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8월 20일

기타교실 언니들과 드가커피에서 아홉시까지 놀고 나왔다.  밤공기가 상쾌하다. 차를 타고 획 집으로 돌아가기에는 이 밤공기가 너무 아깝다. 언니들이 막무가네로 같이 차타고 집에 가자는 걸 간신히 사양하고 언니들을 먼저 보냈다. 오늘 언니들과의 대화도 즐거웠고 드가의 음악도 아름다웠다. 그리고 나는 지금 부활의 노래를 들으며 밤길을 걷는다. 사는게 참 즐겁다. 

 

지에스슈퍼 앞에 있는 분수공원의 불빛이 아름답다. 공원으로 가려고 계단으로 들어서는데 저만치 앞에 있는 벤취에 한 남자가 불길한 자세로 서있다. 불빛이 흐려 잘 보이지 않지만 한 뼘 굵기의 기둥 뒤에 몸을 가까이 하고 있는 것이 또 노상방뇨다. 깃털처럼 방방 들떴던 마음이 한순간에 얼어붙는다. 저런 사람 참을 수가 없다. 전의를 다지며 한발한발 다가갔다. 그 남자가 나를 발견하고는옹색한 나무기둥에 몸을 더 구겨서 가리려고 한다. 당신이 부끄럽지 나는 하나도 부끄럽지 않다. 속으로는 겁이 났지만 태연한 척 다가갔다. 그 남자가 벤치에 앉는다.  

 

"아저씨 지금 여기서 소변보신거죠?"

 

"내가 뭘요? 아무것도 안했어요."

 

"여기서 소변 보셨잖아요'"

 

뻔한 거짓말을 하는 남자에게 불빛에 반짝이는 바닥을 손으로 가리키니 남자가 할 수 없다는 듯 인정한다. 

 

"아줌마 내가 나이가 들어서 참지를 못해요. 그래서 어쩔 수가 없어요. 지금 당장 급한데 집으로 갈 수도 없고 어떡해요. 그래서 그런거니 그냥 가세요. 아줌마도 나이 들으면 알거예요"

 

생각지도 않았던 말에 나는 당황한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맥없이 돌아선다. 늙은 몸이 말을 안들으니 당사자는 얼마나 괴로울까. 늙는다는 것은 참으로 비참한 것이구나. 나도 나이들으면 그럴 수 있는데 그 지경이 되면 나는 집에만 있어야 되겠다. 생각만으로도 슬프다. 그나저나 앞으로 노상방뇨하는 사람을 보면 일단 나이는 어찌 되시는지 비뇨기계통으로 문제는 없는지 물어보고 지적을 해야 하는거여 뭐여. 너무 혼란스럽다.

 

분명히 그 사람은 해서는 안될 행동을 했는데  거기에 대해서 뭐라 할 수가 없는 상황이 영 찜찜하다. 한참 지나고 나서야 내가 중요한 것을 놓쳤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사람이 노상방뇨를 해서는 안되는 행동이라는 생각했다면 벤치 옆에다 그런 짓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최대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곳을 찾았을 것이다. 제 몸 늙은 것을 핑계대고 배려를 당당하게 요구하는 뻔뻔한 사람한테 내가 연민을 느끼고 미안해 했구나. 어이가 없다. 약이 오른다.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는 사람은 배려해야 마땅하다. 대신 어쩔 수 없어 그렇게 한 사람은 사람은 수치심을 가져야 마땅하다. 오늘밤 분수공원에서는 배려는 강요됐고 염치는 부족했다. 배려와 염치의 아름다운 조화가 아쉬운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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