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짧은얘기(10월)
2015년 10월 1일
누워서 책을 보는데
자두가 배 위에 올라와 웅크리고 앉을 자리를 만든다
뱅글뱅글 돌며 박벅벅 긁는다
한참을 그런다
얼핏 한숨소리를 들은 것도 같다
하긴 질은 밀가루반죽처럼 푹푹 빠지는 내 배에서
자리만들기가 쉬운 일은 아닐게다
미안해 자두 ㅠㅠ
2015년 10월 1일
이쁜이가 기차에 오르고
기차가 출발하기를 기다렸다
역무원과 나와 기차만 있다
어딘지 기억나지 않는 곳으로 여행갈 때
정숙이하고 역무원하고 기차하고 이렇게 서서 나를 기다렸었지
새삼 이 상태에서 이삼분을 기다린다는게 얼마나 큰일인지를 알겠다
정숙이하고는 참 대단한 일들이 많았구나
그리워라~
2015년 10월 4일
어딜바날바
2015년 10월 4일
울엄니가 최강이다
여문 수수 새들이 다 절딴낼까봐 하나하나 양파망 씌워놓은건 봤어도
이렇게 그늘막으로 덮어놓은건 첨봤네
개중에 하나 답답했는지 쑤욱 고개내밀고 있다
요것이 새들 무서운줄 모르고..
2015년 10월 3일
암살 마지막장면에서 염상진이 죄값을 치를 때
마음은 시원하더라만
영화에서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먹고 잘살았다라고 결말을 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게 현실이니까
수많은 염상진들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기에
그 일당의 세력이 광복 칠십년이 지난 우리나라를 휘두르고 있는게 현실아닌가
천만이 넘는 사람들에게 우리나라의 현실을 절절하게 느낄 수 있는 기회였다는 생각이다
결말이 달랐다면 천만이 안됐을까?
2015년 10월 5일
경비원아저씨가 새로 오셨는데
전에 근무하시던 분과 많이 다르다
인사를 잘 하시지도 않고 인사를 잘 받지도 않으신다
작은 눈에서 완고함이 느껴져서 그런지 마주하면 편하지 않다
아저씨가 경비원자리를 편하게 생각하지 않는건 아닐까
그렇게 짐작을 해본다
아저씨한테서 내 모습이 보인다
자의식에 꽉찬 내 모습이 저렇겠구나
내가 마음을 편하게 잘 다듬어야겠다
2015년 10월 5일
내가 걸레를 헹구는걸 보고 직원이 대충 한다는 느낌을 받은거 같다
그게 마음에 걸려 설거지하다가도 샤워하다가도 문득문득 그 생각을 떠올린다
내가 신경쓰는게 대체 뭘까
말많은 그니가 내가 그렇더라고 흉볼게 뻔해서 이러는걸까
내가 원래 깔끔한 사람인데 뒤에 사람믈이 많이 기다리고 있어서
서두르느라 그랬다는 것을 알리지 못해서일까
내 소심함의 끝이 어딘가 따라가본다
결국에는 또 자의식 강한 내모습을 만난다
지적받는 것을 못견뎌하는 나
인정받고 싶은 나
잘나고 싶어하는 내 모습이다
내가 알고 있는 나도 나이고
다른 사람이 보고 판단하는 나도 나다
모두 내 모습인걸 어쩌겠는가
2015년 10월 6일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아파트 뒷길에 귀여운 고추멍석이 깔렸다
네 귀퉁이 누른 돌맹이 크기가 터무니없이 커서 더 귀엽다
맑은 가을햇빛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알뜰한 풍경
2015년 10월 7일
풍선덩굴이라네
어쩜 요렇게 이쁘게 생겼담
꽈리로 검색하다가 초록주머니로 검색하다보니 초록풍선이 눈에 띈다
그래서 알게 된 이름 풍선덩굴
누군지 이름도 참 잘 지었다
2015년 10월 8일
손님보다 간판쟁이가 더 자주 드나드는 가게터
이번엔 무한떢볶이집이다
아주 젊은 남자가 앞치마두르고 있고
아이와 젊은아내가 탁자에 앉아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젊은남자의 뒷모습이 안쓰러워보인다
가게가 잘되기를 기도한다
2015년 10월 20일 팔아줘야 될거 같은 의무감이 빚처럼 있었다
오늘 드디어 떢볶이집에 갔는데 주인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게 됐다
다행이다 그때 본 애기와 애엄마는 손님이었단다
그 얘기를 들으니 내 마음이 한결 가볍다
아줌마의 오지랖이 소설을 썼다
2015년 10월 11일
골목길이 통째로 사라졌다
이럴 수도 있네
새로 조성된 아파트단지 옆으로 큰 도로가 생기면서 이렇게 됐다
하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가 없다
2015년 10월 11일
엄니네 가려고 차턱에 나갔는데
아줌니 한분이 나를 빤히 쳐다보신다
모르는 분이어도 나이드신 분은 정겨워 웃어줬는데 웃지도 않으신다
조금 무안하네
나를 쳐다보고 있는 눈길을 의식하며 천천히 자리에 앉는데
할머니는 집요하게 나를 쳐다보신다
슬그머니 웃으며 "왜 그렇게 쳐다보세요?"하니
"젊어서 이뻐서 그류~젊은게 참 이뻐 젊어서 좋겄네"
내가 다 늙었다 생각했는데 일흔여덟 할머니한테는 내가 부러운 젊은이다
2015년 10월 12일
바람 몹시 부는 날
쌀자루에 고추 몇개 널어 놓고 영 불안한 마음
2015년 10월 12일
점심산책길
여고강당 옆 햇빛좋은 자리에
여학생 다섯이 자리도 없이 맨땅에 앉아 간식을 먹고 있다
니들은 모르지 지금이 얼마나 이쁜지
사진찍어주까?하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참았다
어제 그 할머니맴이 내 맴이다
2015년 10월 13일
어제 비온 다음 날 눈부시게 맑고 푸른 하늘
보라빛 나팔꽃
그림처럼 아름답다
바람에 흔들려 선명하지 못한게 아쉬워
오늘 다시 볼 수 있을까 찾아봤더니 그새 시들어버렸다
찬란한 아름다움이 신기루같다
2015년 10월 14일
탁이가 오늘 면접보기로 한 학교를 포기하겠다고 한다
어제 만난 선배가 그 학교 별로라고 했다는게 이유다
내가 생각할 때는 참으로 어이없는 일인데 탁이는 고집한다
잠깐 고민을 한다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순간일지 모르는데 내가 억지를 부려서라도 면접을 보게 해야 하나
아니면 결과가 무엇이든 온전히 탁이가 감당하도록 지켜봐야 하나
결론은 탁이가 자기의 삶을 책임지도록 한다는 거다
다른 사람 의견은 참고로 삼아야 하고
내가 직접 경험하고 판단을 내려야 하는 거라는 말만 해줬다
탁이는 좀더 알아보고 이차때 지원을 하겠다고 한다
탁이를 믿는게 아직은 노력을 해야만 되는 일이다
2015년 10월 15일
강제청빈
강제소박
물질에 대해서 내가 비교적 집착하지 않고 단촐하게 사는 행복을 누리고 있는 것은
부유하지 않은 내 환경의 결과물일지 모르겠다
내가 풍족한 생활을 하면서도
소박한 충족에 만족하고 감사하고 행복을 느껴
단촐한 삶을 선택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나 스스로 자부심을 가질 일이겠다
2015년 10월 19일
형님이 엄니한테 칠판을 사다줬다
엄니가 점점 기억력이 흐려지니 중요한건 적어놓으라고 일렀단다
문해교실 일학년 엄니가 칠판을 요긴하게 쓰고 계시다
2015년 10월 20일
"여긴 어디인가 나는 누구인가"
점심산책하다 배추밭에 코스모스 한송이 핀 것이 신기해 탁이한테 보냈더니
"어여들어가" 한다
2015년 10월 21일
오랜만에 미숙이를 만나 저녁을 먹었다
소주 두잔 마시고 알딸딸한 기분으로 밤산책도 하고 헤어졌다
미숙이를 만나 밥먹고 얘기를 나누는데 시시때때로 생각나는 게장
아홉시에 집에 돌아와 기어이 밥 반공기 뎁혀서 게장을 먹었다
식탐 식탐 식탐 겁나는 식탐
2015년 10월 26일
바람이 좋은 날
낙엽이 바람타고 훠어얼 훠어얼 날아간다
낙엽의 비행이 우아하고 아름답다
내가 가을의 나뭇잎이라면
이런날 낙엽되기를 소망하겠다
2015년 10월 26일
산길에 작은 뱀이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
하늘보고 걷다가 하마터먼 밞을 뻔 했다
으악~~~
나는 혼비백산하는데 뱀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올 때는 뱀이 무서워 다른 길로 내려왔다
2015년 10월 26일
포장된 농로다
검지손가락만한 암사마귀가 쓰러져있다
가만히 들여다본다
몸은 꼼짝을 하지 않는데 눈알이 희미하게 움직인다
이대로 두면 지나다니는 누군가의 발에 압사할거 같다
길가 풀섶으로 옮겨주고 싶은데 만지는게 무섭다
오소희씨가 아들하고 산책을 하던 중 죽은 쥐를 보았다
아들은 죽은 쥐를 그대로 두면 불쌍하다고 했다
4살쯤 된 아이는 온갖 궁리를 하다 우유곽인가를 찾아서 기어이 쥐를 길 한쪽으로 옮겨주었다
죽은 쥐도 챙겨주는데 암사마귀를 그냥 둘 수 없다
다리를 잡는데 꿈틀한다
으악 비명을 지르며 던지듯 풀숲에 옮긴다
암사마귀가 풀잎에 착 달라붙는다
이후에 일어나는 일은 자연이니 나는 모르겠다
그래도 살았으면 좋겠다
2015년 10월 28일
교복을 다릴 때 우리탁이 바르고 진실되게 자라기를 기도하는데
오늘은 우리탁이 이렇게 잘 자라게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는 기도가 나왔다
술먹고 담배는 펴도 참 잘 자라주었다
2015년 10월 31일
읍내를 걸어가다가 간판보고 깜짝 놀랐네
그동안 숱하게 지나다녔는데도 이걸 못봤다
2-로 시작하는 전화번호
나 중학교때 집 전화번호가 2국이었다
옛날옛날 그자리에 그 사람들이 처음간판 그대로 살고 있는 곳
뭉클한 감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