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선 삼례역을 지나칠 때면 분례가 생각나 정겨웠다. 언제 한번 가봐야지 하다가 어제 문득 결심하고 오늘 길을 나섰다.

삼례 가는 기차 안에서 지명에 대한 유래를 찾아보았다. 왕의 자리를 놓고 싸움을 벌이던 이방원형제들 중 한 명이 이곳으로 쫓겨와 살게 되면서 왕족에 대한 예의로 세 번 절했다는 데서 삼례라 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분례를 떠올리며 작은 시골을 그렸던 나의 상상이 어이없다. 삼례가 동학의 3차 궐기 집결지라는 내용도 있다. 고릿적 여학교시절 국사책에서 분명히 봤을 터인데 처음 듣는 소리처럼 생소하다.

 

동학기념지가 궁금하다. 길에서 행인 몇 사람에게 위치를 물어보았다. 그곳을 아는 사람이 없다. 택시 기사들은 알겠지. 택시정류장 한켠에 기사대기실이 보여 들어가 물어보는데 모르기는 여기도 마찬가지다. 다행히 나중에 들어온 기사가 예전 보건소 근처에서 본 것 같다면서 방향을 알려준다. 가다 보면 보이겠거니 하고 무작정 그쪽을 향하여 걷는다. 오전에 잠깐 소나기가 내려 공기가 더 습해졌다. 한증막같은 날씨가 초행길을 더 막막하게 한다.

 

....

병석에
누워 있던
부황든 노인네들도
지겟작대기를 끄을며
버선발로 뛰어나와
행렬의 뒤를
넘어지며
따랐다,

....

신동엽의 <금강>중에서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이 백년 전 부황든 노인네지겟작대기 끄을며걸었던 그 길일지도 모른다. 덥고 막막하던 길이 한순간에 비장해진다. 허리를 곧추 세우고 어깨를 편다.

꽤 오래 걸었는데 동학과 관련된 그 무엇도 보이지 않는다. 시내버스정거장에 붙어 있는 관광지도를 보고 관공서로 전화를 걸었다. 더할 나위없는 전화찬스였다. 그곳에서 설명을 듣지 않았더라면 이정표도 없고 길가 표지판도 없이 언덕 위에 꽁꽁 숨어있는 동학기념지를 찾지 못하고 그냥 지나칠 뻔 했다.

 

쇠스랑을 높이 치켜든 굵은 팔뚝이 돌무덤을 뚫고 나왔다.

동학농민의 기개가 저리 당당했구나

천지를 뒤흔든 그때 그들의 함성과 간절함이 새삼스럽다. 그러나 평등한 세상 만들어 너와 나 더불어 살자, '앉으면 죽산 일어서면 백산'으로 모였던 그 숱한 사람들은 모두 처참하게 죽었다.

기도하는 것처럼 춤추는 것처럼 사람들이 서로의 손을 잡고 연결되어 있는 둥근 조형물 아래에서 그들을 올려다보다가 끝내 울고 말았다.

외지고 좁은 이곳에서 그들은 잊혀져가고 있다.

 

무거운 마음을 끄을며시내로 돌아왔다.

건널목에서 내내 떨구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건너편에 <함께 꿈꾸는 미래 차별없는 세상>을 만들자는 노희찬을 추모하는 플래카드가 깃발처럼 걸려 있었다. 동학은 끝나지 않았다. 번듯한 묘소를 만들어 기리거나 장엄한 의식으로 추모하지 않는다고 동학이 잊혀진 건 아니었다. 동학은 지금도 눈부신 깃발을 휘날리며 현재진행중이었다.

 

옛 사람들과 이 시대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빚을 지며 나는 풍요롭고 평온하게 살고 있다.

전라선 삼례역을 지나칠 때면 분례가 생각나 정겨웠다. 언제 한번 가봐야지 했는데 어제 문득 결심하고 오늘 길을 나섰다.

삼례 가는 기차 안에서 휴대폰으로 지명유래를 찾아보았다. 이방원의 형제들이 왕의 자리를 놓고 싸움을 벌이다 그중 한 명이 이곳으로 쫓겨와 살게 되면서 왕족에 대한 예의로 세 번 절했다는 데서 삼례라 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삼례가 동학의 3차 궐기 집결지라는 내용도 있다. 고릿적 여학교시절 국사책에서 분명히 봤을 터인데 처음 듣는 소리처럼 생소하다.

 

동학기념지가 궁금하다. 길에서 행인 몇 사람에게 위치를 물어보았다. 그곳을 아는 사람이 없다. 택시 기사들은 알겠지. 택시정류장 한켠에 기사대기실이 보여 들어가 물어보는데 모르기는 여기도 마찬가지다. 다행히 나중에 들어온 기사가 예전 보건소 근처에서 동학 뭔가를 본 것 같다면서 방향을 알려준다. 걸어서 가기에는 멀다고 하는데 쉬엄쉬엄 가다 보면 보이겠거니 하고 무작정 그쪽을 향하여 걷는다. 오전에 잠깐 내린 소나기로 대기가 습하다. 한증막같은 더위가 초행길을 더 막막하게 한다.

 

....

병석에
누워 있던
부황든 노인네들도
지겟작대기를 끄을며
버선발로 뛰어나와
행렬의 뒤를
넘어지며
따랐다,

....

신동엽의 <금강>중에서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이 백년 전 부황든 노인네지겟작대기 끄을며걸었던 그 길일지도 모른다. 덥고 막막하던 길이 한순간 비장해진다. 허리를 곧추 세우고 어깨를 편다.

꽤 오래 걸었는데 동학과 관련된 그 무엇도 보이지 않는다. 시내버스 정거장에 붙어 있는 관광지도를 보고 관공서로 전화를 걸었다. 더할 나위 없는 전화찬스였다. 그곳에서 설명을 듣지 않았더라면 이정표도 없고 길가 표지판도 없이 언덕 위에 꽁꽁 숨어있는 동학기념지를 찾지 못하고 그냥 지나칠 뻔 했다.

 

쇠스랑을 높이 치켜든 굵은 팔뚝이 돌무덤을 뚫고 나왔다.

동학농민의 기개가 저리 당당했구나

천지를 뒤흔든 그때 그들의 함성과 간절함이 새삼스럽다. 그러나 평등한 세상 만들어 너와 나 더불어 살자, '앉으면 죽산 일어서면 백산'으로 모였던 그 숱한 사람들은 모두 처참하게 죽었다.

기도하는 것처럼 춤추는 것처럼 서로의 어깨를 겯고 있는 둥근 조형물 아래에서 그들을 올려다보다가 끝내 울고 말았다. 외지고 좁은 이곳에서 그들은 잊혀져가고 있었다.

 

무거운 마음을 끄을며시내로 돌아왔다. 건널목에서 내내 떨구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길 건너 허공에 <함께 꿈꾸는 미래 차별없는 세상>이 눈부시다. 노회찬을 추모하는 플래카드였다. 그것을 보고서야 깨달았다. 번듯한 묘소가 차려지지 않았어도 장엄한 의식으로 기리지 않아도 동학은 웅숭깊게 이어지고 있다.

 

사람들 사이로 내려와야 할 간절한 염원이 아직도 허공에 매달려 있다

옛 사람과 지금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빚지고 사는 줄도 모르고 산다

나의 하루가 이렇게 평안해도 괜찮은건가

 

 

 

 

 

 

 

 

지난 주 모임에서 선생님 한 분이  내 글을 시를 바꾸고 싶다고 하셨다

일주일만에 이런 시를 보내오셨다

장황한 글이 묵직한 시로 변신했다

시인의 능력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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