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먹고 산책을 나갔다

골목길 담장옆에 피어있는 꽃들을 이뻐하며 천천히 걸었다

처음보는 꽃이 있어 발길을 멈추고 들여다보고 있는데 뒤따라오던 할아버지가 머뭇머뭇하신다

"할아버지 꽃이 참 이쁘지요?"인사를 건넸더니

할아버지도 풀꽃같이 웃으시며 내 옆으로 다가오신다

나보다 키가 한참 작은 할아버지걸음에 맞춰 더 천천히 걸었다

할아버지는 걸으면 허리가 아픈데 그래도 이렇게 한바퀴 돌아야 기분이 좋아진단다

집에만 있으면 아주 답답하고 시간도 안간다네

아흔이 다 되셨다는데도 얼굴은 놀라울만큼 주름살이 없다

귀도 아주 밝으셔서 대화나누기가 편안했다

날 보고 아주 한창 때라면서 한 오십 되어보인단다

" 예 얼추 오십됐어요ㅎㅎ"

가을이었으면 할아버지얘기가 무지 씁쓸했을텐데 지금은 이꽃저꽃 이쁜 봄날이니 웃을 만 하다

"할아버지도 마당에 꽃 심으셨어요?"하니 아무것도 안심고 고추만 다섯포기 심었다고 하신다

그것 갖고도 실컷 드신다네

나랑 얘기하면서 걸으니 재미있으시단다

"늙은이를 누가 쳐다봐주나" 하시면서 말이다

갈림길에서 인사를 하는데 내가 가는 쪽으로도 집에 가는 길이 있다며 나를 따라오신다

우리할아버지가 많이 심심하셨나보다

점심시간만 아니었으면 중학교 앞 동네라는 할아버지댁까지 천천히 말동무해드리고 싶었다

꽃구경 나갔다가 생각도 못했던 말동무를 만나 좋았다

 

 

 

'내 그림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행 - 사람  (0) 2012.05.02
여행 - 그곳 영산암  (0) 2012.05.02
한비야 - 그건 사랑이었네  (0) 2012.04.18
비탈길  (0) 2012.03.30
행복  (0) 2012.03.14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