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아 난 모르겠다
왜 봄이 오면 옷고름 휘날리는 한복을 차려 입고 나들이 하고 싶은건지
순박한 촌아낙처럼 수수한 한복을 입고 꽃양산 쓰고 신작로 길을 조신하게 걸어야만 할 거같은지
난 정말 모르겠다
이꽃저꽃으로 화사한 봄이 되면 그러고 싶어 정말이지 난 혼자 달뜬다
허나 마음만 굴뚝같지 그래볼 엄두를 못내고 매번 나의 봄날은 가버렸다
나는 복이 많은 사람이다
나의 생뚱맞은 상상에 맞장구를 쳐준 친구를 만나 꿈만 꾸던 나들이를 드디어 하게 됐다
삶은 계란 두개와 꽃무늬 커피잔 두개를 손수건에 싸고 보온병과 커피, 그리고 시집을 챙겼다
그니는 김밥 두줄, 방울토마토, 개떡, 그리고 막걸리 한병을 들고 나왔다
우리는 양산을 얌전하게 받쳐쓰고 철쭉 영산홍핀 꽃길을 나붓나붓 걸었다
긴 치마자락 밑으로 그니의 검은색 슬리퍼가 보이고 내 자주색 단화가 얼핏얼핏 보였어도
그래서 하얀 고무신에 대한 미련이 살짝살짝 걸렸어도 우리는 우아하고 화사하고 한량스러웠다
소나무그늘 아래 자리를 펴고 앉은 우리를 봉수산나무꾼이 있어 훔쳐보았다면 우리는 선녀였으리
바람더러 간지르라고 치마 밑으로 맨발을 드러내고 앉아
우리는 예쁜 커피잔으로 막걸리를 마셨다
막걸리 한모금에 안주는 시 한수
숲속을 지나는 바람소리에 취하고
새소리에 취하고
연초록 그늘에 취하고
막걸리에 취하고 우리는 불그레발그레 취했다
조병화 한용운 시를 읽는데 울컥 목이 메이더니 눈물이 난다
이 남정네들은 여인의 마음을 어찌 이리 잘 아는거야 아이고 가슴이야
필시 남장여인이 틀림없다는 실없는 농담으로 깔깔깔
슬쩍슬쩍 어깨춤도 한번 춰보고
봄날은 간다고 느리게 느리게 노래하니 그 흥취가 황홀했다
친구에게 같이 나와줘서 고맙다는 말을 주정하듯 하고 또하고 자꾸하고
아 나의 봄날은 이랬다
두고두고 그리울 어여쁜 나의 봄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