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그림자

드라이기를 수리하다

천천히2 2016. 11. 9. 10:27

이쁜이가 일년 전에 서울서 쓰던 드라이기를 집에 갖고 왔다

잘 되다가 가끔 안되는데 쓰기 불편해서 새로 하나 샀단다

내가 써보니 크고 바람도 잘 나온다

먼저 쓰던 작은 드라이기를 넣어두고 그걸 썼다

얼마 전부터 드라이기를 쓸 때 방향이 바뀌면 멈췄다

간당간당하던 선이 이제 제대로 끊겨 접속이 안되는거 같다

어제 아침 드라이기가 마지막 불꽃쇼를 하고 결국 멈췄다


전자제품수리점이 삼거리에 있었다

몇년 전에 한번 갔었는데 아직도 영업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때도 드라이기 때문에 갔었다

저녁밥을 먹고 자두 데리고 산책삼아 나갔다

가게에 불이 환하게 켜져 있다

반갑다

몇년 못 본 사이 아저씨가 많이 늙으셨다

수리비 오천원 들었다

폐기될 뻔한 드라이기가 다시 생명을 얻었다

고쳐서 다시 쓰는 드라이기를 보는 내 마음이 뿌듯하다

이쁜이는 수리비 오천원 들여 고치느니 하나 사지 그랬냐고 한다

비용만을 생각한다면 젊은 이쁜이의 생각이 합리적이다

고친 드라이기가 얼마를 버틸 지 모르니 수리비를 들이는 것보다 새것을 사는게 경제적일 수 있다

늙은 나는 비용이 아닌 다른 것을 생각한다

재생불가로 망가진게 아니라 일부가 고장난 드라이기에게 아직 남아있는 쓸모를 생각하고 

조금 덜 소비하는 삶의 방식을 생각하고

내가 쓰던 물건에 대한 의리와 정을 생각한다

이런 말이 이쁜이에게는 외계어로 들릴거 같아 그냥 웃고 만다

수리점사장님이 건강하게 오래오래 일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