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해서 탁아~~부르며 현관문을 여는 순간
팽개쳐진 우산
치우지 않은 자두 똥
탁이방문 앞에 쓰러져 망가진 키큰 선풍기
눈앞에 펼쳐진 모습이 어이가 없어 한참을 현관에 서있었다
방에 가보니 탁이가 술에 취해 침대에 널브러져있다
머리속에서 화산이 폭발한다
술 좋아하는 남편 만난 여자의 트라우마다
아들에게서 남편의 모습을 발견한 나는 망연자실이다
술취해 뻗은 놈한테 머라고 떠들 수도 없고 가슴이 터질 것 같다
탁이가 그렇게 잠든게 천만다행이다
화가 꽉 찬 상태에서 맞닥뜨렸으면 전쟁이었을 것이다
한번 열린 뚜껑을 감당하지 못하고 나는 탁이한테 마구 퍼부었을 테고
그러면 탁이는 지가 한 행동은 생각못하고 되려 승질을 냈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더 길길이 뛰었겠지
시작은 아들인생을 걱정하는 에미마음이었겠지만
화가 화를 불러 남편에 대한 울화와 푸념으로 엉망진창이 됐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아들에게 최소한 지켜줘야할 아버지의 자리가 흔들렸을 것이고
나는 탁이에게 대책없는 에미로 낙인이 찍혔을 것이다
밤새 잠 잘 자고 오전에는 일하느라 바빴다
점심산책하면서 남아있는 앙금을 소화시켰다
시간이 약이고 산책이 보약이다
바윗덩어리같던 어제일이 진정이 됐다
탁이랑 카톡으로 대화를 했다
간결하게 내 감정을 말하고 단호하게 내 희망을 말했다
"어제 탁이의 최악의 모습을 보았다 아빠가 술을 많이 드셔서 엄마는 술에 대한 상처가 있다
다시는 다시는 그런 모습 보고 싶지 않다"
"챙길게 어제 재현이랑 너무 재밌어서 많이 먹은겨"
우리탁이가 순하게 나의 마음을 받아들인다
탁이와의 갈등이 이렇게 부드럽게 풀어져서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