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끊겼다

수조교체공사로 이틀동안 물이 나오지 않는다

알면서도 무의식적으로 수도꼭지를 올리고는 그때마다 황당하다

수도꼭지에서 물이 나오지 않다니 매번 믿기지 않는다

설거지, 양치, 세수, 화장실 당장 급한 이것들을 이틀동안 어찌해야 하나

경비실옆에 비상급수대가 있으니 허드렛물은 길어다 쓰면된다고 하는데 그럴만한 그릇이 없다

궁리끝에 생수 두병을 사고 재활용장에서 음료수병을 세개 주워 물을 담아왔다

택도 없는 일이다

탁이가 똥을 누고는 세병을 다 부었는데 변기 안이 깨끗해지지 않는다

 

이른 아침 게르 밖으로 나온 소년의 입김이 하얗다

소년은 대접처럼 생긴 물그릇을 들고 있었다

물을 한모금 마시는가 했더니 그 물을 손바닥에 뱉어서는 슥슥 얼굴을 문지른다

서너번 하면 세수 끝

두어번 더 뱉어 머리를 쓱쓱 문지른다

머리감는거 끝

그 모습을 보며 내가 저렇게 생활할 수 있을까 싶었다

나는 매일아침 머리를 감아야 하고 샤워를 해야 한다

 

반응없는 수도꼭지를 만지작거리며 이 현실이 너무나 불안했다

만약에 큰일이 생겨 몇날며칠을 이런다면 15층 아파트에서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

무섭기까지 한 상상이다

생수로 하는 양치질이 알뜰하다

세수도 겸손하게 한다

내 일상이 너무나 큰 혜택이었음을 온몸으로 깨닫는다

탁이를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가끔씩 이런 일이 생겨야 할거 같다

머리만 커다랗지 몸은 둔하기 그지없는 나는

그래야 당연한 일상이 얼마나 감사한지를 잊지 않을거 같다

 

 

'내 그림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거미  (0) 2011.06.11
노래를 고래고래  (0) 2011.06.02
봄날은 간다  (0) 2011.05.06
씁쓸한 아침  (0) 2011.04.08
만우절  (0) 2011.04.01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