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에게서 전화가 왔다
미얘기를 꺼내면서 말을 머뭇거린다
미가 이사 날짜가 코앞인데 보증금 오백만원을 아직 마련하지 못했다고 돈을 빌려달라고 했단다
다행히 양이가 낼모레 적금 타는게 있어서 이백만원은 주겠다고 했는데 하며 말끝을 흐린다
우리가 돈을 좀 보태줬으면 좋겠는가부다
몇년전에 미가 모임에서 급한 돈얘기를 해서 연이 제이 순이 양이가 백만원 팔십만원씩 돈을 모았다
나는 그만큼은 못하겠다하고 이십만원만 보탰다
그때 사실 조금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미가 돈 때문에 어렵다지만 사는건 나보다 훨씬 낫다
직장다니는 남편도 있고 넓은 집도 있고 차도 있고 옷차림도 화려하다
나는 혼자 벌어 그냥저냥 살고 있다
벼룩이 간을 내주는건가 싶어 어이가 없었다
몇년새 미사정이 더 나빠졌다
집은 경매에 넘어가고 남편은 직장을 그만 두고 일년째 놀고 있다
그래도 지난번 모임에서 만났을 때 행색은 여전히 나보다 낫다
십만원주고 눈썹문신도 했다
직장구할 생각도 안하고 놀기만 하는 남편 때문에 힘들다고 하소연하는데
다음날 그 남편이 자상하게도 미를 데리러 왔다
양이 미를 도와줘야 하는거 아니냐고 하는데 짜증이 올라온다
정작 미를 도와줘야 할 사람은 남편인데 왜 우리가 아니 못사는 내가 도와줘야 하나
그 남편은 이사날짜는 자기가 정하고 보증금은 왜 나몰라라 하는건데
집안사정이 잘못된 것이 미 때문이라고 해도 십년 넘게 미가 닥치는 대로 일하면서 살려고 노력했으면
사람이 연민이라는게 있지 어찌 그렇게 네탓이라고만 하면서 나몰라라 뒷짐지고 있냐
미는 그런 남편한테는 왜 제대로 말한마디 못하구 자꾸 친구들한테 돈얘기를 하는거야
친구가 곤경에 처했는데 나는 짜증이 난다
미를 외면하고 싶다
위선과 가식을 걷어낸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놀란다
내가 이렇게 차가운 사람이었다
내가 이렇게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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