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그림자

여로

천천히2 2021. 10. 19. 10:02

자두랑 자전거타고 산책하다가 읍내 장터까지 갔다

드문드문 불이 켜져있는 오래된 장터의 남루한 모습이 쓸쓸하고도 정겹다

여로장터국수간판이 고색창연하다

저절로 아주 오래 전의 읍내장 풍경이 그려진다

그시절 그 자리에 나는 없었는데도 나는 밑도끝도 없이 그 시절이 그립다

오늘 퇴근하고 하천둑길을 천천히 걸어 그집으로 저녁먹으러 갔다

나이 많은 주인을 상상했는데 사장님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젊다

내 또래쯤으로 보이는데 설마 이 분이 <여로>를 간판으로 걸었을까 

아마도 2대사장님인듯 싶다

손님인듯 할아버지 한분이 느릿느릿 들어와서 가게 안 이곳저곳을 살피는 모습을 보니

내 짐작이 맞는거같다

메뉴가 간단했다

장터국수 비빔국수 칼국수 콩국수

잔치국수가 먹고 싶었는데 식당 안에 손님이 나 혼자여서 이천원 더 비싼 칼국수를 주문했다

내가 앉은 자리에서 살짝 주방이 보인다

아줌마가 국자로 멀국을 떠서 간을 보더니 다시 그 국자로 휘휘 저어가며 야채를 넣는다

코로나시국에 누구는 질색팔색할 광경인데 어지간히 나이든 나는 상관하지 않는다

한참 지나서 단무지 겉절이 칼국수가 내 앞에 차려졌다

멀국이 간간하다

밀가루냄새 물씬 나는 면발도 쫄깃하니 좋다

어렸을 적 엄마가 밀가루를 반죽해서 밀대로 쟁반처럼 둥글게 밀어낸 뒤

착착 접어 채썰어 끓여주던 그 수제비냄새가 난다

며칠전부터 이곳에서 감동할 준비가 되어있던 나는 이 순간 아주 특별한 칼국수를 먹고 있다

사장님한테 식당내력을 묻고 싶었는데 저쪽 안보이는 곳에 계셔서 아쉽게도 대화를 하지 못했다

조만간에 다시 가서 멸치육수에 말은 장터국수를 먹어야겠다

그때는 이 식당의 옛날얘기를 꼭 물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