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무김치
"열무가 연하니까 애기다루듯이 살살해라 너무 씻으면 풋내나"
쉰살 넘은 며느리한테 일 맡기는게 영 불안한 엄니가 거듭 당부하신다
열무 세 단 다듬어 놓으니 커다란 다라에 한가득이다
줄기 사이에 낀 흙 잘 떨어지게 물을 받아 잠깐 담가놓았다
금새 열무잎이 파릇파릇 살아난다
어찌나 연한지 살그머니 흔들어도 아삭아삭 부스러진다
엄니말씀대로 애기다루듯 조심조심 살살 흔들며 세번 헹구었다
싱싱한 줄기 하나 집어 깨물었다
알싸하고 달고 싱그럽다
늘상 느끼는 건데 자체로 이렇게 맛있는데 왜 이것저것 넣어 요리라는걸 하나 모르겠다
엄니가 고추갈고 마늘 양파넣고 쪽파 숭덩숭덩 썰어 넣어 김치양념을 만드신다
고추양념냄새가 향기롭다
이 맛을 내가 배워야하는데 언제 배우나
절인 열무 중간중간에 양념을 넣고 살살 버무린다
열무김치의 풋내가 말할 수 없이 좋다
금방 담근 김치가 정말 맛난데 김치를 못담그니 먹을 기회가 거의 없다
이 나이 되도록 내 손으로 김치 한번을 안담갔다
오십 평생을 입만 갖고 살았다
어려서 엄마가 열무김치 담그면 그날은 보리밥해서 커다란 양푼에 열무김치 넣고 고추장으로 비벼먹었다
그 기억이 떠올라 호박 넣고 바지락 넣고 뚝딱뚝딱 된장찌게를 끓였다
양재기에다가 싱그런 열무김치랑 고추장이랑 기름 깨소금 넣고 밥을 비볐다
오직 이 때만 먹을 수 있는 너무나 특별한 밥
엄니도 맛있다고 하신다
엄니가 뻣뻣한 열무줄기를 집었다가 순간 머뭇거리신다
억세서 그러신가부다 짐작하고 슬그머니 내 밥공기을 내밀었더니 거기다 넣으신다
우적우적 줄기는 싱싱해서 좋고 잎파리는 양념베서 좋고 나는 다 맛있어서 소마냥 먹는다
조금 있다가 엄니가 다시 줄기 하나 들고 날 쳐다보시고
난 그거 받아서 또 우적우적
애기가 못먹는거 엄마가 대신 받아 먹는거처럼 엄니랑 나랑 주고 받았다
이쁜이한테 오늘 일을 얘기해줬더니
"할머니랑 엄마랑 연애해?"이런다
서로 애틋하고 서로 챙겨주려 하고 서로 고마워하는 엄니와 나
그러네 엄니랑 나랑 연애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