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 1일

음력 9월 16일

1999년 아버지 69세 양띠 살아계시면 90세

2006년 엄마 72세 돼지띠 살아계시면 86세

아버지기일 다음날 새벽에 엄마가 돌아가셔서 한날이 된 엄마아버지 기일

기일이 같으면 천생연분이라는데

사실 골을 잘 내는 아버지 때문에 엄마가 속을 많이 끓이셨다

농담인 것처럼 다음 생에는 아버지랑 결혼안할거라고 했는데

하늘에서 두 분이 잘 지내고 계시겠지

사진속 엄마아부지가 세상 착하게 웃고 있다

엄마아버지 얼굴이 서로 많이 닮았다

고맙고 보고싶은 엄마아버지

곧 만나~ 

 

2020년 11월 2일

자두가 발로 박박 긁어 나달나달 헤진 곳을 짜깁기 해달라고 바브라언니한테 부탁했더니

이렇게 예쁘게 하트로 마무리를 했다

일이 예술이 되는 순간

삶이 예술이 되는 순간

 

2020년 11월 3일

삶에는 총량의 법칙이 있어

어려서 어리광을 양만큼 못한 노인이

치매로 그걸 대신하는 것은 아닌지

 

2020년 11월 5일

자두보다 조금 커보이는 고양이다

고양이를 본 자두가 그르릉 위협하며 쫓아간다

고양이가 잽싸게 자동차 뒤로 도망간다

저보다 작은 자두한테 쫓기는게 어이가 없었나

고양이가 금방 돌아와 가만히 앉아 자두를 바라본다

자두가 또 그르릉 하며 고양이에게 덤빈다

고양이가 등을 동그랗게 말며 일어나더니 자두에게 달려든다

어머나 깜짝이야 놀란 자두가 유턴해 나에게 달려온다

퇴근한 탁이가 자두보고 "고양이한테 발렸다며?" 계속 놀린다

자두가 개무룩하다

2020년 11월 5일

꼬마김밥 아저씨가 빨간 배달통을 들고 논두렁에 나타났다

"여기 무한천운동장 가는 길목에 있는 논인데 트렉터 있는 데로 김밥이랑 떡볶이좀 갖다주세요"이랬을까?

엄니 젊어서 밀미리다리쪽에도 논이 있었는데 모내기할 때 참이며 밥을 다라에 이고 날랐다고 하셨다

무거운 다라를 이고 가다가 도중에 누구라도 만나면 그니 도움받아 내려놓고 잠깐 쉬는데

아무도 못만나면 꼼짝없이 삼십분을 쉬지도 못하고 걸으셨단다

듣기만 하는데도 못밥을 머리에 이고 있는 내 몸이 땅으로 박히는 기분이 드는 이야기

지금처럼 살기 좋은 세상이었으면 우리엄니들도 고생을 조금 덜 했을텐데

에고 생각할 수록 불쌍한 우리엄마 우리엄니들

 

2020년 11월 6일

"김장할 때 되니까 00아 니가 가까이 살아서 좋다 이러는거 있지 딴때는 뭐라구 지랄만 하면서"

친정엄마랑 통화한 얘기를 하는 직원말에 다른 직원들이 재밌다고 웃는다

나는 '지랄'이라는 말에 잔뜩 심각해져서 그니를 다시 볼 때

다른직원들은 그냥 하는 말이려니 하고 웃어넘긴다

다섯명 고참그룹이 우리 십년차 신입 둘을 안받아들이는 구조로만 바라봤는데

요즘 곰곰히 생각해보니 내 고지식한 면이 스스로 차단막을 치고 있는거 같다

 

2020년 11월 6일

 

꽃이 슬그머니 와서 뿌리내린 제자리

 

울타리를 덮었던 나팔꽃덩굴이 겨울을 나러 어디론가 떠나가고 있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니 아쉽지만은 않게 안녕

누군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작별인사가 짜이지엔이라 했던가

짜이지엔 再見

 

2020년 11월 11일

1980년 중학교 2학년때

고등학교와 같이 있던 학교가 새터에 교사를 짓고 이사했다

허허벌판에 건물을 지었고 우리가 학교주변에 어린 나무를 심었다

체육선생님이 같이 나무를 심으면서  "몇십년 뒤에 니들이 여기에 와서 이 나무를 보면 눈물이 날거다"하셨다

40년이 지나 어린 나무가 이렇게 컸다

15살 여리여리한 아이도 저 나무처럼 듬직한 55살 어른이 되었다

눈물대신 벅찬 감동이 인다

 

2020년 11월 12일

다음주에 비올거래

그때까지 둘이 서로 의지하고 잘 버티자

 

2020년 11월 14일

김장을 했다

엄니가 열포기만 하신다고 했으니 스무포기 정도 된다

애들작은고모부부가 김장하는거 도와준다고 왔다

스무포기 갖고 넷이 하니 소꼽장난 같고 맛있는 수육을 먹는 잔치같다

서로가 다른 사람이 더 힘들까봐 마음써가며 일을 찾아한다

김장하는 날이 즐겁다

시어머니 며느리들이 김장갈등으로 힘들어 하는 얘기를 읽으며 내 복에 감사한다

 

2020년 11월 17일

부탄에서는 필요하다는 말과 원하다는 말이 같다고 한다

필요한 것과 원하는 것이 일치하는 삶

삶의 가장 중요한 자세 

 

2020년 11월 19일

좋은 인연에 감사합니다

날 힘들게 하는 인연은 이만큼만 힘들게 해서 감사합니다

 

2020년 11월 21일

어느집 담장 아래 스티로폼상자에 담긴 가을

 

2020년 11월 22일

영화처럼 아름다운 일상

 

 

 

 

 

 

 

 

'시시콜콜'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1년 짧은얘기 - 1월  (0) 2021.01.04
2020년 짧은얘기 - 12월  (0) 2020.12.02
2020년 짧은얘기 - 9월 10월  (0) 2020.09.08
2020년 짧은글 - 7월 8월  (0) 2020.07.08
2020년 짧은글 - 5월 6월  (0) 2020.05.15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