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장 위에 있던 선인장을 베란다로 내놓았다

볕 안드는 신발장 위에서 보름정도를 지낸 선인장은 억센 줄기의 흔적은 희미하고 창백한 모습이다

내 욕심 때문에 이리 되었다

진즉에 하루하루 녹색이 옅어져가는 모습에서 선인장이 목마르게 햇빛을 바란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밋밋한 현관에 눈을 즐겁게 해줄 초록색이 필요했던 나는 그 목마름을 무시했다

처음 며칠 흐뭇하게 바라보았을 뿐 그 마음이 이내 시들해져서 드나들면서 눈길 주는 일이 드물었다

붙박이장처럼 그 자리에 있을 뿐 내 관심에서 멀어진 선인장

그러다 어느날 보니 선인장이 희한하다

원래 땅에 바짝 붙어 옆으로 퍼지는 선인장인데 콩나물같은 새순들이 위로 키재기를 하고 있다

말간 초록빛이 도는 새잎은 손길 한번만 스쳐도 못견디어낼듯 연약해보인다

이렇게 여린 선인장이 아니었다

지난 겨울 장독대 올라가는 계단에 무심하게 버려진 채 고스란히 겨울을 난 선인장이다

몇십년만에 찾아온 혹독한 추위라는 어느날 아침 나가보니 선인장잎이 데친 배춧잎처럼 축 늘어져있었다

버리는게 일스러워 그대로 냅둔채 겨울이 다 갔다

햇빛 따땃한 날이 며칠 째 계속되던 어느날인가 된장뜨러 올라가다 들여다보니

세상에나 누렁잎되어 늘어져있던 선인장 한가운데부터 살아있는 기운이 비치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며칠새에 온전히 다 살아났다!!

멀고먼 뜨거운 사막의 열기를 기억하고 있을 뿌리 어디에 그 혹한을 견디어낼 의지가 담겨져 있었을까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일어날거 같지 않은 일이건만 선인장은 하루하루 싱싱해지고 진녹색으로 억세져갔다

그 모습을 보며 뿌리만 살아있으면 된다는 생각을 많이도 되새겼다

이 선인장을 가슴에 담고 살면 내 인생에서 뜻밖의 어떤 일이 비록 나를 한겨울 한데 내버려운 선인장처럼 절망하게 만들지라도 나는 이겨낼 수 있을거 같다

생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한 선인장을 내가 한낱 장식물 취급했다

지금 선인장은 베란다에서 마음껏 햇빛을 즐기고 있다

선인장에게 잘 어울리는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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