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후

따뜻한 욕조에 들어앉아 한비야의 세계여행을 따라가고 있다

한비야는 참 괜찮은 사람이다

그니가 쓴 글에 대한 과장과 거짓의 논란을 알고 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글에 나타난 그니의 심성이 참 좋다

민박을 하는 집에서 청소를 거들고 바쁜 어른들한테 방치된 아이를 씻기는 그니가 참 대단하다

어디서건 이렇게 편안하게 자연스럽게 나설 수 있는 그니의 담백함이 참 좋다

 

한비야가 인도기차 안에서 도둑맞은  친구얘기를 한다

잠자는 사이에 베낭과 돈가방을 훔쳐가 그 친구는 여행을 중단해야 했단다

한비야는 베낭을 자전거고리로 단단히 잠그고 몇번을 확인한다

그부분이 내 마음속에 남아있는 오래된 미안함을 달래준다

 

지난 여름 인도를 어행할 때 기차에서 자리를 잡으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베낭단속이었다

자전거고리로 아이들베낭 내 베낭을 함께 묶어 의자다리에 연결했다

커다란 베낭을 가지고 낑낑대는 일이 참 부산했다

여행기에서도 그랬고 가이드도 매번 도둑조심하라고 신신당부했다

처음 얼마동안은 몰랐는데 어느순간부터 앞자리에 앉은 인도사람들이 마음에 걸렸다

내가 이렇게 가방단속을 하는 걸 보는 저니들이 불쾌할지도 모르겠구나

만약 우리나라 기차 안에서 내 앞에 앉은 외국인이 이런다면?

그렇게 불안하면 뭐하러 우리나라에 왔니? 유별나다고 속으로 욕할거 같다

그 생각이 든 뒤로 자물쇠를 안채울 수도 없고 채울 수도 없어 매번 곤혹스러웠다

 

여행하는 동안 나나 일행이나 기차 안에서 험한 일 당한 적 없었다

여행기나 가이드가 괜한 겁을 줬구나

아무려면 가방을 통째 들고가고 뒤져서 훔쳐가는 일이 그렇게 쉬운 일인가

날을 세우고 경계했던 인도사람들에게 진짜로 많이 미안했다

지금까지도 문득문득 떠오르면 미안해지는 일이다

 

그런데 오늘 한비야책에 그 얘기가 나온다

내 경험과 그들의 경험이 섞이는 지점이 생겼다

지나치게 호들갑을 떨었다고 무방비로 열어놓았던 마음에 만일의 상황을 대비하는 긴장감을 하나 담았다

다시 그 상황이 되면 유난스럽지 않게 조용히 대비를 할 수 있을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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