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교여행
토요일
거래처 사장님이 이사장에 출마한 선거날이다
며칠전에 사장님이 사무실에 들러 꼭 투표해달라고 부탁하셨다
쉬는 날인데 버스타고 삽교까지 갈 생각을 하니 귀찮아진다
동생차를 부를까 고민하다가 요즘 내가 편한거에 익숙해져서 게을러지는거 같다
삽교여행간다 생각하고 버스를 타러 나갔다
코로나 때문인지 터미널에서 삽교까지 가는 동안 승객이 나 혼자다
그래도 투표장은 연세가 있는 어른들로 북적인다
그분들도 나처럼 입후보자의 소신보다는 인맥으로 투표하러 나왔을 것이다
전염병 창궐에도 의리를 지키러 나온 그들이 참 정겹다
투표를 마치고 나와 천천히 삽교읍내를 걷는다
문득 십수년 전에 일부러 찾아왔던 칼국수맛집이 생각난다
위치도 제대로 모르는데 무작정 감을 믿고 가다보니 칼국수집이다
기억속의 하늘색 양철지붕집은 없고 번듯하고 세련된 새건물에 칼국수 간판이 걸렸다
그때 그집인가 긴가민가했는데 칼국수맛이 그때 그집이 맞다
닭발로 육수를 내서 걸쭉한 스프같은 칼국수
아주 오래전에 맛있다는 소문을 듣고 아버지랑 엄마랑 함께 왔던가
다른 사람이랑 왔던가 기억이 확실하지가 않다
희미한 기억은 칼국수를 다 먹고 났을 때쯤 확실한 추억이 된다
그래 그때 아버지랑 엄마랑 같이 여기에 왔었어
그렇게 믿고 싶은 추억을 다시 찾았다
나이가 들수록 지나간 시간이 아름다워지는 것은 이렇게 희망이 마술을 부리기 때문인 것 같다
바람이 심하게 분다
한적한 읍내 뒷골목에는 인적이 드물다
스웨터에 목도리만 두른 여자아이가 작은 자전거를 타고 있다
아이가 예뻐서 미소를 지었더니 나와 눈이 마주친 아이가 인사를 꾸뻑 한다
모르는 아이의 인사에 나는 더 행복해진다
휘뚜루마뚜루 되는대로 걷다보니 저쪽 골목끝에 무지개색 파라솔들이 보인다
장터다
때맞춰 장날이라니 내가 오늘 운이 엄청 좋구나
장꾼도 몇 안되는 삽교장을 구경한다
재봉틀 놓고 신발을 고치는 신기료장수가 신기하다
여자손님 하나가 신발을 한짝만 신고 신기료장수 옆에 앉아 누군가와 심각하게 통화중이다
"이거 붙이러 왔는데 안딘댜 꼬매야 딘댜 어떡한대니?"
떨어진 신발을 붙이는 것과 꼬매는 것의 차이가 무얼까?
저 아줌니는 내신발 고치는 걸 누구한테 물어보는 걸까?
항상 시간이 너무 빠르게 지나간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오래된 신기료장수를 보니
시간은 천천히 세월아네월아 느리게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