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월 28일
어제 햇빛도 바람도 봄기운이 가득했다
아침 기온이 쌀쌀해도 봄이고 얇아도 검은색 패딩은 패딩이어서 짧은 겉옷을 찾았다
흰색 재킷이 있다
안에 털이 있어서 따뜻하고 길이가 짧아 오늘같은 날씨에 딱이다
까만색 긴 패딩 대신 흰색 짧은 재킷을 입으니 마음까지 경쾌하다
애증의 재킷이다
삼십년전에 행텐에서 할인가격 삼만원주고 샀다
살 때는 이뻤는데 막상 입으니 옷태가 안나서 일년에 한두번 입을 뿐 걸어두기만 했다
오랜 세월에 흰색도 묵으니 산뜻하지 않아 더 손이 가지 않았다
자리만 차지해서 버리려다 너무 멀쩡해서 차마 버리지못하길 열번은 했을거다
어느때부터인가 이제는 정이 들어 버리지 못하는 옷이 되었다
무슨 변덕인지 이제는 나한테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다
흰색 짧은 재킷 덕분에 출근길이 더욱 상쾌하다고 싱글벙글하다가
내가 정작 사람에게는 이런 애정을 쏟지 않았다는 생각을 한다
옷 하나를 두고 버릴까 말까 버릴까 말까 십수년을 고민하는 내가
살아오면서 사람을 두고는 그렇게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나를 기꺼워하지 않는 상대이거나
내 마음에 거슬리는 사람은 미련없이 인연을 정리했다
더 깊어지고 향기로워졌을 인연들을 나의 교만과 어리석음으로 놓쳤구나
옷만큼의 진정도 없이 사람을 대하며 살아온 것이 너무 부끄럽구나
어제 산책나가면서 오래전에 선자언니가 사주었던 모자를 꺼내 썼다
그 모자를 보니 새삼 선자언니랑 친하게 지냈던 시절이 그리워졌다
언니가 모임을 깨버린 것이 서운해 만나도 소 닭보듯 거리를 두었다
이제 서운함이 다 했는지 아니면 내 마음이 너그러워진 것인지
선자언니랑 그냥 만나서 밥을 먹고 싶어졌다
어제 선자언니에 대한 아련한 감정이 지나가는 변덕이라고 생각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어제 경솔하게 선자언니에게 연락하지 않은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출근길 짧은 상념에 비춰보니 변덕이 아니고 깨달음이다
출근하자마자 다시 마음이 변할까봐 언니에게 밥먹자고 연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