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길기두 해라
스님은 이런 날에는 말씀을 좀 짧게 하시지 눈치도 없으시다
스님은 오랜만에 사람이 절집에 가득하니 기분이 좋으신지
별로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 말씀을 지루하도록 길게 하신다
예불과 법요식이 얼추 두시간이나 계속됐다
나야 불경소리가 좋고 타오르는 향불의 연기를 바라보는게 좋아 어찌어찌 견딘다지만
우리탁이는 아주 고역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스마트폰이 있어 그거 만지작거리며 따분함을 견딘다
그래도 몸부림이어서 다리를 뻗기도 하고 아주 문어마냥 흐느적거린다
그 모습이 거슬리기는 하지만 혼내고 싶지는 않다
아직 어리니 부처님이 버릇없다고 나무라지는 않겠지
이렇게라도 법당에 앉아있는 탁이가 고마울 뿐이다
탁이에게 들려주고 싶고 느끼게 해주고 싶은 부처님의 기운이다
더있으면 폭발할거 같다는 탁이말에 나도 마찬가지고
가랑비내리는데 추녀밑에서 옹색하게 밥먹는 것도 별로 내키지 않아
정갈한 절밥과 쫄깃한 절편을 포기하고 일찍 나왔다
탁이와 걷는 비오는 길
우산 하나갖구 토닥투닥거리는게 아주 재미지다
이렇게 좋은날이니 내가 우리탁이한테 맛난거 사줘야지
절에 다녀오는 날에는 곧바로 집에 가야 한다는 엄니말이 걸리긴 했지만
동흥루가서 거하게 깐풍기와 짜장면을 쐈다
맛있게 먹는 탁이모습이 얼마나 뿌듯한지 아 너무 좋아
비가 아까워 우리탁이랑 꼭 가고 싶었던 찻집에 들러 핫초코와 커피를 마시니 완전 좋아
찻집주인이 우리탁이 사주를 봐주는데 대인관계가 아주 좋은 사주란다
오기가 있어 마음만 먹으면 무슨 일이든 해낸다고 하니 지금 공부랑 안친한 것에 대한 불안함이 조금 가신다
우리탁이가 아주 좋은 씨앗이라니 마음 든든하다
꽃가게앞을 지나다 엄니 꽃사줘라 한마디 했더니 애인보다 멋진 우리탁이가 내게 화분 두개를 선물한다
껑중한 줄기 위로 매달린 잎파리가 담백하니 기품있는 백죽이다
우리탁이처럼 순수하고 맑은 기운이 느껴져 좋다
에고 이렇게 이쁘고 사랑스런 우리탁이
우리탁이가 에미랑 놀아줘서 비오는 초파일이 참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