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2일
양말에 빵꾸가 났다
삐죽 나온 발가락이 구여워 장난을 친다
빵꾸난 양말
살기어려울 때 같으면 창피할 텐데 그런 시절이 아니어서 참 다행이다
없다고 생각하면 여유가 생기지 않는다
2016년 11월 3일
메타세콰이어나무가 점점 투명해져간다
2016년 11월 4일
점심먹으러 간 식당
누군가 무념무상으로 벽지를 발랐나보다
본의 아니게 숨박꼭질하게 된 줄이 꼭꼭 숨었는데 볼륨감은 어쩌지 못해 들켰다
발견한 사람은
그걸 또 기냥 투두둑 잡아당겨버렸네
뜯긴 벽지가 왜캐 웃긴거야
2016년 11월 5일
소식이 끊겼던 은자랑 연락이 돼서 미숙이랑 같이 만났다
거의 십년만이다
여섯시에 만나 저녁을 먹는데 은자가 남편 전화를 받는다
"지금 밥먹고 있어 알았어 좀 일찍 갈께"
개업집이 있다고 같이 가야된단다
그 뒤로 두세번 더 언제오냐는 전화가 왔고 은자는 여덟시반에 갔다
아이고 머리야
나라면 내 남편이 이러는거 절대 받아들이지 못한다
짜증나고 화나고 무시해버릴거다
근데 은자는 전혀 짜증도 안내고 화도 내지 않았다
놀랍다
신기하다
저마다 감당할 수 있는 삶의 내용이 있구나
이건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삶이다
2016년 11월 6일
탁이가 서산시내구경을 시켜준다
효민이랑 함께 걸었던 길
효민이랑 함께 갔던 공원
자연스럽게 효민이얘기를 한다
"이제 좀 담담해졌어?"물으니 고개를 끄덕끄덕
"밥 잘 먹고 잠 잘 자니 되지?" 하고 둘다 웃는다
효민이와 헤어지고 잠도 못잘만큼 괴로워
처음 알바해서 받은 돈으로 제일 먼저 청소년상담하는데를 갔는데
거기서 그랬다지 '밥잘먹고 잠잘자라'고
너무나 괴로워하는 탁이를 지켜보는 나도 힘들었는데 우리탁이 참 잘 겪어냈다
2016년 11월 9일
빛도 잘 들지 않는 골목안에 있는 작은 정원
요렇게 이쁜 골목을 걸어 출근한다
참 감사하고 행복한 아침이다
2016년 11월 10일
바위가 호사를 누리는 가을
2016년 11월11일
화사한 쇠락
2016년 11월 12일
서화전시회에서 본 어른 두분이 앞 서 걷고 있다
기념품봉투를 들고 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두 사람 성격이 짐작된다
옆구리에 딱 끼고 가는 어른은 걸음걸이도 빈틈이 없다
책임감 강하고 모범적인 성격일거 같다
그래서 재미없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그에 비해 다른 분은 성격이 헐렁해보인다
걸음걸이도 여유있어보인다
마음 편하게 대할 수 있을거 같다
나는 어떻게 들고 가지?
여미지 않은 덮개 끝을 잡고 대롱대롱 들었다
용훈씨가 준 자두간식도 담아 불룩한 봉투가 둥글게 입을 헤~벌리고 있다
야무지지 못한 내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온몸으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말하고 산다
2016년 11월 14일
아름다운 카펫
2016년 11월 13일
올해 고추가 맵다
김장속이 매운거 좋아하는 내가 먹어도 입안이 얼얼해진다
겉절이 조금 더 버무리는데 장갑을 꼈다 뺏다 하기 귀찮다고 엄니가 맨손으로 하신다
독한 양념 때문에 손이 아릴거 같아 걱정하니 괜찮다고 하신다
"옛날에 고무장갑 없을 때는 어떻게 했대요 맵고 손시렵고"
"그때는 당연히 그러려니 했지 김장할 때는 의례 손시렵고 발시렵고"
"엄니가 너무 일찍 태어나신거예요" 하니 웃으신다
문득 엄마생각이 난다
김장한 날 밤이면 바가지에다 따뜻한 물 떠다놓고 손담그고 있었다고 옛날얘기했었다
어렸을 때 기억으로 김장하는 날이면 추운아침 머리수건 쓰고 수도가에서 배추 씻던 엄마
학교 끝나고 집에 가면 마루에서 동네아줌마들이 모여 푸짐하게 점심먹던 모습만 기억나지
내가 김장을 도와준 기억은 없다
지금은 김치냉장고 덕에 춥지 않을 때 미리 김장을 하기도 하는데
우리엄마는 김치 실까봐 추워지도록 기다렸다가 김장하느라고 고생만 하다 가셨다
2016년 11월 17일
벽시계가 점점 부지런해져서 갈수록 시간이 빨라지더니 거의 십분정도 앞서갔다
바늘을 맞추지 않고 머리속으로 시간을 계산하면서 지냈다
결국 시계가 지쳤는지 어제아침 일어나보니 바늘이 멈추어 있었다
건전지를 갈아끼우고 시간을 맞췄다
오늘 아침 빤히 시간을 보면서도 그게 제시간인 줄 몰랐다
머리속으로 계산하면서 출근준비를 하다가 뒤늦게 깨달았다
빨리감기 화면으로 정신없이 준비하고
죽어라 뛰어서 오분만에 출근했다
그래도 오다가 메타세콰이어나무를 한번 쳐다보고 왔다
아휴 정신 차리고 살아야지
2016년 11월 20일
저녁에 꽃게탕을 끓였다
에미음식에 야박한 평을 하는 탁이가 모처럼 맛있다고 한다
난 신이난다
탁이 접시에 먹기 좋게 꽃게를 작게 잘라주고 왕새우껍질을 벗겨서 놓아준다
탁이가 주는 대로 맛있게 먹는다
그 모습이 흐뭇해 나는 먹을 생각도 않고 계속 가위로 꽃게를 자르고 새우 껍질을 벗긴다
문득 드는 생각
이건 아닌데..
스무살이나 된 아들 먹는 것을 어린애마냥 엄니가 거들어주다니 이거 내가 잘못하고 있는거 아닐까?
이러다 여자친구한테도 이래주길 바라면 어떡하지?
"탁이 여자친구한테는 탁이가 이렇게 해줘야 하는거야"
"나 여자친구랑 꽃게 안먹을껀데? 난 할줄 모른다고 할건데?ㅎㅎㅎ"
탁이가 장난스레 웃는다
탁이가 말은 이렇게 해도 다정한 성격이어서 닥치면 잘 할 거라는 것을 안다
나는 다시 어미새모드로 돌아가 기쁘게 시중을 든다
2016년 11월 23일
지역극단 창작공연이 있는 날이다
팜플렛을 보니 단원들이 파릇파릇한 젊은이들이다
우리지역 연극판에 이렇게나 많은 젊은이가 있었네
놀랍고 멋지고 든든했다
공연이 시작됐다
무대가운데에 커다란 사각형이 또다른 무대를 만들었고
그 옆에서 타악기연주와 노래가 극을 받쳐줬다
멋진 무대조명과 멋진 음악이다
하~~~~그런데 극내용이 너무 실망이다
저 많은 젊은이들이 모여앉아 오랜시간을 의논하고 고치고 연습했을 텐데 이럴 수가 있나
몇번의 기발한 장면으로는 도저히 덮어지지 않는 유치찬란함이다
이건 연극이 아니라 약장수다
한시간 공연이라는데 삼십분을 못버티고 나왔다
서툴고 어설픈 것을 견디지 못하는게 아니라 아무 생각없이 신나보자는 그 경박함이 견딜 수 없었다
생각할수록 그들은 너무너무 심했다
아 진짜 심했다
2016년 11월 25일
은주가 사무실로 전화해 계장을 찾는다
어제 계장이 전화했는데 못받았다고 한다
계장이 한참을 통화한다
자리가 멀어서 내용은 알 수가 없다
하~나는 떨고 있다
은주가 내가 이러저러해서 사무실 안온다고 하면 어쩌나
설마 그런 터무니 없는 일이 일이 생기겠는가
아니다 상식밖의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는 곳이니 어쩌면 그럴 수도 있다
일이 그렇게 되면 난 그 상황을 감당하지 못할 거 같다
혼자 전전긍긍한다
이 무슨 피해망상인지모르겠다
나 이상한 사람인가부다
2016년 11월 26일
영화 집으로 가는 길을 봤는데
시골소녀로 나온 공리가 너무 이쁜거야
그시절 우리의 공리를 보니 너무 반갑고 너무 이쁘고 너무 귀엽고 하~
푹 빠져서 공리 정말 이쁘다 정말 귀엽다 이러고 봤는데말이지
영화 다보고나서 검색을 해봤는데
아이쿠야 공리가 아니고 장쯔이네
나 도대체 뭐야?
이렇게 기억이 마구 제멋대로여도 되는거야?
너무하네 진짜
2016년 11월 27일
이쁜이만나러 서울을 다녀왔다
열두시반에 만나서 점심 먹고 네시반차 타고 돌아왔다
그런데 몸이 너무 피곤하다
기껏 몇시간인데 내몸이 이렇게 힘들어 하니 우울하다
탁이는 군대가고 내몸은 늙고 하~ 진짜 우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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