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밥을 먹으며 어디로 갈지 아직 정하지 않았다는 내 말을 듣고
담양게스트하우스 주인이 해남에 괜찮은 게스트하우스가 있다고 알려줬다
해남을 검색해봤더니 땅끝해안도로도 있고 보길도도 있다
길에 그늘이 없는게 부담스럽기는 한데 까짓거 그냥 한번 가보기로 한다
지리에 무지하고 인터넷정보검색에 게으른 나는 해남이 광주서 얼마 안되는 곳에 있는 줄 알았다
해남가면 땅끝마을도 금방이려니 했다
웬걸 해남까지 광주서 고속버스타고 두시간, 해남서 땅끝마을까지 직행버스로 한시간 걸렸다
내가 아무리 즉흥적으로 움직인다고 하지만 이렇게까지 대책없을까
해저물녁에 땅끝마을 갈두항에 도착했다
아주 작은 포구다
이곳에서 저녁먹는거 외에는 딱히 할 일이 없어보여 난감했는데 숲길이 보인다
언제나 길은 멋진 행운이다
바닷가 숲길이 호젓하다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흐를 만큼 더운데도 걸음을 멈출 수가 없다
걷고 걷고 또 걷다가 그 숲길에서 연리지를 보았다
2미터 가까이 떨어져있는 저쪽 나무의 가지가 허공을 건너와 이쪽 나무 줄기와 합쳐졌다
두 나무가 합쳐진 모습이 간절한 그리움, 또는 그렇게 될 운명이어서라고 생각하니 벅찬 감동이다
내일 보길도를 들어가야 되나 말아야 되나 한참동안 갈등했다
노화도에서 보길도 들어가는 택시비가 만오천원이라는데 왕복 삼만원에
집에 가려면 한두시에는 섬에서 나와야하니 몸도 마음도 바쁠거 같다
경비도 그렇고 서두르는 여행도 맘에 안든다
그래도 미련이 남아 갈까말까 고민하다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잠이 들었다
아침을 먹는데 게스트하우스 주인이 안개 때문에 배가 못뜬다고 한다
안개가 너무 심해 오전에 출항하기는 어려울거 같단다
어젯밤 보길도를 갈지말지 오랫동안 머리아프게 고민했던게 무색하다
근처에 걸을 만한 길이 있는지 물어보니 미황사가는 길이 두시간 코스로 괜찮다고 한다
버스표를 파는 슈퍼에서 미황사가는 차시간을 물어보니 45분차라고 알려준다
시간이 남아 한바퀴 산책을 하고 사십분에 차턱으로 왔는데 버스가 안온다
다시 슈퍼아줌마한테 물어보니 태연하게 버스가 삼십분에 갔다면서 다음 시내버스는 언제 올지도 모른단다
나에게는 이런 낭패가 없는데 슈퍼아줌마는 45분차는 직행이었다고 전혀 미안한 기색도 없이 말한다
와 정말이지 한치앞을 내다볼 수 없는 여행이다
결국 그렇게 될 일이었던 것처럼 땅끝마을해안도로를 걷는다
안개에 쌓인 갈두항
안개에 쌓인 바다
아름답다
그늘 하나 없는 땅끝해안도로를 걸으며 나 사는 것이 이렇게 안개속을 헤매는게 아닌가 생각했다
내뜻대로 내 의지대로 되지 않지만 그래도 너무나 아름다운 시간들
길 위에서 나는 참으로 행복했다
이 커다란 덩치가 안개앞에서 꼼짝을 못하고 몇시간 동안 부릉거리고만 있었다
사는게 의지만 갖고 되는게 아니다
갈두항에 들어가려고 줄을 선 차량들로 큰길까지 주차장이었다
걸어나오다 자리깔고 빵 먹는 젊은아낙한테 물으니 벌써 네시간째 이러고 있단다
언제 뜰지도 모를 배를 타기 위한 자동차의 행렬이 놀라웠다
해안끝도로에서 갈두항을 돌아보니 아름다운 풍경화 한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