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여행
엊그제 날씨 흐리다고 반팔에 반바지입고 자전거 타러 나갔다가 홀랑 끄슬렸다
오늘은 단단히 채비를 한다
썬크림 듬뿍 바르고 목에 스카프를 두른다
맨살에 감기는 천의 느낌이 정말 싫지만 긴팔에 긴바지를 입고 장갑도 낀다
아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지만 새까맣게 그슬린 얼굴을 보면 이렇게 해야 한다
아홉시 삼십분인데 벌써 햇살이 뜨겁다
다시 들어갈까 잠깐 망설인다
초록벌판과 산들바람이 망설이는 나를 이끈다
버릇처럼 신암쪽으로 한참을 달리다 문득 예당저수지가는 길 가로수가 생각난다
며칠전 지나치다보니 이제 나무가 제법 커서 그늘이 넓었다
방향을 바꿔 하천을 건너 예당저수지가는 언덕길로 올라갔다
산책할 때 이 언덕길로 자전거가 느릿느릿 지나가는 걸 볼 때면
한적한 시골풍경이 참 아름답고 낭만적이어서 행복했다
내가 자전거탄 풍경이 되어있는 이 순간 저쪽의 누군가 이 언덕을 보며 나처럼 행복해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땡볕에서 좋은일 하는 중이다
치렁치렁 늘어진 벗나무 가지를 이리저리 피해가며 징검다리 같은 가로수그늘을 지나가는 기분이 오지다
이 길을 생각해낸 내가 대견해죽겠다
그늘호사를 다 누리고 그늘 한점 없는 수문으로 올라갔다
푸른하늘에 흰구름이 가득한 예당저수지풍경은 어느 먼 여행지의 절경이다
그러고보면 이곳에는 없는 천하절경이라고 먼곳을 찾아가는 여행은 가끔 의미없기도 하다
저쪽에서 할아버지 한분이 벌겋게 달구어진 얼굴로 자전거를 끌고 오신다
두리두리 배나온 모습과 헐렁한 티셔츠와 반바지 차림이 근처 어디서 낚시하러 나오신 줄 알았다
근데 이틀전에 서울에서 출발하셨단다
이 멋진 할아버지는 대전까지 가실 참이란다
응원하고 싶은 마음에 어죽을 사드리겠다고 했더니
할아버지가 씻지 못한 행색 때문에 그러시는지 다음에 만나면 드시겠단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이 아무날 어느때로 못박지 않은 다음을 기약하는게 너무 근사했다
나도 길에 자주 나서는 사람이니 우리는 할아버지 말대로 어느 길에선가 또 만날지 모른다
헤어져 저만치 가던 할아버지가 되돌아 와 명함을 건네시며 서울에 오면 꼭 전화하라신다
나중에 무사히 여행을 잘 끝내셨는지 안부전화를 해야겠다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멋진 에너지가 나를 자극한다
그 자극을 받은 내 삶이 행복하다
나도 좋은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고 싶다
그래서 나를 만난 사람이 행복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