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스런 둘쨋날 밤에
온 천지를 태워버릴 듯한 열정적인 노을을 기대했다
그런데 날씨가 하루종일 청명하지 않다
그래서인지 해질 무렵 노을이 안개와 함께 부드럽게 내려왔다
화려한 노을과 달리 마음이 한없이 조용해진다
망부석이 되어 바라보고 있노라니 내 몸이 고운 알갱이가 되어 노을속으로 퍼져가는거 같다
천천히 걸으며 노을에 물들었다
노을빛이 가만가만히 가라앉고 서서히 어두워졌다
몸과 마음이 더할 나위 없이 흡족하다
이제 아까 본 버스가 되돌아 나오면 그 차를 타고 시내로 돌아가면 행복한 하루가 끝난다
낮에 정류장에 붙어있는 버스시간표에는 막차시간이 일곱시 반쯤이었다
막차를 놓치면 안되니 연신 뒤를 살피며 걷는다
이상하다 아무리 기다려도 버스가 오지 않는다
날은 이제 완전히 깜깜해졌다
밤이 되니 아름다운 해안도로에는 인적도 없고 다니는 차도 없다
어쩌다 한번 지나가는 차를 보면 반갑다가 이내 무서워진다
운전자가 외진 길을 혼자서 베낭매고 걷는 나를 보고 혹시라도 나쁜마음을 먹을까 두렵다
낮에 봄바람처럼 나풀나풀 즐기던 해안길이 이제는 오로지 목적지를 향해 지나가야하는 찻길이 되어버렸다
한시간 정도를 정신없이 걸었다
멀리 영광대교 불빛이 보이니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인다
허나 산자락을 감고 도는 길이어서 깜깜한 밤길이 계속 이어진다
법성포로 어떻게 들어가야 하는지 버스는 언제오는지 고민하다가 파출소로 전화를 걸었다
하이구야 이곳으로는 버스가 다니지 않는단다
내가 아주 무식하게 용감했구나
진짜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다는 생각에 얼이 나가 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파출소에서 순찰차로 나를 데리러 오겠다는 것이다
아 나는 영광에 또다시 감동한다
영광사람들은 진짜로 다 착한가부다
순찰차를 타고 오는데 나 있는데서 법성포까지는 또 멀고도 어두운 길이었다
순찰차가 와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오늘밤 공포영화를 찍을 뻔 했다
정신적으로 체력적으로 기진맥진한 지점에서 순찰차가 나를 구해줬다
앞자리와 투명칸막이로 분리된 순찰차를 타고 오는데
한숨 돌린 나는 다시 이내 철없는 푼수가 되어 이 상황이 너무 재밌다
위험하긴 했지만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 쫄 일도 없잖은가
아줌마 만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