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6일

남향을 바라보고 있는 잘 지은 이층집이다

이 집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사신다

칠십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할아버지가 깔끔한 성격이다

산책하다 보면 할아버지는 늘 집근처 어디선가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

울타리에 심어놓은 모란꽃이며 감나무, 텃밭이 그분 손길로 늘 단정하다

언젠가 밭에 의자를 내놓고 앉아 새를 쫓는 할아버지와 인사를 나누었다

잘 늙어온 선한 얼굴에 순박한 말투였다

 

그 집 널찍한 마당에는 늘 차가 몇 대 서 있다

간혹 아들 딸로 보이는 사람들이 마당에서 서성거린다

살림살이도 넉넉해 보이고

자손들도 끊임없이 드나들고

두 분 건강하고

골고루 다 갖추고 사는 행복한 노년이라고 그분들을 부러워했다

 

지인과 같이 그집 앞을 지나는데 지인이 나보다 그 집 사정을 더 훤히 알고 있었다

그집 이층에 사업에 실패한 아들이 갈 곳이 없어 처자식을 데리고 와 살고 있단다

아들 때문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걱정이 많단다

나의 이층집과 지인의 이층집이 이렇게 다르다

 

나 보고싶은대로 보고

나 해석하고 싶은대로 해석한다

맨날 세상을 오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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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3년 9월 5일

이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가구 조립의 달인이었다

반복되는 작업을 놀라운 속도로 해내는 단순노동의 달인이려니 속단했다

그는 속도의 달인 그 이상이었다

가구를 만드는 일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 일을 더 멋지게 하기 위해 나무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인도네시아로 유학도 갔다왔단다

그에게 가구조립은 생계를 위한 직업이면서 예술이었다

삶에 대한 철학이 멋진 사람이었다

탁이도 저니처럼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청년이 유학얘기를 꺼내기 전까지 나는 그를 멋지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단순한 일을 열심히 하며 사는 성실한 청년이라고만 여겼다

유학얘기를 듣고난 후 그 청년이 비범해 보였다

내가 직업 학벌에 대한 편견이 어마어마한 사람이다

날마다 맑고 밝은 생각으로 살겠다고 다짐해도 그 다짐은 그저 입술에만 매달려있다 

 

2023년 9월 6일 

엄마 아버지 돌아가신 일은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고 받아들이면서

고릿적 억울한 일은 왜 잊지 않고 수시로 끄집어내서는 괴로워하는지 참 모를 일이다

 

2023년 9월 7일

링컨대통령아버지가 구두만드는 사람이었단다

링컨이 대통령이 된 후 취임연설을 하려는데 귀족계급의 의원이 다가와 말했다

"당신 아버지가 내 구두를 만들었다 여기 있는 많은 사람들이 당신 아버지가 만든 구두를 신고 있다

당신 출신을 잊지 말라"

링컨이 연설을 시작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내 아버지는 구두만드는 사람이었다 여기 이 자리에도 내 아버지가 만든 구두를 신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혹시라도 구두가 맞지 않으면 나한테 말해달라 내가 아버지한테 구두만드는 방법을 배웠다 내가 고쳐주겠다" 

 

타인이 나를 모욕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나를 모욕하는 것이다

 

2023년 9월 9일

 

네드 달링턴이 예산에서 공연했다

어린왕자처럼 맑고 귀엽게 생긴 양반이었다

그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어떤 곡을 연주할지 설명한다

그리고 기타를 소중하게 품고 눈을 지그시 감는다

사방이 조용해진다

연주가 시작되고 그는 그만의 세계로 점점 가라앉는다

그가 얼마나 깊이 깊이 그만의 세계로 들어가고 있는지 그의 표정에서 고스란히 느껴진다

나는 그의 깊이가 너무나 부럽다

접시만큼의 깊이도 없는 내 기타가 너무나 안타까운 밤이다

 

2023년 9월 13일

한쪽이 열려진 베란다중문으로 나간 자두가 닫힌 문 앞에서 들어오지를 못하고 저렇게 앉아있다

불러도 멍 하니 앉아만 있는다

나가서 자두를 안고 들어올 때마다 마음이 불안하다

늙은 우리 자두가 혹시 치매증상인건가

요새 자두가 사과를 잘 먹는다

자두가 또 저러고 있길래 사과를 보여주면서 자두야 사과먹자~했더니

멀쩡하게 열린 문으로 들어온다

이쁜이 진단으로 자두가 관종이다

 

2023년 9월 16일

미경언니랑 노래부르면서 예당들판길을 걸었다

검은구름이 모여들더니 슬금슬금 빗방울이 떨어진다

빗줄기가 점점 거세진다

심상치 않다

길가 비닐하우스로 들어가 비를 피했다

양동이로 들이 붓는 것처럼 비가 쏟아진다

계속 걸었더라면 들판 한가운데서 완전 물폭탄 맞을 뻔 했다

언니가 이 참에 득음한다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데도 빗소리에 묻힌다

황순원의 소나기같은 산책이었다

 

2023년 9월 21일

바람이 서늘하다

저 멀리서 지금 가는 중이라는 겨울의 기별을 받은 아침

 

2023년 9월 22일

아침햇빛이 따뜻하다

가을이다

 

2023년 9월 23일

내 삶의 속도와 방향이 참 괜찮다고 생각하다가도

백화점에 가면 화려함에 쏠리고

재산 늘었다고 하는 친구 앞에서는 초라해지고 

내 마음 깊은 곳 진짜 내 마음을 아직 모른다

 

2023년 9월 26일

이균용 김행을 보면

자신들의 과오를 안들킬 것이라고 생각하는게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연히 통과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것 같다

 

2023년 9월 26일

댄스센타에 멕시코사람이 놀러왔다

강사 지인이라고 했다

무쵸 구스토 

부에나스 노체스

두마디 했더니 그니가 놀라면서 좋아햇다

매일 점심산책시간에 스페인어를 듣는다

간단한거 몇개는 머리에 입력이 됐는데 태반은 매번 처음 듣는 것처럼 복잡하다

진도가 나가지 않으니 싫증도 나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수시로 올라온다

오늘 두마디 하고 엄청 뿌듯하다

포기하지 말아야지

 

2023년 9월 27일

출근하는 골목길 작은 화단에 치자꽃이 활짝 피었다

몇달 전 시드는 치자꽃을 보며 이제 내년에나 다시 볼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그 마음 때문이었나

그제도 어제도 이 앞을 지나치며 화단을 보았건만 치자꽃을 보지 못했다

마음이 준비되어있지 않으면

보고도 보지 못하고

듣고도 듣지 못한다

 

2023년 9월 28일

자두하고 역전장에 다녀오는 길이다

열살 남짓한 꼬마 대여섯명이 우루루 걸어오는게 귀여워 눈을 맞추고 웃었다

걔중 한 아이가 스스럼 없이 안녕하세요 인사를 한다

안녕? 니들 어디 가? 했더니 시장으로 오뎅 사먹으러 가는 중이란다

자두를 보고 쓰다듬어도 돼요? 몇살이예요? 얘랑 저랑은 남매고 쟤들은 친구고 우리는 어디 살고 쟤들은 어디 살고

부동산가게 앞에서 가던 길 멈추고 한참을 조잘거린다

사장님이 나와 아저씨담배 펴야 한다구 저리 가서 놀라구 하니 추석 잘 보내세요 하고 간다

의젓한 꼬마친구들한테 나도 추석 재밌게 보내 인사했다

 

2023년 9월 29일

탁이하고 예향칼국수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뒷자리에 손님이 앉는 기척이 난다

주인아줌마가 물을 갖다주니 할머니가 말한다

"가는데마두 다 문닫아서 여기루 왔슈"

 

2023년 10월 2일

오래된 소나무 아래 한 여자의 행동이 수상하다

하늘을 올려다보고 나무를 쓰다듬는다

여자가 느린 걸음으로 나무 주변을 천천히 걷는다

한참을 그러고 있는 여자가 정신이 온전하지 않아 보인다

이쁜이한테 저 사람 이상해보이지 않냐고 물었더니

"딱 엄만야 엄마가 저러구 다녀"

 

2023년 10월 2일

연휴동안 이쁜이랑 자두데리고 여행을 가기로 했다

인터넷으로 자두가방도 열흘 전에 사놨다

자두가 가방에 적응하라고 짬짬이 가방을 꺼내 같이 놀았다

오늘 익산가는 기차를 탔다

자두가 잠시도 가만있지를 못하고 가방 밖으로 나온다

거친 숨소리가 안쓰럽다

이대로 익산까지 가다가는 자두한테 일이 생길 것 같다

홍성에서 내렸다

홍성 시내를 활보하는 자두가 너무 이뻤다

멀리 안갔어도  오늘 멋진 여행을 했다

 

2023년 10월 5일

늙어가는 얼굴이 너무 적나라하게 보여서 거울을 볼 때 돋보기를 쓰지 않았다

오늘 어쩌다 돋보기를 쓰고 거울을 봤더니 세상에나 아랫니 네 개에 검은 점들이 주근깨처럼 묻어있다

양치를 해도 지워지지 않고 휴지에 치약을 묻혀 문질러봐도 소용없다

늙는건 어쩔 수 없대도 추레하지는 말아야하는데 이게 무슨 꼴이람 

치과에 갔더니 커피 같은것 때문에 착색이 되서 그렇단다

다행히 스케일링을 했더니 없어졌다

내눈에만 보이지 않는 얼룩이 얼마나 많을 것인지 참 심란한 일이다

 

2023년 10월 9일

아파트 뒤 골목

니땅도 내땅도 아닌 골목에는 언제나 쓰레기가 버려져있다

계단을 가끔 쓰는 할머니가 있고

골목으로 대문이 난 집주인이 가끔 청소를 하는 그곳을 지날 때마다

지나다니기만 하는게 미안했다

휴일이면 그 골목청소를 할까 생각하다가도 미적대기만했는데

오늘 드디어 검은봉다리와 일회용장갑을 들고 나가 청소를 했다

생각만 한 일년한거 같다

마음먹은거 행동으로 옮기는게 이렇게 어렵다

 

2023년 10월 9일

나약한 아비 감상적인 아비 비겁한 아비 무책임한 아비

장국영 아비야

너의 아픔은 이해하겠지만 같이 아파해주지 못하겠다

네가 살아가는 방식은 한심하기짝이 없다

아비정전을 볼 때마다 내가 나이든걸 절감한다

이 나이는 장국영도 커버를 못한다

 

2023년 10월 10일

출근길에 옆자리 직원이 뒤따라 온다

"언니 신발 커?"

신발창을 깔았더니 깊이가 낮아져 신발이 헐떡거리는데 그걸 보았나보다

별얘기도 아닌데 그 말에 빈정이 상한다

이런 말을 지적으로 받아들이는 내가 옹졸하다

 

2023년 10월 10일

어린 민들레에 제초제를 뿌리면 기어이 홀씨까지 만들어내고 죽는다했다 

한살이에 대한 본능으로 죽음을 앞두고 최선을 다하는구나 

그 말을 듣고 민들레의 처절함에 숙연했다

오늘 제초제가 성장을 극대화시켜 식물을 말려 죽이는 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린 민들레를 거창하게 오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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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9월 2일

엄니허리가 많이 아프다

금요일 밤에 병원에 가자고 전화하셨다

토요일 아침 섬김택시를 보내고 나는 병원으로 직접 갈 생각이었다

엄니랑 시간약속을 하려고 전화를 걸었다

엄니가 아픈데 차는 안보내고 왜 전화만 하냐고 짜증을 내면서 내 말은 듣지도 않고 전화를 뚝 끊는다

택시를 타고 모시러가는데 부아가 난다

엄니 앞에서 골난 티를 팍팍 냈다

엄니가 미안하셨는지 불퉁스런 나를 보고 말씀하시는게 부드러워진다

 

삼성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었다

의사가 엄니 척추 세 개가 거의 붙어 있는 상태라고 했다

치료할 방법은 없고 쉰다 생각하고 입원하라고 권한다

입원실로 올라갔더니 간호사가 엄니 상태를 보고 보호자가 있는게 좋을 것 같다고 한다

코로나 때문에 한번 병동에 들어가면 나올 수가 없다

엄니가 괜찮으니 갔다가 내일 오라고 하신다

집에 오는 마음이 영 찜찜하다

 

다음날 코로나검사를 받은 후 병실로 들어갔다

간밤에 엄니가 통증도 심하고 식사도 전혀 못하셨다고 한다

드실 만한거를 이것저것 챙겨드리니 기운을 차리신다

곁에서 부축하지 않아도 화장실 가고 식사도 하신다

병원밥은 도저히 못먹겠다고 엄니가 퇴원하자고 하신다

 

월요일 연차를 내고 퇴원을 했다

단호박으로 죽을 끓여 드렸더니 잘 드신다

엄니가 고추를 따다가 두 고랑 남았다고 따라고 하신다

고추 따는데 비가 온다

비맞으면서 고추를 따는데 마음이 복잡하다

엄니가 고생했다고 어여 가서 쉬라고 몇번을 말씀하신다

엄니가 그러시니 복잡한 마음이 슬그머니 가라앉는다

 

엄니 덕분으로 나의 삶이 평온하고 행복했다

엄니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기꺼이 내가 나설 것이라고 각오했다

3일을 아픈 엄니랑 함께 지냈다

통증으로 예민해진 엄니가 버거웠다

나의 일상이 엉키고 오로지 엄니한테만 매여있어야 하는 상황이 우울했다 

급한 사정 내세워 멀찍이서 바라보고만 있는 다른 가족들을 원망하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고작 3일 갖고도 내 마음이 이렇게 엉망으로 뒤엉켜버렸다

나는 가증스런 위선자다

 

고모가 엄니를 모시고 갔다

큰병원에 가서 방법을 찾아본다고 한다

엄니가 고모네에 있는 동안 나는 엄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커다란 짐을 지고 있다가 내려놓은 것처럼 마음이 너무나 가볍다

위선을 벗은 진짜 내 모습이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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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 31일 

베란다중문 레일이 깨졌다

문짝이 꼼짝을 않는다

온힘을 다 해 문짝을 들어야 간신히 열리고 닫힌다

지난번 화장실 고쳐준 사장님한테 레일만 고칠 수 있는지 그 방법이 안된다면 중문 전체를 교체하는 비용은 얼마나 드는지 문의했다

며칠 만에 연락이 왔다

전에는 레일만도 수리가 됐는데 요즘은 안되고 전체 교체비용은 사백만원 정도란다

고칠 엄두가 나질 않는다

레일이 파손된 문은 닫아둔 채로 그냥 살아야겠다

 

베란다문 현관문 활짝 활짝 열어 놓고 살다가 한 쪽 문을 고정시켜 놓으니 마음이 답답하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봤다

레일만 수리한 사례가 나온다

규모가 큰 샷시가게로 전화를 걸어 상담을 했더니 웬걸 10만원에 레일만 바꿀 수 있다고 한다

4백만원짜리 문제가 10만원에 해결되는 기적이 일어났다

 

기사가 외국인 청년을 데리고 왔다

무거운 유리문을 어떻게 떼어낼까 궁금했는데 둘이서 유리창에 압축기를 써서 번쩍 들어낸다

두 사람이 작업하는 걸 보니 이 공사는 재료는 10%에 인건비 90%일거 같다

전문적인 기술이 있어야 하니 간단한 공정이라고 해도 10만원이면 절대 비싼게 아니다

근데 이니들이 레일을 하나만 갖고 왔다

작업과정이 원래 그런가 지켜보다가 그래도 미심쩍어서 기사한테 레일 두 개를 고치는게 맞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렇다는 대답에 전문가들 하는 일에 내가 괜한 걱정을 했구나 생각했다

 

기존 레일에 새 레일 틀을 덧씌우고 문짝 도르래를 바꾼 후 문짝을 제자리에 단다

뒷 문짝을 어떻게 떼어내려고 저러지 하는데 뒷정리를 한다

뭔가 확실하게 잘못되가고 있는거다

기사한테 파손된 레일은 언제 교체하는지 물어보았다

기사가 당황한다

보통 큰 문은 잘 쓰지 않아서 당연히 작은 문인 줄 알고 묻지도 않았다고 한다

말하자면 다친 다리 놔두고 멀쩡한 다리를 수술하는 의료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레일 한 줄 고치는데 십만원이라는 사실에 놀라고

그 돈이 멀쩡한 레일 고치는데 들어갔다는 사실에 또 놀란다

 

덧씌운 레일을 벗겨내서 뒷쪽 레일로 다시 작업을 하는거냐고 물었더니 기사가 난감해 한다

기사가 우물쭈물 앞쪽 레일도 곧 망가질 상황이었다고 말한다

기사가 책임을 져야 할 상황인데 나도 말을 못하고 기사도 말을 못하고 있다

어색한 순간에 탁이가 그냥 뒷줄도 추가로 하자고 한다

탁이는 지금 곤란해 하는 기사를 도와주고 싶은게다

엉뚱하게 십만원이 더 들게 생겼지만 그 방법밖에 없다

10만원의 기적이라고 감동했던 마음에 살짝 금이 갔다

 

레일을 바꾸니 문짝이 부드럽게 열고 닫힌다

실금이 간 마음이 다시 행복감으로 충만해진다

추가비용 10만원 때문에 이 행복이 쪼그라들 뻔 했다

그 돈은 엉뚱한 지출이 아니라 잠시 지연됐던 비용일 뿐이다

그러니 지금은 그런거에 방해받지 말고 새 레일의 부드러움에 마음껏 행복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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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의 밤길이었다

앳되보이는 청년에게 길을 물었다

청년이 손짓을 해가며 이렇게 저렇게 가라고 알려준다

캅자이 라이라이~인사하고는 척척척척 걸었다

골목이 나타난다 

골목으로 들어가라고 했는데 이 골목이 맞나?

내가 찾는 곳은 큰길가에 있을 것 같은데 여긴 너무 어두컴컴하다

긴가민가 하다가 맞겠지 하고 골목으로 척척척척 걸어갔다

한참을 가는데 뒤에서 누가 마담~ 마담~ 하면서 쫓아온다

아까 길을 알려준 청년이다

청년이 나한테 길을 알려주고 잘 가나 지켜보았나보다

예상대로(?) 내가 엉뚱한 길로 새는걸 보고 헐레벌떡 뒤따라온 것이다

낯선 곳 밤거리에서 이렇게 마음이 따뜻한 청년을 만났다

 

여행자거리에 있는 여행사를 찾아가는 중이다

가메가메 네다섯번은 길을 물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알려준 사람이 거의 다 왔다고 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여행사가 보이지 않는다

더운 날씨에 더 헤매다보면 병날거같다

마침 뚝뚝이가 한 대 서 있길래 뚝뚝이기사한테 여행사를 아냐고 물었다

기사가 오케이오케이 하더니 십만킵을 부른다

이 근처 어디라고 했는데 뭔 십만킵씩이나 한다나 

됐다고 하고 돌아서니 다급하게 팔만킵 하다가 오만킵까지 내려간다

뚝뚝이 호사 한번 누려보자 

그런데 내가 여기까지 물어물어 한참을 걸어왔던 그 방향으로 뚝뚝이가 달린다

점점 멀어져가는 여행자거리 점점 멀어져가는 시내

뭔가 잘못되가고 있다

나는 지금 뚝뚝이기사한테 납치를 당했구나

뚝뚝이를 멈춰 세우고 싶은데 어영부영 그냥 가면서 혼자서 공포영화를 찍었다

십여분이나 갔을까

주택가에 있는 건물 앞에 멈추더니 다왔다고 한다

미심쩍어서 기사에게 잠깐 기다리라고 하고 건물에 들어가서 확인을 했더니 웬걸 이곳이 여행사다

코로나로 여행자거리에 있던 여행사가 다 문을 닫고 두 곳만 남아 이곳으로 이전한거였다

터무니없이 뚝뚝이기사를 의심한 것이 너무나 미안했다

 

저녁을 먹다 옆 자리에 앉은 한국사람하고 우연히 말을 하게 됐다

사십대중반으로 보이는 남자였다

십년동안 라오스에 왔다갔다하다가 아주 이곳으로 이주하기로 결심했단다

이곳에서 식당을 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 사람이 며칠전에 백오십만원이 든 지갑을 잃어버렸는데 그 지갑이 고스란히 호텔로 돌아왔단다

그날 그는 너무 감동해서 엉엉 울었단다

라오스사람들이 정말 좋은 사람들이라고 했다

 

쇼핑몰 화장실이었다

화장실 입구 바로 옆에서  어른과 아이들이 함께 밥을 먹고 있었다

식사중인데 화장실 들어가기가 살짝 민망했다

한데 그들은 집에서 밥먹는 것처럼 아주 평화롭다

화장실 세면대에 부엌세간살이가 빼곡하다

웬만한 가정집 부엌이라 할 정도였다

볼 일을 보고 나오는데 할머니가 삼천킵이라고 한다

유료화장실이었다

화장실이 그들의 가게인 셈이다

아무리 깨끗해도 화장실은 화장실일텐데 그들에게는 화장실에 대한 편견이 없어보였다

그들에게 화장실은 소핑몰의 옷가게나 보석가게처럼 그냥 가게인 듯 하다

담담한 그들의 태도가 참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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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닭고기국수를 한번 더 먹고 싶었는데 저녁장사만 하는 곳이라 그러지를 못했다

이번 여행에서 제일 아쉬운 일이다

일상의 신앙심은 깊고 

종교의 형식은 느슨했다

기차 안에서 만난 할머니말이 어깨를 드러내고 입는 것은 결혼을 하지 않은 여인의 옷차림이란다

어디서건 이 영수증을 썼다

위에 써 있는 문구가 궁금해 번역기를 돌려보았다

라오스인민민주공화국 통일 독립 민주주의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벅찬 문구에 감동했다

 

 

닭들이 다리가 껑충하고 몸집이 작은 것이 약간 꺼벙했다

노래실력도 그랬다

 

무앙프앙 차부

시동이 걸리지 않는 차를 출발시키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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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앙프앙에서 루앙프라방을 가려면 방비엔으로 와서 기차를 타야 한다

아침 여덟시 반에 밴을 탔다

앞자리 큰애기 소년 청년 나 이렇게 승객이 네명이다

조촐하니 승용차 같다

앞자리 앉은 큰애기가 유튜브로 라오스노래를 찾아 틀었다

어떻게 한건지 음악소리가 자동차 스피커에서 나오는 것처럼 차 안에 꽉 찬다

라오스노래가 우리 가요랑 비슷하다

큰애기가 날씨에 맞게 선곡하는 건지 모든 노래가 비내리는 날씨와 잘 어울린다

큰애기한테 음악이 참 좋다고 얘기해줬다

방비엔까지 두시간 동안 멋진 드라이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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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 18일

미숙이 딸이 진지한 연애를 하고 있단다

지난주에 딸이 와서는 심각하게 말하기를

그 사람을 데리고 와서 엄마아빠한테 인사를 드리고 싶은데 집이 너무 낡아서 창피해서 못데리고 오겠단다

딸한테 그런 얘기를 듣고 가슴이 아팠다고 미숙이가 울먹인다

 

7층 살던 선배언니가 얼마전에 이사를 갔다

미숙이네와 같은 이유였다

예비사위가 인사하러 온다는데 딸이 좁은 아파트가 창피하다고 했단다

 

햇빛 잘들고 바람 잘 통하고 전망 탁 트여 멀리 예당저수지까지 보이는 우리집

현관문을 열고 환한 우리집에 들어설 때마다 정말 행복하다

좁아서 불편하기는 해도 넘보기 창피하다는 생각은 없다

나는 이런데 탁이랑 이쁜이는 어떻게 생각할까

 

이쁜이한테 민지얘기를 해줬다

이쁜이라면 우리집에 사랑하는 사람을 데리고 올 수 있겠냐 물었더니 

선선하게 물론이지~한다

우리집도 자기의 일부분인데 사랑하는 사이라면 그것이 문제가 되겠냐는 것이다

탁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탁이와 이쁜이가 에미를 닮아 현실감이 떨어지는 것인지

아니면 쉽게 바꿀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정신승리인지 알 수 없다

이유가 무엇이든 이쁜이랑 탁이가 그렇게 말해 줘서 나는 안심했다

서로에게 미안하거나 원망하는 마음이 없이 살아가는 이 삶에 너무나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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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발공양후 숙소에서 자전거를 빌렸다

어디로 가는 지도 모르고 눈이 가자는 대로 마음이 가자는 대로 핸들을 움직였다

뚜벅이의 한계를 한참 벗어나 좀더 깊숙히 들어가 보는 라오스의 일상이 너무 흥미롭다

대책 없이 휘뚜루마뚜루 돌아다니다가 돌아가려 하는데 여긴 어디? 

숙소가 유명한 야시장근처에 있다

야시장은 알겠지 하고 사람들을 붙잡고 물어보는데 내 영어 시원찮고 라오스사람 영어 시원찮아 소통불가다

번역기도 소용없다

살짝 맨붕이 올만큼 심각한 상황이다

잘 볼 줄도 모르는 구글지도를 켰다

궁하면 통한다더니 평소에는 당최 모르겠던 사용법인데 대충 알겠다

구글지도 덕분에 간신히 시내로 돌아올 수 있었다

여행력이 업그레이드 된거 같아 뿌듯했다

 

강변 노천카페에서 말차라떼를 주문했다

플라스틱뚜껑이 거추장스러워 벗겨내고 마셨다

강물을 바라보며 우아하게 차를 마신지 한참

직원이 슬그머니 휴지를 놓고 간다

뭐지??  혹시???

휴지로 입술을 닦으니 초록색 크림이 묻어난다

입술에 잔뜩 크림 묻히고 실실 웃으며 앉아있는 외국아줌마가 얼마나 멍청해보였을까

직원 오늘 좋은 구경했으니 일진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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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탁발공양이 5시부터라고 했다

알람을 오분 간격으로 열개는 걸어놨다

그렇게 해놓고도 불안해서 뒤척이다가 3시가 넘어서야 잠이 들었다

 

첫 알람소리에 눈을 떴다

빗소리가 들린다

큰비는 아니어서 이 정도면 탁발공양을 할 것 같다

그런데 대문에 자물쇠가 매달려 있다

자물쇠는 잠겨있고 숙소는 일곱시가 다 되도록 인기척이 없다

하릴 없이 숙소에 앉아서 담장 너머로 탁발 끝내고 돌아가는 스님들만 바라보았다

 

나중에 알아보니 방열쇠가 두 개 달려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대문열쇠였다

체크인할 때 주인할아버지가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다

루앙프라방에서 이틀 묵었기에 다행이지 안그랬으면 큰 낭패를 볼 뻔 했다

 

둘쨋날 새벽 다섯시

어디에서 탁발공양을 하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큰길로 나왔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돗자리와 의자가 있었다

아직 너무 시간인지 공양물을 파는 부부와 나밖에 없다

부부가 나에게 공양 드릴 찰밥과 바나나잎으로 싼 반찬이 든 바구니를 갖다준다

아내가 스카프를 한 쪽 어깨에 걸쳐서 매주면서 공양드리는 방법을 알려준다

찰밥 조금 떼서 반찬과 함께 넣으라고 한다

그걸 제대로 못하고 한번은 찰밥만 떼서 넣었더니 스님이 안가고  웃으면서 반찬을 가리켰다

어린 스님들이 한 차례 지나가고 다시 공양물을 샀다

조금 있다가 장정스님들과 어른 스님들이 왔다

다른 곳을 거쳐 왔는지 스님들이 들고 있는 통마다 공양물이 가득했다

그런데 그 속에 지폐가 섞여있다

음식그릇에 돈이 들어있는 광경에 놀랐다

숱한 사람의 손으로 건네진 밥과 과자와 돈이 마구 섞여있는 음식으로 식사를 하는 스님들이 안쓰러웠다

 

탁발공양이 시작될 때 저만치에 모여있는 스님들을 보고 살짝 떨었다

근데 너무 많은 스님들이 빠르게 지나가니 손이 바빠 긴장할 새도 없었다

나중에는 간간히 스님들과 눈을 마주치고 웃기도 했다

맨발의 스님들은 어려운 성직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정겨웠고 한편으로 남루해서 마음이 짠한 자식같고 아버지같은 사람들이었다

 

나누고 감사하는 탁발공양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라오스사람들은 좀더 착하게 살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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