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니가 김치 담게 조금 일찍 오라고 하셨다

어젯밤에 이쁘니가 사준 콜바넴을 보느라 두시에 잤다

눈을 뜨니 아홉시 반이다

샤워만 하고 간신히 열시 차를 탔다

송석가는 차여서 산정서 내려서 걸었다

집에 도착하니 열한시다

엄니가 냉랭한 얼굴로 "김치담근다고 일찍 오랬더니 일찍도 온다"하신다

내딴에는 서둘러서 오느라 온건데 게다가 산정서부터 걸어왔는데....

일차로 서운하다

그래도 넉살좋게 "아이구 엄니 이것도 간신히 열시차 타고 왔어요 탁이 아침 챙기고 오느라고" 하고 넘어갔다

알타리무를 뽑아 다듬기 시작하는데 엄니가 마늘심다가 오시더니 재촉하신다

"양념도 아무것도 준비안했어 빨리 해라"

인자 시작했는데 나보고 어쩌라고 이러시나

이차로 서운하다

전에는 엄니가 이파리를 정리해주셨는데 오늘은 마늘심느라 바쁘시니 나 혼자서 한다

뭐를 떼내야 하는지 잘 몰라서 누렁잎 벌레먹은잎만 대충 뗐다

소금물에 절여놓고 다시 하우스로 나가 마늘 파 다듬어 갖고 들어서는데 엄니가 난리가 났다

"세상에 아무리 김치를 안담아먹었다고 이렇게 모를 수가 있냐 벌레먹은거 억신거는 떼내야 할거 아니냐 저거 봐라 내가 추린게 저만큼이다 세상에 워쩜 그렇게 모를 수가 있는겨"

우렁우렁 정신이 하나도 없게 혼내신다

삼차로 서운하다

근데 이건 좀 세게 서운하다

안해봐서 모르는 걸 그럴 수도 있는거지 뭐 저렇게까지 야단하신대

이번에는 엄니 생각 안하고 삐지기루 한다

이른 저녁을 먹자구 하시는데 배가 안고프기도 했지만

내가 제대로 삐졌다는걸 보여주려고 끝까지 안먹는다고 했다

평소와 다른 나를 보고 인제 엄니가 눈치를 보신다

늙은 며느리는 그런 엄니가 슬그머니 안쓰러워진다

밤공기가 차다

마당에서 김치를 담그는데 추위에 약한 엄니 숨소리가 거칠어진다

오늘 따라 방귀도 자꾸 끼신다

엄니기력이 더 안좋아진게다

젊은 나도 춥고 허리가 아픈데 엄니는 오죽하실까

엄니는 김치양념을 배합하고 나는 버무린다

엄니랑 나랑 둘이 담근 김치가 기가막히게 맛있다

마당을 말끔하게 정리하고 나니 말할 수 없이 뿌듯하다

다른 날보다는 재미없었지만 오늘도 엄니한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거 같아 보람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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