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눈 위에 들어간 발자국과 나온 발자국이 찍혔다
이 길이 막힌 걸 아직 모르는 사람이거나
오랜 시간 다녀온 길을 발이 기억하고 무심코 들어가 남긴 흔적이다
아파트 뒤로 난 샛길이 막힌 지 보름정도 됐다
나는 아직 적응이 되지 않아 출근할 때마다 그리로 눈길이 간다
십년 넘게 다니던 길이 막힌 후유증이 크다
이사올 때도 그 길로 다녔으니 십년도 훨씬 더 된 샛길이다
내리막길 끝에 있는 집과 그 집 앞에 딸린 작은 텃밭 옆으로 난 샛길이다
아파트에서 내려가는 길이 D자 형태로 두 갈래인데
배부른 쪽은 경사가 완만한 대신 좁고 후미진 긴 골목길이고
등쪽은 경사가 심한 대신 거리가 짧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 샛길로 많이 다녔다
눈이 쌓이거나 비가 올 때면 대책없이 미끄러지는 길이어서
계단 몇개 놔줬으면 좋겠네, 이동네 이장님은 뭐하신대나 투덜대기도 했다
얼마전 관리실에서 방송을 했다
샛길이 개인땅인데 이제 길을 막을 거란다
방송 듣고 나오던 날 샛길로 들어서는 곳에 손글씨 푯말이 세워졌다
'길 없습니다 옆길로 다니세요'
그새 길에 나무 두 그루도 심어놨다
샛길 역사가 십수년일 텐데 길이 지워지는거 참 순식간이었다
이제 그곳이 길이었다는 흔적조차 희미하다
몸은 체념이 빠른데 마음은 여전히 적응을 못한다
매일 아침 그 앞을 지나갈 때마다 나는 아쉽다
그 땅이 꼭 필요해서 길을 막은 것 같지도 않아 보인다
내 땅이니 표시를 해놓겠다는 의미밖에 없어보이는 작은 나무 두 그루
내가 땅 주인이었으면 어떻게 했을까
내 땅이 길이어서 내 땅도 아니고 넘의 땅도 아닌 경우가 없어서 할 말은 없다
그저 지름길을 잃고는 내가 땅 주인이면 나는 길은 안막겠다는 하나마나한 결심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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