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워기가 고장났다
검색해보니 샤워기를 바꿔다는 일이 어려운게 아니다
몽키스페너만 있으면 나도 얼마든지 할 수 있겠다
간단하구먼
문제는 몽키스페너였다
크기를 조절할 수 있는 거는 비싸서 염두에 두지 않고 이삼천원 하는 몽키스페너를 골랐다
근데 크기가 아주 조금씩 차이가 나서 샤워기에 일일이 대봐야 했다
철물점 직원이랑 가게에 있던 아저씨랑 둘이서 애썼다
네다섯개는 들었다놨다 하다가 드디어 맞는 것을 찾았다
그때 드는 걱정 하나
집에 있는 샤워기랑도 맞을까?
철물점 직원이 관리실에 고쳐달라고 부탁해보란다
그 생각을 안해본 것은 아닌데 경비아저씨가 나이드신 분들이고 이런 일은 잘 안하려고 하신다
그래도 경비실에 공구는 있을지 모르겠다
십여분 동안 번거롭게 해놓은게 미안해서 우물쭈물하는 나에게 철물점 직원이 괜찮다 그냥 가라고 한다
기대 안하고 경비아저씨한테 공구가 있는지 물었다
웬걸 오셔서 샤워기까지 바꿔달아주신다
오마나 진즉에 물어라도 볼 걸 그랬다
생각할수록 철물점직원의 친절이 고맙다
그니 샤워기포장 뜯느라 손톱까지 망가졌다
이것저것 꺼내느라 귀찮았을법도 한데 물건을 팔겠다는 악착같은게 없이 순해서 좋았다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겠는데 방법을 모르겠다
역전장날 단감을 한봉다리 샀다
무심코 그 철물점을 지나 한참을 걷다가 문득 그니 생각을 했다
되돌아가 테레비를 보며 웃고 있는 그니에게 단감 두 개를 건넸다
그니는 큰 눈이 더 커지며 웬일인가 한다
"지난 번에 고마워서요~"
누군가에게 행한 작은 친절이 메아리가 되어 돌아 온 것에 그니도 기쁠 것이다
어쩌면 지금보다 더 친절한 사람이 될지도 모르겠다
나도 감사함을 마음에만 담아두지 않고 그니에게 보여준 것이 기쁘다
친절이 일으키는 작은 파문이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