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상방뇨
2022년 7월 4일
기차역 주차장 화단길
제법 등치가 있는 나무들로 그늘이 시원하다
초록그늘 아래를 살랑살랑 걸어 무한천변으로 산책을 간다
길 반대편에서 남자가 화단길로 올라온다
남자가 이쪽을 한번 흘깃 본다
설마 저 사람이 지금 노상방뇨를 하려는건 아니겠지
내가 그쪽으로 걸어가고 있는 것을 분명히 보았고 거리도 그리 멀지 않다
설마는 무슨
남자가 화단쪽을 향해 서서 바지 앞쪽으로 손을 가져간다
어이가 없어 발걸음을 멈췄다
주차장에 공중화장실이 있는데 왜 이 길에서 저러는지 모르겠다
접때는 몇걸음 앞에서 주차된 차들 사이로 느닷없이 남자가 쓰윽 나오더니
나를 발견하지 못하고 주섬주섬 지퍼를 내리려고 했다
얼마나 놀랬나 손을 휘저으며 "저기요 아저씨 저기요" 소리쳤다
그 인간도 날보고 화들짝 놀랬다
그래도 그 인간은 미안하다고 사과라도 했지
주차장 쪽으로 피해서 돌아가려다 갑자기 분기탱천 오기가 생긴다
네가 부끄러운 짓을 하는데 내가 왜 피해야 하냐
어디 얼마나 뻔뻔한지 보자
허리를 쭉 펴고 고개를 똑바로 들고 앞을 응시하면서 r계속 걸었다
그 인간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다가오는 나를 보고 당황하는거 같다
부디 당황하기를 바랐다
점점 거리가 좁혀지고 그 인간이 주섬주섬 바지를 정리한다
그러더니 내쪽을 향해 걸어온다
이건 전투다
절대 저런 인간한테 져서는 안된다
그 인간을 똑바로 쳐다보며 걸었다
그 인간과 눈이 마주쳤다
최대한 경멸하는 눈으로 그인간을 쳐다봐줬다
그 인간이 기가 꺾인 표정으로 내 시선을 피하더니 흘깃흘깃 내 눈치를 보며 지나간다
이 순간 나는 내가 너무 장하다
칠십은 넘어보인다
그 나이되도록 아무데서나 노상방뇨라니 한심하다
그 인간은 내가 여자여서 당연히 피해갈 줄 알았을 것이다
그동안 내가 피해다녔기 때문에 이런 인간들이 태연하게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아무데서나 노상방뇨다
내가 비겁한 결과로 우리 딸들이 시시때때로 노상방뇨하는 인간들 때문에 기겁했을 생각을 하니 미안하다
앞으로 우리 딸들을 위해서라도 절대 피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