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김소민작가의 칼럼 일부
<체 게바라가 젊은 시절 돌봤던 나병환자들에 대해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 리베카 솔닛은 깨달았다 "자아를 규정하는 것은 고통의 감각이다" 친구는 환자의 손과 발이 상하는 까닭은 병 때문이 아니라고 했다. 신경이 짓눌려 아무런 감각을 느낄 수 없기 때문에 그 부위를 돌보지 않아 잃게 된다는 거다.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부위가 늘어날수록 자아는 넒어진다
그래서 자기가 만든 동굴에서 나갈 수 있는 길은 감정이입이 연다. "어떤 감정이입은 배워야만 하고, 그 다음에 상상해야만 한다. 감정이입은 다른이의 고통을 감지하고 그것을 본인이 겪었던 고통과 비교해 해석함으로써 조금이나마 그들과 함께 아파하는 일이다. 당사자를 당신 안으로 불러들여 그들의 고통을 당신의 몸이나 가슴, 혹은 머리에 새기고 마침내 그 고통이 자신의 것인 양 반응한다. 동일시라는 말은 나를 확장해 당신과 연대한다는 의미이며 당신이 누구와 혹은 무엇과 스스로를 동일시하느냐에 따라 당신의 정체성이 구축된다>
신문 한면이 1면에서 넘어온 철도기관사이야기로 가득하다
기관사가 앞을 응시하며 도시락을 먹는 사진도 커다랗게 한쪽을 차지한다
최장시간 6시간 동안 기관실 안에 있어야 하는 기관사의 일과를 자세하게 알려준다
흔들리는 기관실에서 일하면서 도시락으로 대충 한끼를 해결하고
운행중에는 화장실을 갈 수 없어 승차전부터 물종류를 먹지 않는다
전에는 이인일조로 근무했는데 점차 혼자 근무하는 것으로 바뀐다는 내용도 있다
철도 기관사의 일과를 세세히 나열하는 기사를 읽으며 나는 생각한다
이 정도 고생은 다들 하고 살지 않나?
아니 이보다 더한 고생을 하는 사람들도 많지 않나?
tv프로 극한직업을 보면 이 정도는 어려운 것도 아닌데
이 기자는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거지?
이런 생각을 하다가 내가 너무 인정없다는 생각이 들어 심각해진다
탁이나 이쁜이가 이 일을 한다면 내가 이렇게 냉정할까
나와 상관없는 누군가에게 한없이 차가운 나를 확인한 충격이 오래간다
점점 살아가면서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가는거 같다
나 하나 안락하면 다 괜찮은게 되어버린다
내일을 대비할 만큼의 수입은 아니지만 오늘 살기 충분한 만큼의 보수를 받는 직장에서 건강하게 일하고
탁이와 이쁜이가 무탈하게 잘 지내고
댄스와 기타를 배우며 즐겁고
가끔 친구를 맛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고
따뜻하게 내게 안기는 자두가 있고
햇빛 잘드는 집 한칸 있으니 더 바랄게 없이 감사하다
일상의 안락함에 나른해진 나는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이웃의 고통은 점점 외면하고 싶어진다
이래도 괜찮은걸까 가끔 미안해하면서도 더 쉽게 더 자주 외면한다
오늘 김소민의 칼럼을 읽고 비로소 내 문제가 뭔지를 깨달았다
나병환자가 손발을 잃는 것은 병 때문이 아니라 신경이 짓눌려 감각이 무뎌진 상태인 줄 모르고 돌보지 않기 때문이라는 구절에 내 모습이 그대로 비춰진다
내가 불편하다고 외면하고 그러다 조금씩 무감각해져 결국 부드럽고 따뜻한 마음을 아예 잃어버린 것이다
하마터면 나이를 먹으며 향기롭게 익어가지 못하고 악취를 풍기는 노인이 될 뻔 했다
너무 늦지 않게 깨달아 다행이다
'내 그림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커피 (0) | 2020.02.08 |
---|---|
멧밭쥐둥지 (0) | 2020.01.22 |
그여자네집이 있는 동네 (0) | 2019.12.17 |
소리 가득한 어느하루 (0) | 2019.12.09 |
주눅든 사람 (0) | 2019.12.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