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그림자

7월의 목련

천천히2 2018. 7. 24. 10:24




비어있는 건물 울타리옆에 키가 아주 큰 목련이 있었다

먹물 흠뻑 먹고 잘 다듬어진 붓처럼 뾰족하게 생긴 흰 꽃봉오리가 수없이 매달려

매일매일이 설레이던 어느 봄날

하룻사이에 줄기들이 몽땅 잘리고 둥치만 남겨졌다

처참하고 끔찍했다

누가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했을까

긴 겨울을 지내고 이제 막 꽃이 피려고 하는데

느닷없이 가지와 줄기가 잘린 목련은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한참이 지난 어느날 몸통과 뭉툭한 줄기 끝에서 이파리가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황망하게 꽃시절을 빼앗기고도 푸른 잎으로 무성해지는 목련이 대견해서 오며가며 눈길로 격려했다

오늘 그 이파리 속에서 하얀 꽃 두송이를 발견했다

피었어야 할 할 목련이  환상통처럼 기어이 피었다

목련나무에게 어떤 의지가 있는 것인지 참으로 놀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