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그림자

고양이의 한수

천천히2 2013. 7. 31. 22:20

방앗간에 떡쌀 두되 빻아달라고 맡겨놓고 밖으로 나오니

길냥이 한마리가 길 가운데 앉아있다

내가 요새는 고양이한테도 말을 건다

"안녕 아가 너 참 이쁘다"

내 말을 알아들은 것마냥 길냥이가 나에게 다가온다

다정하게 쪼그리고 앉아 고양이를 마주했다

고양이의 눈동자가 매섭다

국민학교 삼사학년 때쯤 소설 검은고양이를 읽은 후로

고양이는 이뻐도 무섭고 귀여워도 무섭고 무서우면 더 무서웠다

길냥이라서 애틋한걸까

오늘은 무서움대신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살그머니 머리를 만져주니 고양이가 눈을 감고 고개를 젖히며 좋아한다

작은 혀로 핧으려 하는데 쥐잡아 먹었을 생각을 하니 그건 좀 거시기하다

고양이는 좋아한다는 표현을 하는건데 받아주지 못해 미안하다

고양이 무안하지 않게 아주 살짝 비켰더니 이번에는 내 몸을 스치며 빙빙 돈다

기대지도 않고 떨어지지도 않고 살짝살짝 스치며 빙빙 빙빙

이것이 남정네를 향한 여인의 태도라면 감탄할 만한 교태겠구나

귀엽고 도도하고 은근하고 유혹적이고 사랑스럽다

내 좀더 젊어 이 고양이를 만났더라면
그래서 고양이에게 한수를 배웠더라면 기막힌 연애를 했겠다