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마른 열매인 줄 알았다
일부러 뿌려놓은 것처럼 사차선 옆 갓길에 작은 알갱이들이 좌르륵 널려있다
신기한 마음에 일부러 밟으며 걸었다
잘 튀겨낸 과자처럼 바삭바삭 부서지는 소리가 경쾌했다
서너발자욱 떼다 갑자기 느낌이 싸해서 그 자리에 멈췄다
설마 하고 허리숙여 내려다보니 어쩜 좋아 이 작은 알갱이가 달팽이다
내 무지막지한 운동화발 아래 수많은 달팽이들이 으깨진 것이다
충격에 빠져 버렸다
찻길로 들어가서 걸을 수 밖에 없었다
발 아래를 챙기느라 고개를 들 수가 없다
보고 싶은 구름 보고 싶은 들녘 보고 싶은 산 그 어느 것도 보지 못하고 달팽이만 신경써야했다
그렇게 몇걸음 걷는데 급격하게 피곤해진다
달팽이들이 부담스러워졌다
그리고 내 발목을 잡는 달팽이들이 미워지기 시작했다
외면하고 싶었다
이렇게 죽고 사는 것이 니들 팔자고 이만큼 챙기는 것이 내 한계다 하며 마구 되는대로 걷고 싶어졌다
내 안의 폭력성이 드러난다
문득 재개발지역의 철거가 떠올랐다
이익을 챙길 생각으로 가득찬 개벌업자눈에는 떠나지 않는 지역주민들이 거추장스러운 달팽이처럼 보이기도 하겠구나
그래서 그런 잔인한 폭력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것이구나
다행히 내 인내심이 바닥을 보이기 전에 달팽이구역이 끝났다
비가 몇방울 떨어졌는데 벌써 비냄새를 맡고 여린 몸을 길게 내밀고 기어다니는 달팽이들도 있다
내 발 아래서 으깨진 아이들도 이렇게 신비스럽게 살아 움직일 수 있었다
새삼 내가 얼마나 무참한 짓을 저질렀는지 깨닫는다
눈이 나빠 나도 모르게 지은 죄라고 해도 그 죄가 가벼워지는건 아니다
알면서 모르면서 내가 참 많은 죄를 짓고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