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그림자

나는 멍텅구리다

천천히2 2017. 3. 13. 22:30

일요일에 원숙언니랑 통영 장사도에 가기로 했다

군청 앞에서 버스가 다섯시에 출발하니 준비하려면 네시에 일어나야 한다

못일어날까봐 걱정이 됐다

이틀 앞두고 언니에게 카톡을 보냈다

"네시에 나한테 전화좀 해줘 못일어날까봐 떨려"

읽씹이다

가타부타 말이 없으니 짜증이 난다

 

하루 전날 밤인데도 연락이 없다

내 마음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내일 몇시에 만나 같이 갈 것인지는 정해야 할텐데 어쩌자고 이렇게 아무런 연락이 없는건가

이렇게 아무말 없는거 보면 직접 군청 앞으로 갈 지도 모르겠다

설마 그러기야 하겠나 싶었지만 이시간까지 아무말 없는거보면 그럴 수도 있다

그러면 나는 택시타고 가면 되지 뭐

내가 먼저 전화해서 어떻게 할거냐고 묻는게 자존심이 상한다

이번 일로 언니와의 사이가 크게 벌어지겠구나

알고 지낸 지 삼십년이 다되가는데 이렇게해서 가까운 사람을 하나 잃는건가

서글퍼진다

 

그래 언니와 알고 지낸 지 삼십년이다

그동안 내가 보아온 언니는 전혀 그럴 사람이 아니다

인정이 많고 경우도 바르다

그리고 늘 나를 많이 챙겨준다

무뚝뚝하고 직선적인 말투 때문에 가끔 당황스럽고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상식적인 사람이다

내가 보낸 카톡을 읽고 대답을 안하는 것은 바쁘거나 굳이 대답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을 하는거다

아마도 새벽에 통화를 할 것이니 그때 만날 시간을 정하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평소 통화할 때에도 군더더기 없이 용건만 말하는 언니니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언니와 나는 각자 생각하는 속도와 방법으로 여행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언니가 내가 생각하는대로 응대를 해주지 않는다고

울근불근 언니를 비난하고 짜증내고 토라지며 며칠동안 끌탕을 했구나

오랜시간동안 보아오고 겪어오며 내린 판단대로 믿기만 하면 되는 것인데

내 예상과 다른 상황에서는 늘 이렇게 말도 안되는 상상을 하며 내 마음을 지옥으로 만든다 

 

새벽 네시에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응 나 일어났어"

"알았어" 한마디 하고 언니가 전화를 끊으려고 한다

나는 또 당황한다

"나 태우고 가야지~"

"당연한 소릴 하네 멍텅구리같이 내가 그냥 갈거라구 생각했냐?"

그러게 나는 멍텅구리다

너무 자주 망상에 사로잡히는 멍텅구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