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콜콜

2017년 짧은글 - 1월

천천히2 2017. 1. 4. 15:16

2017년 1월 2일

며칠전에 탁이들이 월요일에 완전군장하고 20킬로미터 행군한다고

일요일 오후 세시부터 응원시작하자는 카페쪽지가 왔었다

어제 까페에 들어가 응원글을 올렸다

오늘 아침에 카페에 들어가봤더니 응원방에 댓글달린게 6천개가 넘는다

와~대단하다

으쌰으쌰 아무개 잘해라 화이팅 아들들 힘내라

16-14기부모들은 당연히 하는거라지만 14년 15년 기수이름이 촤르륵 달린다

행군하는 시간내내 댓글달리기가 이어진다

내 아들도 아닌데 이렇게 열성적으로 관심을 가져주는구나

감동스러웠다

가슴이 벅차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내 마음이 아무리 간절하다고 한들 

탁이가 느끼는 힘들고 어려운 그 시간을 얼마큼이나 짐작할 수 있으랴 하는 생각에

힘내라는 말도 쉽게 못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응원댓글달리기를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이 수많은 사람들의 기도와 응원의 기운이 탁이들한테 그대로 전달이 되겠구나

그 힘으로 우리 아들들이 힘든 시간을 잘 견뎌낼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더 많은 아들들을 사랑하고 응원하겠습니다

 

2017년 1월 3일

이쁜이가 일주일만에 서울로 갔다

탁이가 입대했을 때만큼이나 허전하다

 

2017년 1월 9일

뱀이 난다

이 나무에서 저 나무까지 멀리는 백미터까지 날개도 없는 뱀이 날아간다

먹이를 발견한 포식자의 소름끼치는 능력에 전율한다

해설자가 날개도 없이 허공으로 뛰어들어야만 했던 절박한 상황에 적응하다 생긴 능력이라고 설명한다

뱀이 약자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 나는 궁지에 몰린 뱀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겪지 않은 사람에 대한 판단

경험하지 않은 일에 대한 짐작

모든 것이 내 그릇만큼 이루어진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늘 들여다보며 살아야 하는 이유다

 

2017년 1월 11일

내일 수료식점심을 어떻게 할지 재현엄마랑 의논했다

지난번 통화에서 재현이가 삼겹살먹고 싶다고 했다는 말도 들었고

카페에서도 아들들이 삼겹살얘기를 하더란 글을 읽었다

지난번에 입소식때 재현이아부지가 이동갈비를 사줘서 맛있게 먹었기에

이번에는 내가 점심으로 갈비를 사야겠다 생각했다

메뉴가 삼겹살로 정해지니 지난번 경비보다 너무 헐한거 같아서 약간 혼란스럽다

더구나 재현엄마가 삼겹살얘기를 하면서 지난번에 갈비값이 만만치 않게 나오더라구요~한다

나는 군대간 아들들 먹는거라 돈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었다

재현네가 잘산다고 들었는데 재현엄마가 의외로 씀씀이가 야무진거 같다

혹시 입소식때 재현엄마가 나보고 저아줌마가 왜 밥값 반을 안내나 이런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까 걱정이 된다

재현아부지가 계산하는데 가서 반반하자고 하기도 그렇고

계좌번호 불러달라고 하기도 그렇고 해서 수료식때 내가 사면 되지 생각했는데 찜찜하다

부자들이 더 돈을 애지중지 한다더니 정말 그렇구나

돈 없는 나는 당연히 써야 할 돈 쓰는거지 하면서 허랑했다

정신이 번쩍 든다

 

 

2017년 1월 12일

수료식에서 탁이동기 몇명과 인사를 했다

"승탁이 너무 착해요 승탁이 덕분에 재밌게 잘지냈습니다"

모두가 똑같은 말을 해준다

엄마한테 듣기 좋으라고 하는 인사려니 생각하면서도 뿌듯하고 우리탁이가 자랑스럽다

 

탁이가 입대전에 걸그룹 유진이보고 귀엽다고 이쁘다고 사진을 보여줬다

인터넷편지쓸 때 유진이 사진을 일부러 찾아서 보내줬다

오늘 탁이가 그런다

"엄마 유진이 사진 그만 보내 나 그만큼 안좋아해 그냥 이쁘고 귀엽다고 한건데 맨날 사진보내

처음엔 누군지도 몰랐어"

군인들이 걸그룹에 열광하니 훈련소에 있는 우리탁이도 당연히 유진이사진에 환호할 줄 알았다

꽝이었다 ㅎㅎㅎㅎㅎ

 

탁이가 수료식때 스마트폰 잊지말고 가져오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스마트폰을 받아든 탁이가 감개무량이다

켜는 방법도 잊었다고 너스레를 떨더니 바로 셀카찍어 페이스북에 올리고 친구들과 통화한다

에미는 한달만에 만난 아들하고 놀고 싶은데 아들은 통화하고 카톡하느라 바빠 에미랑 말할 시간이 없다

나는 안오고 휴대폰만 보냈어도 아무 상관없을 뻔 했다

 

며칠전에 맛있는 식당을 알아보려고 윤식이한테 연락을 했다

시간이 된다면서 수료식날 오겠다고 했다

윤식이가 오늘 하루종일 같이 있어줬다

산정호수도 안내해주고 탁이영양제도 챙겨주고 용돈도 주고 재현네부모님들 하고도 잘 어울렸다

내가 윤식이 덕분에 아주 든든했다

윤식이가 아니었으면 그렇게 자유롭게 돌아다니지도 못했다

산정호수에서 탁이동기가 엄마와 둘이 산책하는 모습이 조금 쓸쓸해보였다

윤식이가 없었더라면 탁이와 나도 그렇게 조금은 쓸쓸했을 것이다

윤식이의 따뜻한 아량이 너무나 고맙다

나도 누군가한테 그런 사람이 되어야지

 

2017년 1월 15일

 

엄니랑 온천에 갔다

묵직한 엄니목욕가방에서 나온 먹을거리들

생강차와 종이컵 깎은단감 요구르트 2개 호두과자 빵

아침을 안먹고 나간터라 엄니랑 짜장면을 사먹을까 칼국수를 사먹을까 고민했는데

엄니가 이렇게 점심을 한보따리 싸오셨다

허기진 채로 목욕하고 찜질방에서 먹었는데 겁나게 맛있었다

 

2017년 1월 17일

서류넣는 목재캐비넷 문을 닫을 때 끝까지 잡고 살그머니 놓아야 소리가 안난다

안그러면 탕탕 소리가 엄청 크게 난다

매번 소리나는거 상관없이 탕탕 문을 닫는 직원이 있어서

저니는 소리나는게 전혀 신경쓰이지 않는가부다 희한하구나 생각했다 

오늘 그 직원이 출입문이 덜컹거리는게 시끄럽다고 하루종일 불평한다

진짜 이럴 때 이해가 안된다

 

2017년 1월 20일

책상을 나란히 하고 있는 직원의 휴지통이 내쪽으로 훌쩍 넘어와있다

직원은 전혀 신경쓰지 않고 휴지를 휙휙 던진다

기분이 나쁘다

휴지통이 걸려 책상서랍을 열기도 불편하다

얘는 왜 자기휴지통을 내쪽으로 이렇게 밀어놓는거지

별거 아닌거 갖고 유난떠는거 같아 말도 못하고 속으로만 투덜거린다

어쩌다 그 휴지통에 내가 휴지를 버렸다

그 순간 희한하게 마음이 편해진다

쟤꺼 내꺼를 분별하는 마음이 문제였구나

나도 쓰는 휴지통이라는 생각 하나로 며칠동안 나를 괴롭히던 문제가 해결되었다

 

2017년 1월 20일

열시쯤 눈이 펑펑 내린다

산책을 나갔다

아파트현관앞은 벌써 눈이 치워져있다

경비아저씨가 연세가 많으신데 혼자 애쓰시는구나

저쪽에서 눈 밀어내는 소리가 들린다

보니 두 사람이 아파트 진입로에서 눈을 치우고 있다

늦은밤에 나와 경비아저씨랑 눈을 치우는 저 사람이 누굴까 궁금하다

미안해서 그쪽으로 못가고 샛길로  나와 동네골목골목 눈길을 흐트려놓으며 산책을 했다

돌아와보니 아파트주변 눈이 다 치워져있다

공연히 아파트를 한바퀴 돌다가 뒷편에서 아직 눈을 치우고 있는 경비아저씨를 만났다

저도 좀 할께요 했더니 다 치웠다고 하신다

아까 같이 눈을 치운 사람이 궁금해 물어봤더니  슈퍼사장님이라고 알려주신다

나이도 젊던데 참 훌륭한 사람이다

 

2017년 1월 22일

간밤에 눈내린 날 아침 골목을 걸으며 사람들의 마음을 본다

누구는 문앞만 눈을 쓸고

누구는 멀리까지 눈을 쓸엇다
눈치운 자국으로 나는 알지도 못하는 어떤 사람을 판단한다

이니는 이기적이구나

이니는 마음이 넓구나

그러다 문득 생각한다

나는 오늘 아침 눈을 치우자고 빗자루도 들지 않은 사람이다

 

 

2017년 1월 24일

 

눈덩이가 허공에서 대롱대롱

 

 

총총총 걷다가 문득 살짝 돌아서서 저쪽으로 총총총

아무생각없이 마음가는대로 총총총

귀여운 미지의 발자국

 

 

꼬리를 질질질 뒤뚱뒤뚱 걸어가는 새가 보이는거 같아서 멈춰서서 한참 웃었다

귀여워라

 

 

2017년 1월 25일

변기 위에 앉아있는데 저절로 나오는 감사기도

지금 누리는 이 건강과 평화와 안락함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2017년 1월 27일

 

 

이쁜이만두 내만두

서로가 자기 것이 더 이쁘다는 만두

 

2017년 1월 27일

 

이쁜이말에 의하면

내 발냄새에 기절한 자두

 

2017년 1월 28일

 

 

 

 

2017년 1월 28일

가운데방에서 이불을 가져오는데 작은 베개가 있다

엄니말씀이 이쁜이 애기때 쓰던 베개란다

으잉???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봐도 짱구베개랑 내가 만들어준 베개만 생각나지

이 베개는 기억에 없다

내가 탁이와 이쁜이 애기때 추억을 많이 잊었나부다

안타깝다

이쁜이는 이 작은 베개가 너무 신기하고 귀엽다고 난리다

엄니는 어떻게 이런 걸 다 갖구 계실까

 

 

 

 

 

2017년 1월 30일

호디 춥다

제대로 부는 겨울바람이 통쾌하다

나뭇가지에 영롱한 얼음꽃이 조롱조롱 열렸다

바람이라도 지나가면 챠르릉챠르릉 맑은 소리가 나겠다

내가 얼음꽃을 본 적이 있었던가? 아휴 내 머리 깡통이다 잘 모르겠다

얼음꽃이 처음 보는 것처럼 신기하고 아름답다

 

 

 

 

눈애벌레

 

2017년 1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