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그림자

벌전 부처님

천천히2 2018. 7. 22. 16:55

 

 

 

한낮의 열기에 상인도 물건도 맥을 못추고 있는 역전장. 주물로 된 잡다한 것을 파는 장꾼이 보인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장꾼이다. 옛날에 쓰던 물건들도 있어 호기심에 발길을 멈추었다. 맥락없이 이것저것 온갖 잡동사니가 널려있는 틈에 부처님이 앉아 있다. 한쪽 무릎을 세워 두 손을 포개얹고 그 위에 오른쪽 뺨을 살포시 기대었다. 조는 듯 상념에 빠져있는 그 모습이 너무나 평화로워 눈을 뗄 수가 없다. 소란스런 장터는 어디 가고 부처님과 나 둘만이 고요속에 잠겨있다. 

 

이 부처님을 늘 곁에 두고 내 마음을 기대고 싶다. 주인장한테 값을 물었다. 물경 칠만원이다. 너무 비싸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다. 빈손으로 돌아온 후로 며칠동안 벌전의 부처님이 시시때때로 그리웠다. 

 

돌아온 장날 벌전으로 갔다. 주인장과 흥정을 잘 해서 오만원에 합의가 되면 모셔올 생각이었다. 주인장은 "떼온 가격이 오만원인데 나도 만원은 남겨야 하지 않겠냐"고 한다. 그 말이 백번 옳다. 내 사정 내세워 누구더러 손해보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시 빈손으로 돌아섰다.  

 

너무 좋은데 갖지 못하니 마음이 더 간절해진다. 아쉬운대로 사진으로라도 간직하고 싶다. 다시 역전장을 기다렸다. 장날 서둘러 점심을 먹고 벌전으로 갔다. 그새 누가 사가지나 않았을까 불안하다. 부처님 있던 자리에 다른 물건이 보여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부처님은 딴 자리로 옮겨 앉아 여전히 평화로운 상념에 빠져있다. 폭염에 전을 벌이고 있는 주인장한테 염치가 없어 잠시 망설이다가 사진을 찍어도 되겠냐고 물었다. 다행스럽게도 주인장이 흔쾌히 그러라고 한다. 햇빛에 달구어져 따끈따끈한 부처님을 종이박스 위에 올려놓고 사진을 찍었다. 주인장한테 너무 미안해서 사진이 잘 찍혔는지 확인할 경황도 없었다. 사진을 찍은 휴대폰을 품에 안고 무한천으로 산책을 가는데 너무나 뿌듯했다.

 

주인장이 너무 고맙다. 그냥 말 수가 없다. 산책에서 돌아오는 길에 약국에 들러 시원한 박카스 다섯병을 샀다.

 

"날도 더운데 사지도 않고 사진만 찍어서 죄송해요"

 

"아이고 아뉴 괜찮유"

 

"이거 드세요 제가 너무 갖고 싶었던 사진이어서 감사해서 그래요"

 

"아이고 천사시네유 이렇게 마음착한 분은 처음 봐유"

 

박카스봉다리를 받아드는 주인장이 순박하게 웃으니 난 또 한번 감동한다. 돌아오는 등 뒤에서 주인장이 다른 손님에게 "세상에 제가 이런 일은 또 처음이네유" 한다. 

 

행복한 역전장날이다

나는 맘씨좋은 주인장을 만나 그리워하던 부처님 사진을 얻었고, 어디서 왔는지 모를 주인장은 예산 역전장에서 좋은 추억이 하나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