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짧은얘기 - 6월
2016년 6월 1일
드디어 야근이 끝났다
이렇게 여유로운 아침
이게 얼마만인가
좋다
좋다
너무너무 좋다
2016년 6월 1일
마음농사 아름답고 좋은 것만 짓자고 마음먹어도
억울하고 분통터지는 순간은 늘 있으니 괴로운 마음을 농사짓는 방법도 늘 찾아야 한다
오늘 찾아낸 마음농사법 하나
승질나는 마음을 심지삼아 향을 피운다
하얀줄기 하나 피어오르다 서서히 허공에서 사라져간다
뚜렷했던 줄기가 흔적조차 없이 사라지는 시간은 길지 않다
그 연기가 원망과 승질나는 마음이라 생각한다
더이상 탈 것이 없으면 연기도 생기지 않는 법
그렇게 내 마음속의 분노를 태우면 더이상 괴로울 일도 없는 법
2016년 6월 2일
작아서 더 잘보이는 것들이 있다
2016년 6월 13일
정숙이가 뒤늦은 생일밥을 사준단다
근사한 일식집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늘 즐거운 우리의 대화가 오늘은 더 잘 통한다
그래서인지 술이 술술 들어간다
무려 소주를 세병!!! 기록이다
늦은밤 취해서 걷는 기분이 아주 자유롭다
벚꽃길을 걷다가 마을로 들어가는 길 한가운데에 둘이 호기롭게 누웠다
대천밤바다에서처럼 밤하늘의 별들이 헤엄친다
이렇게 풀어진 우리가 너무 신기해서 우리는 흥분한다
누군가 술에 취해 길에 누웠다고 하면 끌끌끌 혀를 찼을 텐데
막상 그래보니 참으로 호탕해진다
정숙이랑 있으면 이렇게 멋진 일이 생긴다
2016년 6월 16일
<이게 머게~>
<빗자루>
<맞았당
염색한 빗자루
엄니얼굴 쓸어줬어>
산책길에 주워든 자귀꽃
달달한 향기를 맡는데 뺨에 닿은 꽃잎이 자두털처럼 부드럽다
자귀꽃으로 살살 뺨을 쓰다듬으며 걸었다
빗자루라니....거참 울애기 참
2016년 6월 21일
여고기숙사마당 빨래줄과 건조대
양말은 나란히 티는 반듯반듯
근데 속옷은 안보이네
브라하고 팬티는?
보이면 안되는거여?
이 좋은 햇빛을 못보는 브라하고 팬티가 불쌍하다
2016년 6월 22일
향 하나 나의 하루
허공으로 사라지는 연기처럼 나의 하루를 지운다
유난히 소심한 성격으로 매일매일이 말에 베이는 상처로 피가 철철
연기로 날려보내지 않으면 감당할 수 없는 무게
향 하나 피우고 어제를 날린다
다시 세상에 나갈 준비를 한다
2016년 6월 23일
느닷없이 점프공연 봤던게 생각나서
검색해 들어갔더니 그게 벌써 7년전 얘기다
이쁘니한테 글을 보내줬다
이쁘니는 전혀 기억을 못한다
내 가슴속에만 추억이 소복소복 쌓여있다
블로그가 내 보물창고구나
2016년 6월 23일
전송오류나는걸 아무리 이리저리 궁리해봐도 도대체 풀 수가 없다
과장님한테 물으러 갔다
"생각좀 해봐"
하~
난 또 생각도 안하는 애가 됐다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날 때 더 열심히 웃는다
내맘에 기스내는 사람들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방법이다
그들로 인해 내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지는건 막아야 한다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날 때 화장실가서 거울보고 환하게 웃는다
2016년 6월 22일
부족하면 쓰는 마음이 신중해지고
주어진 것에 세심하게 감사하게 된다
내 삶이 행복하다
2016년 6월 25일
들에서 산으로 산책로를 바꾼 지 일년
오랜만에 들로 산책하러 나갔다
제법 자란 벼를 설설설설 밟으며 바람이 뛰어간다
귀여운 바람
산책길옆 밭에 아저씨가 있었다
옛날머슴이 저랬을까 싶을만큼 허름한 옷차림에 늘 맨발로 일을 했다
비가 와도 그자리 이글이글 해가 뜨거워도 그자리
밭에서 아저씨는 늘 돌을 고르고 풀을 뽑았다
군더더기 없이 말끔하게 정돈된 밭은 지나가며 바라만봐도 뿌듯했다
근데 오늘 그 밭에 잡초가 무성하다
밭이었다는 흔적조차 희미하다
가슴이 철렁
아저씨한테 무슨 일이 있구나
모르는 그 아저씨의 안부가 너무 궁금하다
2016년 6월 25일
주말출근
비온 다음날 날씨가 가을처럼 청명하다
가실가실한 바람이 황홀하게 분다
걷고 싶은 마음에 점심밥을 남기고 서둘러 사무실을 나섰다
봉대미산이 아닌 들판으로 나갔다
벼가 제법 자라 벌써 빽빽하게 논을 가득 채웠다
바람이 설설설설 초록물결을 일으킨다
이렇게 아름답구나
2016년 6월 25일
성실신고 때문에 주말출근이다
출근준비 끝낸 열시쯤 엄니한테서 전화가 왔다
벌써 사무실앞이란다
오이 갖고 나오신다더니 엄니가 생각보다 일찍 오셨다
출근할 때 과일가게를 들려 엄니드릴 과일좀 사려고 했는데 낭패다
사무실 앞에는 과일가게도 없다
하는 수 없이 만원짜리 하나 돌돌말아 드리며 읍내장에서 과일 사드시라고 했다
엄니 펄쩍 뛰신다
"내 돈으로 사먹을테니 넣어둬라"
"아이고 엄니 돈 많은거 알어요 그래도 그냥 가시면 제가 서운해서 그래요"
차턱에서 한참을 실갱이했다
절대 안받으실거 같던 엄니가 이번에는 결국 받으신다
엄니가 그래주셔서 나는 너무 감사하다
2016년 6월 26일
땡볕이 내리쬐는 한낮
들판이 조용하다
걷는 사람이 나 혼자다
열기속을 천천히 걷는 마음이 고요하다
돌아오는 길
귀여운 개망초꽃 세자매가 벤치 뒤에서 빼꼼 나를 내다 본다
2016년 6월 26일
불탄이라 읽으며 무심하게 지나쳤다가 뭐지? 다시 가서 봤다
<부탄가스 한줄에>는 없는 소박함이 느껴져 무지 행복했다
2016년 6월 26일
"은영이랑 천안서 점봤어"
"머라대?"
"이삼년 후에는 정신을 차리게 될거래 제복입는 직업 갖게 되구 나 공부안한 것도 알던데 ㅋㅋ
그리고 바람 필 여자를 조심하래 결혼할 사람은 스물다섯쯤에 만나지 않으면 서른다섯쯤에 만나게 될거래"
"은영이는?"
"은영이가 남자를 너무 좋아한대 ㅎㅎㅎㅎㅎ그래서 어쩌면 바람을 필 수도 있대"
"은영이가 그러면 탁이 어쩌냐 상처받아서"
"난 그런 일 생기면 그냥 헤어질거야 내가 아무리 좋아해도 헤어질거야"
"맞어 엄니도 그래 엄니가 아무리 사랑해도 다른 사람 좋다는데 매달릴 필요 없다고 생각해
근데 은영이랑은 어때?"
"우리 서로가 너무 편해 걔 앞에서는 뭘 해도 괜찮아 가리는게 없어 밥먹을 때도 그냥 막 먹어"
"우리탁이 은영이한테 신사답게 잘 행동하지?"
"그러~~~~엄 내가 얼마나 잘 해주는데"
2016년 6월 27일
앞에 걸어가는 할머니차림이 예사롭지 않다
머리에 작은 집게핀을 여섯개나 꽂고 머리띠까지 했다
팔토시도 하고 장갑도 끼고 양산을 쓰셨다
잠깐동안 할머니차림이 과하다고 생각한다
조금더 뒤따라 걸어가다보니 생각이 바뀐다
거울 앞에서 조금 더 이쁜 모습을 찾아 이렇게 저렇게 핀을 꽂는 할머니를 상상한다
나이가 들어서도 그러는 할머니가 존경스러워진다
나도 저 할머니처럼 여성스럽게 늙고 싶다
2016년 6월 27일
오래전 쓴 글들을 읽어본다
잊었던 추억들이 새록새록 새로워진다
글로 남겨놓지 않았더라면 까마득하게 사라졌을 아름다운 추억들이다
블로그 만들어준 창희가 너무 고맙구나
블로그를 한 것은 내 인생에서 정말 잘한 일 중에 하나인거 같다
2016년 6월 29일
출근길에 지나는 집
주인은 고무다라에 연꽃을 심어 대문앞에 내놓았다
싱싱한 연잎과 여문 꽃봉오리가 신비스럽다
골목에 내놓은 치자화분에는 하얀치자꽃이 만발했다
달콤한 치자향을 맡으며 행복에 빠진다
얼굴모르는 누군가의 공력으로 내 출근길이 참 아름답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