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1일
한달에 한번 만나는 모임
시끄러운 수다소리에 귀는 피곤하고 마음은 울적하다
대화가 그리운 시간
2013년 5월 2일
베란다에서 내려다보니
영훈이랑 탁이랑 공책을 보며 걸어간다
하이고 시험이라고 저렇게까지
탁이의 놀라운 변화
2013년 5월 3일
출근길 목련이 초록이다
하얀 꽃으로 눈부셨던 그때가 꿈인가싶다
2013년 5월 6일
출근길에 개 한마리가 음식쓰레기봉투를 뒤지고 있다
안쓰러워 쓰다듬고 싶은데
더럽고 엉킨 털을 보니 다가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얘는 한겨울을 어떻게 견디어냈을까
가슴이 아프다
주인없이 떠도는 동물을 거두고 보살피는 이들의 공덕이 얼마나 큰지 새삼 알겠다
2013년 5월 6일
휴대폰을 놓고와 점심시간에 집에 잠깐 들렀는데
일찍 나와 산책을 할 생각이었다
근데 이렇게 왔다가 금방 가버리면 우리자두 얼마나 속상할까싶어서
그냥 자두랑 놀고 왔다
2013년 5월 7일
길냥이가 나를 보고 도망간다
나는 저를 측은히 여겨 이뻐해주려고 하는데 서운하다
생각해보니 살고자하는 본능이다
저렇게 경계하지 않으면 자신을 보호할 수 없는거지...
2013년 5월 7일
며칠만에 나가본 들길에 새로운 보라색꽃이 지천이다
애는 또 이름이 뭐지?
생전 처음 본 꽃
너무나 사랑스럽고 이쁜 풀꽃
얘들도 분명 이름이 있을텐데 이름을 모른다
내가 모르는게 너무 많아 너무 많아 너무 많아 너무 많아
찔레순을 따먹었다
초록맛이다
2013년 5월 8일
시장골목안을 아스팔트로 정리했다
깔끔하다
근데 아스팔트포장이 양쪽 건물 벽과 빈틈없이 만난다
아쉽다
틈새를 조금 남겨놓지
꽃도 심고 상추도 심게
심는 사람 없으면 날아가던 풀씨라도 내려앉아 작은 꽃을 피울텐데
2013년 5월 8일
내사랑 꽃마리
너 정말정말 이쁘다
2013년 5월 8일
자두 간식을 사갖고 퇴근하는 길
쓰레기장에서 며칠전 본 떠돌이개를 만났다
줄게 있을 때 만나니 더 반갑다
"아가 이리와봐"
먹을 걸 꺼내 보여주는데도 경계만 한다
던져주었더니 물고서 저쪽으로 달린다
뒤도 안돌아보고 마냥 길 끝까지 달린다...
가방에 먹을걸 넣어갖구 다녀야겠다
2013년 5월 9일
아파트 외관 도장공사를 한다는 안내문을 봤다
아침 출근하는데 십오층 창밖으로 줄 하나가 흔들거린다
그리 굵지 않은 줄 하나
이 줄이겠거니 하다가 설마 이 줄일까 했다
밖으로 나와 올려다보니 설마가 아니었다
아저씨 한 분이 그 줄에 매달려 앉아 작업을 하고 있다
너무 허술한 곳에 한 목숨이 매달려있다
2013년 5월 10일
개구리자리
아침에 식물도감을 보고 드디어 이름을 알게 됐다
노란꽃 가운데로 열매같이 생긴 초록 알맹이가 딱 하니 박힌 꽃
알맹이가 쑥쑥 잘도 크는 꽃
인터넷으로 개구리자리를 검색하다 횡재했다
큰물칭개나물을 덤으로 알게 된 것이다
지금 하천에는 온통 큰물칭개나물이다
큰개불알꽃이랑 너무나 흡사한 꽃인데 며칠전 처음으로 내 눈에 들어온 꽃이다
하천에 지천으로 널린 꽃인데 이름을 몰라 속을 끓였는데 드디어 이름을 알았다
개구리자리와 큰물칭개나물
행복한 아침~~~~
얼렁 얼렁 시간이 가서 점심산책을 나갔으면 좋겠다
2013년 12일
엄니가 깨진 바가지를 검정테이프로 붙여서 쓰고 계신다
테이프는 물에 불어 한쪽이 일어났다
효과적인 방법이 아니라는 생각대신
궁상스럽다는 생각대신
오래된 나이롱바가지에 테이프 붙이는 엄니의 살뜰한 마음이 그냥 좋다
엄니네집으로 들어가는 마을길 전기줄에 뻐꾹이가 뻐꾹거린다
장난기발동해 나도 뻐꾹 했더니 마치 대답하는것처럼 저도 뻐꾹한다
나도 뻐꾹
저도 뻐꾹 한참을 그렇게 뻐꾹을 주고 받았다
우리가 대화를 한걸까
2013년 5월 16일
"까먹을 줄 알았어"
아침에 책보고 아 이게 이거였구나 하면서 외웠던 풀꽃이름
점심산책할 때 딱 만났는데 이름이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이럴 줄 알았다 에효효
이제는 책을 들고 다녀야 할라나부다
2013년 5월 17일
택호 영훈이 용훈이랑 돈데이에서 저녁을 먹다가
"자네들은 화장발로 이쁜게 좋으냐 화장안하고 좀 덜 이쁜게 나으냐?"했더니
"화장안하고 이쁜거요"한다
"에이 그런 경우는 드물지 엄니처럼 화장안하고 이쁜 사람 자주 봤냐? 했더니
갑자기 다들 오지도 않은 전화 들고서 여보세요 한다
심지어 탁이도 전화기 붙들고 "어~ 엄마" 이런다
아주 배꼽을 잡았다
2013년 5월 18일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장 가벼운 무게는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 부풀은 민들레홀씨
향불 연기보다 더 가벼워보인다
이름을 알게 되니 더 눈에 뜨이는 풀꽃
개구리자리가 내 주변에 이렇게 많이 피어있었다니 매번 놀란다
은행나무 밑에도 고추밭에도 피어있다
너무 신기해라
2013년 5월 31일
지난 겨울 추위를 잘 타는 마리안느를 챙겨주지 못해 앙상하게 줄기만 남았다
누렇게 변한채 꼼짝않는 줄기를 보면 아무래도 죽은 것 같다
그래도 혹시 모를 일이어서 뽑지 않고 그냥 두고 지켜봤다
몸속깊이 든 냉기가 풀리는 시간이 그렇게 오래 걸렸나보다
엊그제부터 뾰족뾰족 잎눈이 보이고 잎이 펴지기 시작한다
아~ 참 대견하다
2013년 6월 3일
띠아모에서 본 커피잔이 황홀하게 이뻤다
하얀 컵은 그냥 하얗고
까만 컵은 그냥 까맣다
손잡이 달린 컵의 기본모양인데도 보석처럼 눈부시다
원숙언니가 생일선물로 사줬다
집에서 본 커피잔이 그 커피잔이 아니다
띠아모에서 본 눈부심이 없다
무슨 일이지?
조명 때문이었다
카페조명과 형광등의 차이가 그렇게 컸다
아무리 훌륭한 존재여도 빛을 받지 못하면 그 가치가 제대로 보여지지가 않는구나
우리탁이와 이쁜이를 생각했다
우리탁이와 이쁜이를 더욱 빛나게 해주는 에미가 되어야는데 말이다
2013년 6월 5일
우연인지 필연인지 헷갈리는 일이 참 많지
평일 봉수산에는 우리밖에는 아무도 없어서
오늘 봄날은 간다 기념사진은 못찍겠구나했는데
딱 한쌍이 숲속으로 산책을 왔다가 우리 사진을 찍어줬다
기막힌 우연
대단한 우연
2013년 6월 9일
"지난번에 니 표정이 안좋길래 무슨 일 있었나 걱정되더라"
??지난주 왔을 때 내가 어떻게 했지? 아무일 없었는데..
평소와 다를게 없었다
근데 엄니는 한주일 내내 그거 때문에 마음이 불편하셨는가보다
어른을 대하는게 이런거 때문에 어려운 거구나
혼자서 괜한 걸로 마음쓰신 엄니한테 많이 미안했다
내가 신경을 많이 써야겠다
2013년 6월 11일
부슬비가 온다
홍성서 연극보고 오는 길에 탁이 마중을 갔다
양산을 우산삼고 걷는데 탁이가 양산을 접는다
기분좋게 피부에 닿는 부슬비를 맞으며 걸었다
탁이 머리에 내 머리에 작디작은 이슬방울이 소복하게 맺혔다
2013년 6월 14일
나같으려니 생각하는게 갈등의 시작일 수 있다
나와 다를 것이라는 전제가 소통과 이해의 시작인거다
연극 은미를 본 탁이들이 무슨 얘기인지 모르겠다고 한다
어떻게 그러지? 놀랐다가
그럴수도 있는거구나 깨달았다
이 차이를 모르고 대화를 한다면 그야말로 불통이겠구나
내얘기를 할게 아니라 질문을 해야 한다
2013년 6월 21일
출근준비하다 향을 피워 책상 위에 올려 놓았다
베란다문으로 들어오는 바람때문에 운무를 출 겨를도 없이 맹렬하게 흐르는 연기
원래있던 책꽃이로 옮겨놓으니
고요하게 위로 오르며 천천히 우아하게 퍼져나가는 연기
내가 고요하고 싶어도 자리가 아니면 그럴 수 없는 일이구나
2013년 6월 22일
내가 삽으로 마늘을 뜨면
엄니가 마늘을 뽑아 흙을 털어 가지런히 놓으셨다
엄니일손이 빨라 삽질하는 나도 덩달아 바쁘다
옆구리가 저린다
"아이고 엄니 천천히 좀 하셔요"
한나절만에 마늘을 다 캤다
그거 조금 캐고는 집에 들어오자자마 마루에 그대로 누워 한숨을 잤다
엄니 혼자 호미로 캐셨으면 하루 죙일 걸렸을거다
엄니 혼자 짓기에는 너무 벅찬 농사일이다
2013년 6월 23일
대전이 이렇게 가까웠나
두시간 생각하고 열시에 집을 나섰는데 대전에 도착하니 열한시 조금 넘었다
공연시간은 세시
여유시간이 많다
천천히 밥먹고 천천히 산책하고 킥복싱도 보고 벤치에 앉아 쉬었다
탁이는 친구들하고 놀 시간에 이러고 있는게 불만인 시간
나는 우리탁이랑 이러고 있는게 좋아죽겠는 시간
2013년 6월25일
곤충의 신방
벼는 농부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대서 내가 매일 점심때마두 바쁘다 문제는 넘의 논이라는거....
2013년 6월 26일
골목안 대문앞에서 아저씨 한분이 아무개야 부르다 대답이 없자
자건거 경적을 누른다 뿌잉뿌잉
그소리가 너무 귀여워서 출근길 내내 실실 실실
자동차에 저 경적을 단다면 어떨까
탁이 교복바지 엉덩이가 벌써 헤져서 구멍이 뚫렸다
오월부터 입었나
교복천이 약한건가 했는데
생각해보니 탁이가 교복바지를 입고 있는 시간이 하루 열다섯시간이다
어떤 바지인들 견디겠나
하이고 고단한 청춘들
2013년 6월27일
출근준비를 하는데 속옷을 잘 챙겨입었는데도 젖꼭지가 표시난다
궁금해진다
가슴 볼록한 선이나
엉덩이 선이나 매한가지 몸의 한부분 선인데
왜 젖꼭지는 표시나면 안되는 걸로 여겨지는 것일까
2013년 6월28일
향을 피워놓고 허공을 유영하는 연기를 따라 춤을 춘다
팔의 힘을 빼고
나의 몸이 연기다 생각하며 천천히 천천히 움직인다
편안해진다
아름다운 음악과 향과 춤이 있는 아침
근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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