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콜콜

2013년 짧은얘기(12월)

천천히2 2013. 12. 2. 14:08

2013년 12월 2일

 

 

 

초록물이 다 빠진 풀이 한없이 가벼워보인다

 

2013년 12월 2일

바람을 또 보는데

어라 이 영화 청소년불가다

왜?????????

탁이랑 이렇게 재밌게 보는데 왜?????????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등급

학창시절의 추억담

청소년기의 성장영화인데 청소년은 보면 안된다네

교복입고 담배를 아무렇지 않게 피는 장면이 많아 좀 걱정이 되지만

욕은 재미지고 불법써클 형님들이 내가 봐도 멋있다는게 부작용이기는 하지만

중요한건 그 과정에서 조금씩 성장해가는 짱구의 모습이 곧 내 아이들의 모습이다

당최 이해가 안가는 청소년불가

 

2013년 12월 3일

마스크를 쓴 여자아이가 할머니 손을 잡고 걸어온다

할머니의 다른 손에는 유치원가방이 들려있다

정겨운 모습

아구야 애기가 눈을 감고 걷는다

아침잠 많은 나이

더구나 겨울아침

유치원이 조금 늦게 시작하면 좋으련만

어른들의 생활에 맞춰야 하니 니들이 고생이다

귀여워서 웃고 씁쓸해서 웃는 아침

 

2013년 12월 4일

 

 

주황색 얼굴을 가진 애벌레가 기어간다

꼬리를 끌어당겨 오므리면 그 힘이 긴 몸을 파도처럼 타고 앞으로 간다

꾸움틀 꾸움틀

벌레사진 보내면 질색하는 이쁜이한테 보냈더니 역시나 반응이 뜨겁다

ㅎㅎ 구여워라

 

 

참 이쁜 국수발

 

2013년 12월 4일

모임약속시간은 여섯시 반

퇴근시간은 다섯시 십분

집에 들렀다 갈까?

잠깐이라도 자두랑 놀아줄까?

하지만 집에 들렀다 다시 나오는 것이 귀찮고

금방 다시 나가는 나를 바라보는 자두 눈빛도 마음에 걸린다

'하루종일 혼자 있었는데 금방 또 어디가?.이러는거 같다

천천히 읍내로 해서 한바퀴 돌으니 한시간 얼추 걸린다

예전에 죄인을 귀향보낼 때 죄값만큼 거리가 안나오면 구불구불 돌아가게 만들었다더니

십분이면 가는 곳을 한시간 걸려 가는 내가 지금 그런건가

 

2013년 12월 5일

어제 화양연화모임은 합이 들었었나부다

몇년만에 느껴보는 화기애애하고 유쾌한 분위기였다

그동안 예전같지 않다는 생각에 불편하고 허전했는데

역시 오래된 인연들은 다르다

소원하게 느껴졌던 거리감이 한순간 사라지고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편안했다

 

2013년 12월 7일

아르바이트 이틀째

쉽게 생각했는데 다섯시간을 꼬박 서있으려니 생각보다 몸이 힘들다

몸보다 마음이 힘들다

저녁시간이 전혀 없으니 약속도 못잡고 다음주에 정태춘공연이 있다는데 못간다

이런 생활을 계속해야 한다면 못견딜지도 모르겠다

나는 운이 좋아 이렇게까지 치열하게 돈을 벌며 살지 않아도 되니 다행이다

이런 생활이 일상인 사람들을 생각한다

꼭 그래야만 하는 사정이 있는 사람들

슬프다..

 

2013년 12월 10일

아르바이트4일째

현관문을 들어서는데도 탁이는 나오지 않는다

보니 침대 위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방은 벗어놓은 옷으로 난장판이다

제딴에는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나 대견하지? 하는 컨셉인데

몸이 피곤하니 받아줄 여유가 없다

옷도 안갈아입고 그냥 쇼파에 앉아있는다

탁이는 내 눈치를 살피며 설거지를 하고 이불을 펴준다

탁이한테 미안하다

아이키우는 엄마가 이렇게 밤낮으로 일하면 정말 안되겠구나

생각할 수록 나 사는 것이 다행이고 감사하다

 

2013년 12월 10일

계산을 끝낸 손님이 문손잡이를 잡았을 때쯤

계산대 앞 바닥에 만원이 떨어진 걸 봤다

만원짜리를 보는 순간 손님을 부를까 말까 망설이다 손님을 부르는 나

수시로 드러나는 나의 본바탕 흐으으으~

 

2013년 12월 12일

 

땡볕에 고스란히 드러난 여름의자

흰 눈이 소복히 쌓인 겨울의자

쓸쓸한 의자

그냥 지나치기 마음쓰여 살그머니 앉아봤다

내 엉덩이 엄청 크다

 

2013년 12월 13일

 

 

역전장날  점심장사만 하는 밥집

팥죽 한 그릇 값이 이천원

넘이 먹던 반찬이 남아있는 긴 탁자에 자리를 잡으니

주인이 대접에 팥죽 한그릇 퍼서 갖다준다

밥을 시키면 저 대접에 밥을 담아준다

김치국이 시원하고 숭늉이 구수하다

 

 

허공으로 뻗은 마른 풀잎 위에 눈이 남아있다

거품처럼 가벼워보인다

 

2013년 12월 15일

저녁에 탁이랑 베라가기로 약속했다

갑자기 탁이가 친구들하고 저녁먹으러 가게 돼서 만원을 줬다

지들 저녁먹고 베라서 만나자는데 계산해보니 네명이서 베라가면 이만원이 나온다

탁이에게 준 만원에 추가로 이만원이면 부담스럽다

탁이랑 베라가는걸 포기해야 했다

돈 때문에 탁이하고 데이트하는걸 접어야 해서 아쉬웠다

 

2013년 12월 15일

 

 

앞집 할머니네담이 지팡이를 짚고 있다

얼마나 버틸지

할머니나 담이나

 

2013년 12월 15일

갱변길

 

2013년 12월 16일

열시가 넘은 시간

탁이랑 라면을 먹고 과자를 먹는다

살찌는게 싫지만 탁이랑 노는게 더 좋아 이러구 있다

살은 빼면 되지만 탁이랑 이럴 수 있는 시간은 지나가면 오지 않으니까

 

2013년 12월 17일

산책길에 만난 박주가리 씨앗

허공을 날으는 문어같고

아바타의 숲속 나무정령같애

하얀 털이 어쩜 이리 부드러운지

이렇게 여리디여린 씨앗을 보호해야 하니 씨앗주머니가 그만큼 울퉁불퉁 단단해야겠다

돌아오는 길에 기차역 화단에 하나 날려줬다

내년에 기차역에서도 박주가리를 볼 수 있을까

.

 

 

2013년 12월 17일

알바끝나고 빵집에 들렀다

빵값이 칠천원

알바 두시간해야 벌 수 있는 돈

알바한 뒤로 자꾸 이렇게 돈을 시간으로 환산하게 된다

어렵게 일해서 돈을 버는건 재밌게 살려고 하는건데

자꾸 이런 생각을 하니 재미가 없다

돈돈 하지 말아야지

 

2013년 12월 20일

밤새 눈내린 창밖 풍경이 아름답다

높은 우리집에서 누리는 아침호사

유리창에 뽁뽁이를 붙이면 단열효과가 좋대서 해볼까 하다가 말았다

좀 추운게 낫지 이렇게 맑은 바깥풍경을 놓치고 싶지 않다 

 

2013년 12월 22일

현금을 내면 깎아주는 대신 현금영수증은 안해줘야 하는건데 몰랐다

발행취소방법도 모르겠다

어린 주인이 깎아준 돈 다시 받으라는데 도저히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오천원을 채워넣어야겠다 생각했다

그래도 내가 이렇게 하면 어린 주인이 한번은 사양하려니 생각했는데

내가 내미는 돈을 당연한 듯이 받는다

장사를 하면 이렇게 되나보다

너무 어린 나이에 장사를 하면 안될거 같다

 

2013년 12월 23일

울타리너머에 강아지들이 있는게 생각나 슬그머니 넘겨다본다

강아지 한마리가 개집 뒤에서 등을 잔뜩 웅크리고 응가를 하고 있다

저쪽을 보고 힘을 꽁꽁 쓰다가 무슨 낌새를 느꼈는지 슬그머니 고개를 이쪽으로 돌린다

나와 눈이 딱 마주쳤다

나는 반가운데 강아지는 무안했나?

활짝 웃는 내 웃음이 무색하게 저쪽으로 내뺀다

귀여워죽는 줄 알았네

 

2013년 12월 25일

아홉시쯤 탁이가 새우깡 초코파이 미에로를 들고 가게로 왔다

서현이도 같이 왔다

크리스마스선물이란다

구여운 탁이의 구여운 선물

 

 

 

2013년 12월 26일

꿈꾼다

다른 사람 시선에서 자유로운 나를

길을 걷다가 들리는 음악이 흥겨우면 자연스럽게 춤추는 나를

남미에는 그런 사람 많다지 남미를 가야지 늘 꿈꾼다

오늘 산책길에 젊은 부부를 보았다

남편이 가다서다 하면서 휴대폰으로 음악을 틀어주고

키가 아주 작은 그의 아내는 가다서다 하면서 춤을 춘다

뭐지???

저게 뭐야 푼수같애 살짝 모자란 사람인가??

나를 보고도 아무렇지 않은듯 계속 춤을 추는 아내를 뜨악하게 쳐다본다

그들 뒤를 천천히 뒤따라가며 허참 거참 해가며 속으로 흉을 보다가 아차 싶어진다

내가 저러고 싶은건데!!!

내 꿈을 현실로 보여주는 이가 저니인데 지금 흉보고 있는겨?

참 어이없네 나란 사람

 

2013년 12월 30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느닷없이 떠오른 말

누군가는 해야 하는 궂은 일을 하면서

다른 사람은 안하는데 왜 나만 하는거지 속끓이다가 섬광처럼 내게 온 말

다른 사람 상관없이 하는거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거지

 

2013년 12월 30일

다른 사람의 행동이 내 거울이 된다

아침에 컴퓨터가 고장나 수리를 보낸 직원이 계속 총무님한테 채근을 한다

"컴퓨터 언제 와 빨리 갖고오라고 해"

듣는 나는 총무도 아니면서 짜증이 난다

듣는 총무는 사람좋게 웃으며 말한다

"갖다준다잖아요 걔는 지금 얼마나 속타겄어요 "

총무 저 사람 참 유연하다

내 속에는 짜증이 참 많다

 

2013년 12월 31일

탁이 이마에 있는 점을 뺐다

그 점이 부끄러워 항상 이마를 덮고 다닌 탁이

별명이 부처님었다네

의사선생님이 점이 커서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니

수술소리에 놀란 탁이 얼마나 겁을 먹던지

대기하는 동안 어쩔줄을 몰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