴 너무 징그럽다

 

2021년 11월 30일

그들끼리 평소 친하게 어울리는데 한사람이 자리를 비우자 그에 대한 뒷담화가 시작된다

그 모습을 보다가 문득 순간을 산다는게 이런거구나 싶다

함께 있는 순간에는 친밀감을 즐기고

안보일 때는 뒷담화를 즐기고

끄덕끄덕

 

2021년 12월 6일

이쁜이랑 파크하얏트 코너스톤에서 밥먹었다

밥값이 너무 비싸 안간다고 하려다가

이쁜이마음을 받아주는 것도 에미가 할 일이어서 그냥 즐겁게 따라갔다

그 음식을 다시 그 돈주고 사먹으라고 하면 절대 아니지만 

울애기와 함께 고급식당에서 우아하게 코스요리를 먹은 그 시간은 너무나 근사하고 행복했다

 

2021년 12월 11일

공연알바하는 날

공연을 축하하는 화환이 들어왔다

화려한 꽃과 리본에 적힌 인삿말이 공연장의 흥분에 일조한다

화환틀은 재사용이다

생각해보니 얘는 프리랜서다

상황에 맞게 꽃과 리본만 바꾸고 슬픈 곳 기쁜 곳 어디든 가서 그곳에 맞는 얼굴로 서있다

꼭 그래야 한다는 것도 없고 절대 그래서는 안된다는 것도 없다

화한속에 세상사는 이치가 보인다

 

2021년 12월 15일

다른 직원들 업체와 통화할 때 보면 참 중언부언 말하는게 졸가리가 없다

나는 핵심을 딱 잡아 간단명료하게 설명한다

다른 직원들 자료 정리하는거보면 우왕좌왕이다

나는 보기 좋게 정리하니 한눈에 내용이 파악된다

나는 참 일을 잘한다

이렇게 잘났는데 남들은 안하는 실수를 그렇게나 자주한다

잘난척 오진데 알고보면 꽝이다

실수 없이 꼼꼼하게 일처리 하는 직원들이 참 대단하다

내 꼴을 수시로 알아차려 그나마 다행이다

 

2021년 12월 20일

박창근이 부르는 다시 사랑한다면을 듣다가

다른 가수들이 부른 이 노래를 찾아보았다

저마다의 색깔로 아직도 사랑하는 그 사람과 이별해야 하는 슬픔을 노래한다

그래도 그들은 혼자서 이 비통한 이별을 감당해낼거 같다

나는 다시 박창근으로 돌아온다

박창근은 혼자 둘 수 없는 슬픔이다

슬픔을 어쩌지를 못해 으아아악 비명을 지르는 그니 곁에서 같이 울어줘야한다

 

2021년 12월 20일

티모시 설로메 설경구가 설씨 집안이라구 흥분하는 나에게 이쁘니가 

"엄마는 사는게 그렇게 재밌어? 맨날 그렇게 신나?"

울애기한테 에미가 그렇게 보이는구나

참 좋다

 

2021년 12월 30일

오후에 눈이 펑펑 내렸다

퇴근하고 눈구경삼아 하천둑길을 걸어 읍내장을 갔다

눈발 이고 있는 코다리 하나 샀다

한겨울 파장의 을씨년스러운 풍경에 여로의 희미한 불빛이 정겹다

멸치국수생각으로 입맛다시며 문을 열고 들어갔다

할아버지사장님이  난로가에 앉아 불을 쬐고 계셨다

장사 끝났는디요~

우와 벌써요?

날이 이래서 그런가 손님들이 많아서 육수가 없슈

커피나 드시고 가유

아뉴 다음에 올게유~

뚱뚱한 연탄난로에 잠깐 손을 쬐고 나왔다

다시 눈이 펑펑 내린다

청소부가 풍구로 인도에 쌓인 눈을 날리고 있다

굳이 눈을 맞으며 할 일은 아닌거 같은데 아저씨의 뒷모습은 묵묵하다

눈오는 밤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밤하늘이 너무나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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