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아침
이른 새벽 차례상에 올릴 김치를 꺼내러 뒤란으로 간다
장독대 옆에 김치독이 묻혀있다
엄니는 지난 여름 지붕공사하고 남은 파란양철을 묻은 항아리 위에 길게 덮어 놓으셨다
비가리고 눈가려주는 양철을 걷어내니
항아리 네 개가 나란히 제각각으로 다라를 덮고 있다
양철 덮고 다라 덮고 꼼꼼한 엄니
다라 걷고 항아리 뚜껑 열고 꽁꽁 말아놓은 비니루를 푼다
하~시원한 동치미냄새
이 냄새를 어찌 표현하나
말도 못하게 맛있는 냄새
가슴이 막 설레이게 향기로운 김치냄새
배추김치항아리 속에는 납작모자가 들어있다
비닐봉지에 배추겉덩갱이를 넣고 납작한 김치덮개를 만드신 엄니솜씨가 얌전도 하시다
지난 가을 어느날 밤에
김용택시인의 <그여자네집>을 읽으며 애틋한 그리움으로 가슴이 먹먹해져 울었다
문득 생각하니 그 시에는 냄새가 없다
김용택시인은 뒤란에 가서 김치를 꺼내본 적은 없는가보다
그랬더라면 <그여자네집>에 이 김치냄새가 빠지지 않았을거다
'김칫독을 열 때 / 하얀 눈송이들이 어두운 김칫독 안으로 / 하얗게 내리는 집..'을 이야기할 때
이 싱싱한 냄새를 시인이 놓칠 리가 없지
그러고 보면 <그여자네집>은 저만치서 뒷짐지고 서있는 한가로운 남정네 시다
울엄니 제삿날밤 춥고 어두운 뒤란으로 김치가지러 가셨다
내가 간다고 나서도 한사코 말리시며 엄니가 가셨다
며느리 추울까봐 배려하시는 마음을 짐작했다
그 마음 한켠에 이렇게 겹겹으로 단도리해놓은 김치항아리
행여 손끝 야물지 못한 며느리가 어설프게 덮어 놓을까 염려하시는 마음도 있었겠다
하긴 나라도 이렇게 정성스럽게 단도리해놓으면
이쁜이 안내보내겠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