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싶은 만큼 자고 일어난 일요일 오전이 편안하다
아점을 먹고 뭘해야 하나 고민한다
엄니네도 가봐야겠고 산에도 가고 싶다
엄니가 길 미끄러우니 오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냥 가지 말까
산에 가고 싶은 생각에 얼씨구나 하고 엄니말씀대로 하자 싶다가도 눈이 이렇게 쌓였는데
한번 가봐야하는데 싶기도 하고 갈피를 못잡겠다
눈덮인 산길을 걷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해 두시쯤 등산화를 신고 나섰다
골목길 응달은 눈이 수북하게 그대로다
큰길은 눈이 다 녹아 길바닥이 다 드러나서 이제는 어지간히 눈이 녹은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아무래도 대술을 가야겠다
다행히 버스시간이 맞아서 동네앞으로 가는 차를 만났다
허나 눈길을 걷고 싶은 마음이 영 아쉽다
걸어서 엄니네 가면 되지!!!!
중간에서 내려 들판으로 난 농로로 들어섰다
며칠 동안 쌓이고 쌓인 눈으로 발목까지 푹푹 빠진다
산자락 끝에 자리잡은 동네가 저멀리 보이는 곳에 나혼자 있으니 가슴이 싸아한 것이 쓸쓸해진다
고즈넉한 이 기분이 나는 좋다
난데없는 발자국소리에 갈대숲에서 한가롭던 기러기들이 푸다닥 일제히 날아오른다
크지도 않은 뽀드득 소리인데도 비상이 걸렸다
갈대숲에 이렇게나 많은 기러기가 모여있었다니 기러기들이 까맣게 내 머리 위로 지나간다 우와~
놀래켜서 약간은 미안한 마음으로 얼마를 걷는데 이번에는 내가 놀래라
꿩 한마리 느닷없이 바로 앞에서 튀어나오더니 하늘로 날아오르지 않고 앞쪽으로 쫘악 날아간다
그 뒷모습이 뚱뚱한 화살같아 픽 웃음이 샌다
자잘한 참새떼들은 파라락 날아오르더니 겨우 저만큼 가서는 일제히 내려앉는다
한겨울 인적 드문 개울가 갈대숲에 날짐승들이 그렇게 많이 깃들어있을 줄 몰랐다
눈쌓인 자연을 화폭으로 삼아 바람과 햇빛이 만들어낸 선들이 참으로 아름답다
그 유연하고 섬세하고 다양한 선들을 뭐라고 표현할 수가 없다
신비한 아름다움에 취해 그저 행복할 뿐이다
그 아름다움을 그대로 가슴에 담는 순간순간으로 내 인생은 늘 화양연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