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쁜이와 설거지
야식으로 이쁜이랑 탁이가 라면을 끓여먹었다
설거지하기 싫어 밍기적거리던 이쁜이가 테레비를 한참 보다 일어난다
테이블에 과일그릇이랑 컵이 몇개 있었다
이쁜이가 라면냄비만 들구가 설거지를 한다
나중에 나가봤더니 싱크대가 가관이다
뒤집어진 채 설거지통에 들어있는 고무장갑, 음식찌거기 묻은 가스렌지, 라면부스러기
이게 스물두살짜리가 설거지한 모습이라니
화산처럼 화가 폭발할거 같았다
이쁜이가 며칠 집에 있는건데 싸우면 안되지
화를 꾹꾹 누르며 한마디한다
"여기 보니까 너무 화가 난다 진짜 어이가 없어서 할말이 없다"
이쁜이는 아무말 안한다
지금 얘기하면 둘다 울근불근 뻔한 사태가 벌어질거다
내일 차분하게 얘기하자
테레비에서 스페인요리광고가 볼 때마다 화려하고 먹음직스럽다
연극제에서 받은 상품권으로 천안 빕스에 갔다
기분좋은 자리에서 편하게 얘기해야 흥분하지 않을거 같았다
"어제 엄니가 정말 어이가 없었거든
테이블에 라면그릇말고도 치워야 할게 여러개있었는데 이쁜이는 냄비만 들구갔어
그리고 씽크대 여기저기 양념도 묻고 라면부스러기도 있었는데 이쁜이는 오로지
냄비만, 냄비만 씻었어 엄니는 도저히 이해를 못하겠다니깐"
"안보였어"
기가 콱 막히는 대답
"그런게 눈에 안보였어도 참 문제고 보였는데도 그렇게 했대도 문제다"
더이상 할 말이 없었다
이쁜이에게 실망하는 마음으로 괴로웠다
우리 이쁜이가 이정도밖에 안됐나
그동안 내 기대와 맞지 않는 행동을 할 때 그게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직 어려서 그러려니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해결이 되겠지 느긋하게 생각했다
그저 외지에 나가 혼자 지내는게 안쓰럽고
나는 에미니까 내새끼를 따듯하게 품어줘야한다는 생각만했다
그랬는데 아주 사소한 일로 내가 이쁜이의 게으르고 이기적인 모습을 보고는 괴로웠다
내가 잘못가르쳤다는 죄책감도 괴롭고
내가 이쁜이를 과대평가했다는 실망감도 괴롭다
자식이 잘 할 때만 사랑스럽고 못할 때는 이렇게 냉정하게 변하는 내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괴로운 일이다
이제는 내가 가르쳐야 할 시기는 지났으니 스스로 다듬어가면서 살아야한다는 생각으로 개입하는걸 주저하고 있는 나의 애매함도 견디기 힘들다
갈팡질팡하다 나는 매번 그냥 아이들과 웃는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있는동안 재밌고 행복하다
그저 이 순간이 즐거우면 되는게 아닌데 매번 그렇게 결론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