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교에 꼬막먹으러 가는 날이다

첫기차를 타기 위해 일찍 일어난다

너무 일찍 일어나서 여유롭다

지난번 열차까페의 커피맛이 별 감흥이 없어 보온병에 커피를 담는다

고데기로 머리도 한번 더 만지고 자두랑 좀 놀아준다

어머나 너무 여유부렸다

기차시간 십분 전이다

 

뛰다걷다 하는데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잔뜩 겁먹는 목소리로 "기차 도착했어"

"이게 뭔소리야 기차시간 아직 남았어 32분기차야"

"아냐 이십칠분기차야"

아악~~~~

정신없이 뛰기 시작하는데 머리가 하애지고 가슴이 쿵쾅거린다

이 기차 놓치면 오늘여행은 꽝이다

심장이 터질거 같고 숨이 턱턱 막힌다

'기차가 갔을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기차가 나를 기다려줄거 같지 않다

친구가 기차갔다는 전화를 안하는거보면 아직 기다리고 있는거 같기도 하다

정신없이 뛰면서도 마음이 오락가락이다

 

아~ 기차가 아직 서있다

마지막 힘을 짜내 미친듯 계단을 뛰어올라간다

텅빈 승강장에 친구와 역무원이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울 듯한 친구표정과 역무원제복이 정지화면처럼 눈에 들어온다

그 와중에도 드는 생각

영화의 한장면 같다

 

다리가 풀린다

객차에 다 올라가지도 못하고 열차계단에 털썩 주저앉는다

"나 토할거 같애"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데 옆에 서있던 역무원이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준다

이 분은 왜 이렇게 착한거냐

 

생각하고 다시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이건 기적이다

무려 삼분이다

출발준비 끝낸 기차가 무려 삼분이나 그냥 서있었던 것이다

역무원이 연세가 있어서 그럴 수 있었나

아니면 넉넉한 성품이어서 그럴 수 있었나

한 사람의 넉넉한 마음이 우리에게는 믿을 수 없는 기적같은 행운이다

 

익산에서 환승해야 한다

안내방송을 듣고 찾아가는데 저쪽에서 그분이 서계신다

우리에게 탈 곳을 알려주려고 일부러 기다리셨단다

끝까지 우리를 감동시키는 분이다

 

오늘 우리에게 기적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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