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에서 나올 때 빗방울이 투둑 떨어졌다
우산도 없고 차도 없고 아무 대책이 없었지만 그냥 걸었다
그저 가을색 짙은 풍경에 빠져 걸었다
일주문이 보일 때쯤 비바람이 되었다
거센 빗줄기에 이내 바지가 젖는다
난감하다
택시를 불러야 하나
일주문 기둥 뒤에 서서 잠깐 비를 피해야 하나 생각한다
내 마음이 이궁리 저궁리 할 때 내 다리는 저 혼자 망설임도 없이 막 걷는다
역시 내 다리다
길 위에서 비를 만나는 것은 멋진 일이다
찬 바람 찬 비지만 그래도 멋진 일은 멋진 일이다
목도리를 풀러 머리를 한번 감싸고 목에 두른다
이렇게 하는게 아랍식이었던가
오 이국적이기까지~~~
이대로 인적없는 길이 계속 됐으면 좋겠다
이런 행색이 아무래도 넘보기에는 좀 그렇겠다
시내를 이렇게 걸을 용기는 없다
큰길 나가면 택시를 타야겠다
누구의 눈에는 초라하고 궁상맞아보일거라는 생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읍내를 차 안타고 걸어다니는 나를 별나게 생각하는데
이런 날씨에 비맞으며 걷는 나를 보면 완전 외계인이라고 할거다
아휴 주목받는거는 부담스럽다
다행스럽게도 비바람은 곧 잠잠해졌다
나는 집까지 주변의 모든 것들을 음미하며 천천히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