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중인데 탁이한테서 전화가 왔다
"이비에스 다 했어"
"우와 벌써 다했어? 우리 탁이 훌륭해"
시간을 보니 여덟시 반이다
요새 게임톡하는 재미에 빠져 아홉시까지 컴퓨터하는 탁이인데 뭔 일이지? 미심쩍다
'에이 우리탁이가 거짓말은 안하지~아 기분 좋다'
아홉시 조금 넘어 집에 왔다
책상 위에는 나 보라는 듯 영어책이 펼쳐져있다
에구 우리탁이가 억지로라도 하긴 했나보다 시늉이라도 내는게 어디야
기특해서 뽀뽀를 마구마구 해줬다
어설픈 탁이, 괘씸한 탁이
청소하다 보니 영어책이 펼쳐진 곳은 며칠전에 공부한 페이지였다
우리탁이가 거짓말을 한거다
그것도 내가 다그쳐서 궁지에 몰려 어쩔 수 없이 한 거짓말이 아니고 지가 선수쳐서 내게 거짓말을 했다
탁이한테 기만당했다는 생각에 너무나 화가 났다
나는 단순했으면 좋겠다
화가 나면 그냥 막 화를 내고 넘길 거면 까이것 하고 대범하게 풀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난 너무나 생각이 복잡한 사람이다
탁이의 거짓말이 애들이 할수 있는 별거 아닌 거짓말이라는 생각이 드는 한편
너무나 교활한 거짓말이어서 지금 바로잡아주지 않으면 앞으로 더 큰 거짓말도 아무렇지 않게 할거 같다
현명한 부모는 이럴 때 어떻게 화를 내야하는거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내가 제대로 된 부모가 아닌 것 같다
결국 화도 제대로 못내고 "너무 실망스러워서 너를 쳐다보기가 어렵다"는 말을 하고 그 자리를 피하고 말았다
그러고는 또 탁이가 실망했다는 내말에 상처를 받지는 않았을까
내가 현명하지 못했구나 자책을 했다
탁이가 잘못을 해서 괴롭고, 그것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한 어설픈 에미여서 괴로워
밤이 늦도록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탁이를 윽박질러서 바로잡을 수는 없는 일이다
지난 일은 지난 일로 갈무리하고 오늘을 새롭게 맞는다
아침에 일어나서 약간은 어색하지만 그래도 어제일은 잊은 듯이 행동했다
아침 뽀뽀를 하고 학교가는 탁이에게 사랑해 잘 다녀와 하며 꼭 안아주었다
탁이는 나보다 현명할 것이다
그리고 탁이는 바르게 아름답게 잘 자랄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 마음을 지키는 것이다
때맞춰 라디오에서 시월의 어느 멋진날에가 나온다
잠시 잊고 있었던 나의 노래
우리아이들에게 보내는 나의 마음
너를 만난 세상 더는 소원없어 바람은 죄가 될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