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그림자
대화
천천히2
2013. 12. 19. 09:33
원숙언니랑 장날 점심때 만나서 장구경을 했다
점심으로 뭘 먹을까 하다가 팥죽집이 보여 들어갔다
낡은 창고에서 간판도 없이 장사하는 집이다
장날 점심때만 살짝 나타났다가 감쪽같이 사라지는 집
기다란 탁자위에 김치 세가지 몇군데 차려놓고
그때그때 팥죽이나 밥만 갖다주는 집
옆에서 팥죽드시던 할아버지가 혼잣말씀을 하신다
"팥죽은 그대론데 사람만 늙는구나"
"팥죽 한그릇에 이천원 받고 팔아서 남는게 있을라나?"내가 물으니
"남는게 있으니까 팔지 그거 원가가 얼마나 되겠어? 사람도 안쓰고 가게세도 안나갈거구"
원숙언니가 대답한다
이게 아닌데
내가 얘기를 꺼낸건 이렇게 이성적이고 계산적인 대화를 하자는게 아니었다
난 시골장의 푸근하고 질박한 정을 얘기하고 싶었다
돈벌 욕심보다는 사람좋고 하던 일에 정이 들어 계속하는 시골할머니얘기를 하고 싶었다
너무나 딱 떨어지는 언니대답에 머쓱해져서
"그럴라나?"하고 말꼬리를 사린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듯
너는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하면 되는데
이럴 때마다 당황하고 황당하고 답답해서 죽겠는 나
이럴 때 참 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