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평생 누나라는 말을 그렇게 무섭게 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

삼심대중반은 되어보이는 남자였다

부리부리한 눈에 힘을 잔뜩 주고는 내 앞으로 와서 말했다

"누나 사주세요 우리애들을 위해서 하나 사주세요"

퍽퍽한 말투로 나를 누나라고 부르며 손목이 잘린 왼팔을 보여준다

그리고는 양말 칫솔 스타킹을 내 책상에 올려놓았다

잠깐 망설이다가 몇천원이면 사야겠다는 맘으로 값을 물었다

양말 세개 들은게 만이천원이다

품질이 좋아서나 필요해서 이루어지는 거래가 아닌데 값이 너무 비싸다

그래도 만원으로 이니의 팍팍한 삶에 도움이 되겠지 싶어서 양말을 골랐다

휴대폰케이스에 꽂아놓은 비상금 만원을 꺼냈다

이천원이 부족하다고 깎아달라고 하니 이 양반이 웃지도 않고 안된다고 한다

옆에 직원한테 꾸라고 하더니 옆에 직원이 쳐다보지도 않으니까 계좌이체를 하란다

그 분위기가 살짝 위협적이다

이렇게 강제적인 분위기가 아주 싫다

내가 말없이 웃고만 있으니 그가 결국 만원을 받아들고 다른 직원한테 간다

그 직원은 필요없다하고 이니는 사라하고 실갱이를 하니 과장이 말한다

"몇개 샀으니 이제 그만 하고 가세요"

그 말을 듣고 그니가 아무말 하지 않고 커다란 가방을 한쪽 어깨에 걸쳐메고 사무실을 나갔다

 

요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그 사람을 보았다

왼쪽에 멘 가방의 무게를 지탱하느라 몸을 오른쪽으로 한껏 기울인 채 그가 밤길을 걷고 있었다

사무실에서 보았을 때보다 가방이 더 커보인다

오늘 물건을 많이 팔았을까 저 사람 정말 아이들이 있을까 

그의 뒷모습을 보며 궁금했다

타박타박 걷던 그가 갑자기 뒤돌아 걷는다

늦은밤 정처없는 그의 발걸음이 안쓰럽다

내옆으로 스쳐가는 그의 얼굴은 화가 난 사람처럼 표정이 굳어있다

문득 그 사람이 젊은 혈기에 팍팍한 현실을 핑계로 되는대로 무책임하게 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무거운 가방을 메고 숱한 사람들의 냉대를 감당하며 행상을 한다

그의  물건을 사길 잘했다

그가 저녁은 먹었는지 많이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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