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니가 냉장고에서 복숭아를 꺼내신다
동네사람이 가져왔다며 그중 크고 좋은 것을 골라 탁이 갖다주라고 봉다리에 담으신다
이젠 말려도 소용없는걸 아는터라 엄니 드시지 뭘 담으신대요 슬쩍 한마디 하고 만다
차시간 안에 못들어오니 잘 갖구 가라시며 엄니는 밭으로 나가셨다
엄니가 나가신 후 싸주신 봉다리에서 복숭아를 꺼내 냉장고 속 못난이복숭아랑 바꾼다
우리탁이 귀하게 생각하시는 엄니 마음에 더없이 감사하지만
아무려면 엄니가 더 좋은걸 드셔야지 주신다고 덥썩 가져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이만큼 조금씩 드는 철인가보다
전에는 몰랐다
그냥 주시는 것이니 감사히 넙죽넙죽 받았다
거절해도 주시는걸 어쩌냐는게 염치없는 핑계였다
몰염치의 끝인지 얼마전에야 나름 적당한 방법이 생각났으니 싸주신 봉다리를 몰래 다시 풀어놓는거다
엄니 안보실 때 적당히 기회를 봐서 바꿔치기 하는 것으로
염치없이 받기만 하는 며느리의 미안함을 대신한다
나중에 냉장고에서 며느리한테 들려보낸게 고스란히 들어있는걸 보시면 서운하면서도
며느리가 날 이렇게 생각해주는구나 살짝 감동하실거야 이런 생각을 하며 혼자 뿌듯하고 흐뭇하다
우리엄니 며느리라구 하나 있는 것이 건성이어서 시어머니대접 제대로 한번 못받으시고 참 안되셨다
내가 전에는 보이지 않아서, 알지 못해서 저지른 허물이 참 많다
이제야 조금씩 도리를 알게 되니 나이어린 사람의 허물이란 때가 지나면 만회가 되는거구나 싶다
나이어린 친구들의 무례함과 뻔뻔함에 울근불근 속상했는데 새삼 속좁게 그들을 흉봤던게 미안해진다
내가 그러듯 그들도 나이가 되면 그만큼의 철이 들겠지
살아오면서 저지른 내 허물도 누구에게 이렇게 이해를 받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