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는 길에 미자한테 잠깐 들렀다
십분쯤 지났나 이쁜이한테서 전화가 왔다
"어디야?"
"엄니 미자이모네 잠깐 들렀어"
"그럼 빠사시사갖고 빨리왓!"
농담이라는걸 알지만 에미에게 명령하는 그 말투에 기분이 바로 상한다
"너 말 이쁘게 하라고 그랬지? 열쇠는 왜 안갖고 다니는데? 니가 까먹었으니 댓가를 치러야지
십분만 복도서 기다려!!"
진담농담 섞어 세게 말을 했다
놀랬는지 이쁜이가 아무말도 안하고 가만히 있는다
나는 그냥 전화를 끊었다
에이 내가 심했다 이정도로 화낼 일은 아니었는데 과했다
바로 후회한다
서둘러 집에 와보니 복도에 이쁜이가 없다
독서실갔나싶어 전화를 했는데 받지를 않는다
잠시후 울면서 들어오는 이쁜이
놀래서 무슨 일이야고 물었더니
"엄마 미워" 이러며 계속 운다
뭐 이런애가 다있어? 울 일이 따로 있지 지가 한 짓은 생각 안하고 나만 원망하네
말도 하기가 싫어서 무시해버렸다
평소같으면 안아주고 달래주고 해서 풀었는데 오늘은 전혀 그럴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일상에서 수험생인 이쁜이를 배려하는게 감정노동수준이다
유난히 예민한 이쁜이가 수험생스트레스로 더 뾰족하게 굴기 일쑤인데
에미가 옆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맘이나 편하게 해주는거 밖에 없어 되도록이면 충돌을 피한다
이쁜이의 신경질, 짜증, 억지, 게으름 때문에 울컥울컥 치밀어오르는 화를 다스리는 일은 스트레스다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 때문인지 오늘 난 이쁜이를 위해 그 무엇도 하기가 싫다
슬퍼하건 원망하건 낙심하건 상관안한다
평소와 다른 내 반응에 이쁜이가 당황해 뭘 해야 할지 모르는 눈치더니 힘없이 독서실로 갔다
그 모습을 보니 내가 지나치게 냉정하게 굴었다는 자책감이 밀려든다
하지만 전화를 걸어온 이쁜이에게 난 여전히 아무말도 하지 않고 냉정하게 굴었다
그러고 나서 시간이 얼마큼 지나 내 마음이 가라앉았을 때 문자를 보냈다
"엄마가 오늘일은 좀 힘들다 좀있으면 괜찮아지겠지 이쁜이도 그러길 바란다"
내 기분을 솔직하게 표현하고나니 마음이 훨씬 편안해진다
에미로서 이쁜이를 슬프게 한 것이 조금은 미안하지만
오늘은 이쁜이보다 내 자신을 돌봐주는게 더 필요했다
갈등의 순간을 잘 넘기고 이쁜이와 나는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