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그림자

길 하나 사이에 두고

천천히2 2017. 9. 18. 13:22


어제밤 자두랑 산책을 하다가 흐릿한 가로등 불빛 속에서 잠들어 있는 이 아이를 보았다

도르르 말린 꽃봉오리 끝이 제법 붉다

매일 지나는 출근길인데 이렇게 크도록 그동안 한번도 이 아이를 본 적이 없다

나는 이 아이가 있는 곳 바로 맞은편 울타리에 핀 나팔꽃들만 쳐다보면서 이앞을 지나다녔던 거다

오늘 아침 출근할 때 보니 예쁘게 벙글어졌다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자란 꽃이어서 놀랐다

쎄멘 틈에서 이만큼이나 자라다니

애틋하고도 장한 아이다


맞은편 담장

한 아이가 담장 제일 높은 곳에 혼자 올라가 까치발을 들고 저 먼곳을 바라보고 있다

당돌한 아이의 간절함이 느껴져 잠시 멈춰서서 그 아이의 꿈을 같이 꾸었다

애틋하고 대견한 아이다


낮은 자리의 아이가 높은 곳의 아이를 보고 부러워하거나 주눅들지 않기를

높은 자리의 아이가 낮은 곳의 아이를 보고 으시대거나 미안해하지 않기를 기도했다

너는 너의 자리에서 너의 삶을

나는 나의 자리에서 나의 삶을

이 순간 최선으로 사는 것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