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2일

무슨 흔적일까 살펴보니 그 끝에 미꾸라지가 있었다

범람하는 하천물에 길로 올라왔다가 빠져나가는 물을 따라가지 못해 

길 위에서 이렇게 고통스럽게 죽어갔다

물에 잠겼다가 드러난 산책길이 참혹하다

 

2021년 9월 7일

엄마가 쓰던 것이니 거의 20년이 다 되어가는 이불

얇고 가벼워서 좋긴 한데 색이 너무 바랬고 보풀도 심하다

그동안 몇번이나 버리려다 말았는데 이제는 정말 버려야 할 거 같다

내놓기 전에 탁이한테 말했더니 익숙한 물건이라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말에 이불을 펼쳐본다

보풀만 제거하면 어디 헤진 데도 없어서 아직은 한참 더 써도 되겠다

보풀제거기 지나간 자리가 아주 말끔해진다

부드러운 엄마이불을 다시 잘 개어 넣었다

추억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탁이마음이 이쁘고 고맙다

 

2021년 9월 14일

30년 된 치마

타이트한 치마여서 트임부분이 꼬매면 튿어지고 꼬매면 튿어졌다

몇년전에 입을 만큼 입었으니 버리려고 했다

그러다 혹시나 방법이 있을까 싶어 수선집에 갖다줬는데 주인아줌마가 이렇게 손톱만한 가죽으로 막아줬다

폼도 나고 튼튼하다

전에는 치마를 입고 걸을 때 튿어질까봐 조심했는데

쭉쭉 시원시원하게 걸을 수 있게 됐다

앞트임 사이로 살짝살짝 다리가 보일 때면 기분이 엄청 근사해진다

수선집 아줌마의 멋진 센스 덕분에 수명연장된 나의 치마

칠십할머니 때도 입을 수 있을거 같다

 

2021년 9월 23일

하얀 원피스에 이쁜이가 준 빨간 구두를 신었다

아주 산뜻하니 이쁘다

엘리베이터에서 노치원에 가시는 13층 할머니와 요양사를 만났다

요양사가 "이쁘시네요" 하니 할머니가 "한창때잖여"하신다

겸연쩍어서 "한창때는 지났쥬"했더니 요양사기 내 말에 맞장구를 친다

"한창때는 지났죠 환갑은 넘었을거 같은데" 

 

2021년 9월 28일

자두랑 산책하는데 이쁜이같은 큰애기가 피자를 소중하게 모시고 간다

이쁘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예전에 다이어트할 때 피자먹고 싶어서 울면서 일어났잖아"

개인 피티 받으며 혹독하게 다이어트를 해서 반쪽이 되었던 그때 

보람도 없이 다시 원상태가 되었으니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참 안타깝다

 

2021년 10월 4일

보이는 곳과 보이지 않는 곳의 차이

당할만큼 당했는데도 맥없이 당하게 되는 세상의 꼼수

 

2021년 10월 5일

출근길

"오늘이 아녀? 내일이 초하루여?"

연분홍 절조끼를 화사하게 차려입은 할머니보살의 목소리가 커진다

"오늘은 화장도 했는데.." 많이 아쉬운 목소리

마침  지인을 만났기 망정이지 

할머니 오지도 않는 절버스를 기다리다 지칠 뻔 했네

 

2021년 10월 13일

오월 어느날 어린 고추모를 심을 때

너무 여리니 혼자 꼿꼿하게 설 때까지 곁에서 도와주라고 지지대도 심었겠지

지지대를 의지하고 고추모는 바르게 쑥쑥 자라고 

여름내내 고추를 주렁주렁 매달아 잘 키웠겠다

그러는 동안 무성한 이파리 속에서 지지대는 하릴없이 멀뚱멀뚱 했겠다

찬바람 부는 늦가을의 어느날

거대한 제몸 가누지 못하고 고추대는 휘고 

지지대는 다시 제 할일이 생겨 고추대를 세워보려고 힘을 썼겠지

하지만 너는 내가 감당하기에는 이미 너무 커버린 것을 

결국 고추대와 함께 이렇게 휘어지고 말았다

그래도 지지대는 고추대를 절대 놓지 않는다

 

2021년 10월 14일

자두랑 자전거를 타고 오래오래 밤거리를 산책한다

노란 가로등이 켜진 밤길이 평화롭고 정겹다

느리게 느리게 살고 있는 나의 일상이 너무나 감사하고 행복하다

 

2021년 10월 19일

샤워하면서 양치질을 하다 아차 했다

사무실에서 수돗물을 틀어놓고 양치질을 하는 g를 볼 때마다

물을 함부로 낭비한다고 속으로 엄청 비난했다

남의 허물은 들보같이 보고 내 허물은 티끌같이 본다더니 내가 그짝이다

 

2021년 10월 20일

생긴 줄도 몰랐는데 팔꿈치가 심하게 긁혔다

팔뚝 여기저기 멍도 보인다

이정도 상처면 심하게 부딪쳤다는 얘긴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적이 없다

상처자리에 두꺼운 딱지가 생겼다

어려서는 상처에 딱지가 생기면 그걸 떼고 싶어서 안달안달하다가 기어이 떼내서 상처를 덧냈다

샤워할 때마다 아 여기 딱지가 있었지 알아채고는 일상에서 까맣게 잊고 지냈다

오늘 문득 딱지가 없어진 걸 알았다

딱지가 언제 떨어져나갔는지 모르겠다

저혼자 상처나고 저혼자 아문다 

상처처럼 나도 모르게 지은 죄가 많겠지

딱지처럼 나도 모르게 배려받고 용서받았겠지

항상 참회하고 감사해야 하는 이유다

 

2021년 10월 24일

벼베기가 끝났다

사람들에게는 챙길 것을 다 챙기고 난 텅빈 논이다

하지만 그곳에 여전히  자라고 있는 생명들이 있었다

내일을 모르고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있는 생명들

아름답다

 

2021년 10월 25일

자전거타기 참 좋은 계절

자두와 읍내까지 밤산책을 간다

골목골목으로 다니며 걷다가 타다가 한다

자두가 있어서 무섭지도 않다

매일이 멋진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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